▲ 출처= 월트디즈니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최근 글로벌 콘텐츠 업계의 가장 큰 뉴스로는 ‘월트 디즈니의 21세기 폭스 인수’가 꼽힌다. 월트 디즈니의 행보는 글로벌 콘텐츠 업계의 치열한 경쟁 구도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례다.

도전받는 월트 디즈니, 야망의 넷플릭스

디즈니가 21세기폭스의 영화·TV사업 그리고 폭스가 가지고 있는 IP를 확보하는 데 쏟아부을 것으로 알려진 인수금액만 713억달러(약 79조7500억원)에 이른다. 추후 두 회사가 협의하는 세부 조건에 따라 최종 합의 금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보유한 콘텐츠의 힘만 따지면 월트 디즈니는 ‘세계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업이다. <미키 마우스>, <도날드 덕>, <라이온 킹>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 IP에 마블 스튜디오까지 가지고 있는데도 디즈니가 수십조원의 돈을 들여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이유가 관심사다.

디즈니가 원하는 것은 1세기 폭스의 ‘모든 것’은 아니다. 21세기폭스의 자회사인 영화 제작 스튜디오, TV프로그램 제작 사업, 콘텐츠 IP 그리고 다수의 케이블 방송 채널, 온라인 스트리밍 훌루(Hulu)의 지분 등을 원한다. 결론은 콘텐츠 IP와 유통 채널인 ‘플랫폼’ 두 가지로 압축된다.

폭스는 디즈니가 원하는 IP들을 갖고 있다. 마블코믹스의 수퍼히어로 판권만 봐도 그렇다. 디즈니는 <어벤져스>의 판권을 가지고 있지만 <엑스맨> 시리즈나 <데드풀> 등 다른 인기 마블 캐릭터의 판권은 폭스가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전무후무한 흥행을 하고 있음에도 디즈니는 폭스 소유의 IP들로 영화로 만들 수 없다. 이 판권들이 디즈니로 넘어가면 몇 년 안에 '어벤져스’와 ‘엑스맨’을 한 영화 작품의 화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개봉해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휩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IP 2차 활용을 제외한 순수 영화 상영만으로 올린 디즈니가 수익은 20억4251만6129달러(약 2조3004억원)다. 여기에 ‘엑스맨’이 가세한다면 현재의 영화 수익이 우습게 보일 수 있는 기록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 디즈니가 보유하고 있는 마블스튜디오의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출처= 월트디즈니

콘텐츠 유통 플랫폼은 디즈니가 더 원하는 것일 수 있다. 디즈니는 지난해 8월 넷플릭스에 더 이상 디즈니 콘텐츠를 공급하지 않기로 했다. 디즈니가 온라인 콘텐츠 스트리밍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것이자 폭스에 비해 디즈니가 약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 영역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있는 것만으로도 IP는 충분하니 이를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보내 줄’ 경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디즈니는 지난해 “2019년부터 우리의 콘텐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혀놓았다. 폭스 인수는 디즈니가 앞으로 그릴 큰 그림을 준비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디즈니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 넷플릭스는 글로벌 미디어 콘텐츠 시장을 거의 ‘뒤집어’ 놨다. 1997년 미국의 작은 DVD 대여 업체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세계 최초로 월 단위 유료구독 VOD(Video on Demand·주문형 비디오 조회 시스템) 기반 동영상 스트리밍 시스템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넷플릭스는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가입자 1억명을 넘겼다. 매출은 2016년 기준 82억달러(약 9조2200억원)로 명실상부한 콘텐츠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수많은 유료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플랫폼을 완성한 넷플릭스는 고유한 콘텐츠 IP를 강화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다. 콘텐츠를 송출할 수 있는 경로와 가입자들은 이미 확보한 만큼 남은 것은 IP였다. 다른 제작사의 콘텐츠를 가져다가 송출하는 것만으로는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넷플릭스는 독자 IP 제작에 뛰어든 것이다.

넷플릭스는 유명 콘텐츠 제작자를 영입해 많은 돈을 들여 작품을 직접 제작한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2013~)와 영화 <옥자>(2017)가 좋은 사례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영화 <세븐>, <파이트 클럽>, <소셜네트워크> 등 작품성 높은 영화로 잘 알려진 데이빗 핀처 감독이 제작한 시즌제 드라마다. 2013년 첫 시즌을 시작해 현재 여섯 번째 시즌까지 만들어 방영하고 있을 만큼 수많은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다.

▲ 넷플릭스가 제작한 오리지널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출처= 넷플릭스

<설국열차>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봉준호 감독과 넷플릭스가 함께 제작한 영화 <옥자>(2017)는 해외 각 나라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와 협업해 그 나라의 정서에 맞는 작품을 만들고 현지 시장에 진출하는 넷플릭스의 글로벌 전략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였다. 영화 <옥자>는 넷플릭스의 한국 시장 진출의 신호탄이 됐다.

자체 콘텐츠 IP와 유통망을 가진 넷플릭스는 이미 각 나라의 방송통신 플랫폼 장악에 나섰다. 최근 통신 사업자 LG유플러스와 손을 잡고 한국의 IPTV(초고속 인터넷 기반 양방향 텔레비전 서비스)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로써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의 수많은 콘텐츠와 결합한 인터넷 방송 상품을 구성할 수 있고, 넷플릭스는 한국의 통신망에 자기들의 콘텐츠를 더 쉽게 송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LG유플러스가 다소 불리한 계약을 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SK, KT 등 다른 이통사들도 넷플릭스와 손을 잡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넷플릭스가 한국시장 진출에 앞서 봉준호 감독과 함께 만든 영화 <옥자> 출처= 넷플릭스

자체 콘텐츠 IP와 유통망이라는 카드를 쥔 넷플릭스에게 각 나라의 장벽은 없어진 것과 다름없다. 넷플릭스의 성장은 ‘전 세계 콘텐츠 전쟁의 시작’이라는 말과 같다. 문제는 디즈니, 넷플릭스와 같은 전문 기업 외에도 콘텐츠라는 ‘원 아이드 잭’을 노리는 업체들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 콘텐츠 기업들이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전자업체 애플은 2015년 음원 스트리밍-다운로드 서비스 ‘애플뮤직’을 선보인 후 미국 음원 업계 2위 업체로 올라섰고 스마트 TV 사업 진출을 목적으로 자체제작 드라마 <바이탈 사인>을 선보였다.

미국의 케이블 TV 사업자이자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컴캐스트는 2011년 미국의 지상파 방송 채널 NBC유니버설과 합병해 ‘컴캐스트-NBC유니버설’이라는 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설립했다. 컴캐스트는 디즈니와 폭스 인수경쟁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2010년 아마존 스튜디오 설립 후 드라마, 영화 등 자체제작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IT기업 구글은 자사의 VR(가상현실) 디바이스 데이드림 뷰(Google Daydream View)의 상용화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국 VS 중국 ‘콘텐츠 세계대전’

글로벌 콘텐츠 업계의 경쟁은 이제 디즈니나 넷플릭스, 아마존 등 미국계 글로벌 기업들만의 경쟁은 아니다. 콘텐츠 경쟁에 중국이 가세하면서 양상은 확 바뀌었다. 중국의 기업들은 정부의 물심양면 지원, 자국에 넘쳐나는 대자본을 활용해 해외 유명 콘텐츠 제작 업체들과 플랫폼들을 사들여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HALT WB는 ‘멈춰 서게 하다’ 혹은 ‘막다’라는 의미의 영단어 ‘Halt’와 미국의 미디어 기업 워너브라더스(Warner Bros)의 줄임말 ‘WB’를 합쳐 만든 말이다. “워너브라더스를 멈추게 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미국의 미디어 기업 워너브라더스의 확장과 중국 시장 진출을 견제하는 6개 기업들 글자를 딴 말이어서 의미심장하다.

‘HALT WB’는 콘텐츠 사업에 많은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6개 기업 화이(HUAI) 브라더스·알리바바(ALIBABA)픽쳐스·러에코(LeEco)·텐센트(Tencent)·완다(Wanda)그룹·바이두(Baidu)를 일컫는다. 

알리바바 픽쳐스는 중국 1위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영화부문 사업부로 미국 영화 제작사 파라마운트사의 작품에 자본을 투자하는 등 다수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투자하는 기업이다. 중국 온라인 콘텐츠 스트리밍 업체 러에코는 미국 프로야구(MLB)의 독점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업체로 2012년부터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텐센트는 중국의 모바일 메신저 위챗과 음원 서비스 큐큐뮤직, 스트리밍 서비스 텐센트 비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완다그룹은 전 세계 1위 극장 사업자이며, 검색 포털 바이두는 가입자 2000만명의 스트리밍 서비스 ‘아이치이(iQiyi)’를 운영하고 있는 중국의 간판 기업이다.

완다그룹은 지난 2016년 1월 ‘다크나이트’ 시리즈와 <인터스텔라>를 제작한 미국 영화제작사 ‘레전더리 픽쳐스’를 인수하고 종합 콘텐츠 기업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세우면서 전 세계 콘텐츠 시장의 큰손으로 급부상했다. 완다그룹은 극장 사업, 영화 제작사업, 영화 배급 사업, 등 영화 제작과 유통에 관련된 거의 모든 사업을 계열사로 두는 수직통합 전략으로 미국 디즈니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완다의 이름을 건 세계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 ‘완다청’의 건립을 앞두고 완다그룹의 왕젠린 회장은 공식 석상에서 “디즈니는 중국에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로 콘텐츠 사업에 대한 자기들의 강한 의지를 밝혔다.

중국의 도전은 미국 기업 중심으로 편제된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구조가 점점 변하도록 만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전 세계 글로벌 콘텐츠 경쟁의 큰 구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의식한 미국의 대응도 만만치 않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