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26일, 파리에서 돌아온 지 1년이 채 안 되는 시점에 레빈은 바하마에 있는 나소에 갔고, 스위스의 오래된 은행의 자회사인 로이국제은행을 찾았다. 그는 뉴욕으로 복귀하면서 다시 비밀 거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준비를 했다. 바하마는 뉴욕에서 비행기로 3시간 거리여서 당일로 다녀오는 것이 가능했기에 레빈에게 최고의 장소였다. 그리고 바하마는 어떤 면에서 스위스보다 고객의 비밀 보호에 더 철저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레빈은 윌키스와 긴밀하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때 윌키스는 라자 프레(Lazare Freres)에서 있었는데, 1979년 당시 라자 프레는 스미스 바니보다 더 활발하게 M&A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윌키스는 국제 업무 부서에서 일했기에 레빈에게 넘어오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정보에 목이 마른 레빈은 윌키스에게 대담한 요구를 했다. M&A 부서를 밤에 뒤져서 정보를 캐내라는 것이다. 윌키스는 너무 위험하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레빈은 직접 라자 프레 사무실을 뒤지겠다고 말했다.

5월 어느 금요일 밤 8시, 레빈은 라자 프레 건물에 도착했다. 금요일 밤이라 적막이 감돌았다. 윌키스가 망을 보는 동안 레빈은 M&A 부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망을 보는 윌키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누가 들어오면 뭐라 말할까. 갑자기 인기척이 들렸다. 윌키스가 화들짝 놀랐다. 멀리서 다가오는 그녀는 청소부였다. 그녀는 윌키스를 그냥 지나쳐갔다.

사무실 서류철을 뒤지던 레빈이 드디어 월척을 낚았다. 프랑스의 거대 석유회사인 엘프 애퀴테인이 다른 대형 석유회사인 커-맥기를 인수한다는 문건이었다. 만약 이 거래가 진행된다면 역사상 최대의 인수전이 될 것이고, 이 정보를 이용해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터였다. 레빈은 빠르게 이 서류들을 복사하고 제자리에 돌려놨다. 레빈은 윌키스의 등을 두드리며 “봐, 쉽잖아?”라고 말했다. 그들은 행복감을 느끼며 주말을 즐기기 위해 라자 프레 사무실을 떠났다. 이때는 레빈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일화는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폭스가 경비원을 가장해 밤에 로펌 사무실을 침입해 M&A 서류를 훔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레빈은 바하마 로이은행에서 계좌를 열자마자 본격적으로 내부자거래를 시작했다. 레빈은 회사나 정부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상당히 조심했다. 레빈은 은행을 방문할 때 뉴욕에서 직접 나소로 오지 않고 항상 우회해서 여행을 했고 가명을 사용했다. 바하마에는 캐나다 여행객이 많이 오는데, 캐나다 여행객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몬트리올을 경유해서 나소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또는 라스베이거스를 경유하기도 했다. 그는 주소나 전화번호를 남기지 않았고 은행에 전화할 때는 보통 점심시간에 페이폰으로 콜렉트 콜을 사용했다.

레빈은 로이은행에 연락할 때 은행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베른하르트 마이어와 2인자인 플레처(레빈의 계좌 개설을 도와준 간부)와 주로 연락했다. 은행의 간부들은 처음에는 레빈의 계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지만, 점차 레빈의 거래를 보면서 그의 거래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레빈은 스미스 바니에 14개월 있을 동안 내부정보를 이용해 8번 이상 거래했고, 그의 계좌의 돈은 2배 이상 증가했다. 스미스 바니에서 실적도 많이 올라갔다. 1981년 초, 레빈은 승진했지만 그가 원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레빈은 떠나기로 결심했다.

1981년 가을, 월가에서 레빈의 위상이 커지고 있었고 SEC의 감시를 회피하기 위해 레빈의 거래를 보다 안전하게 숨길 조치가 필요했다. 10월 30일, 레빈은 로이은행에 가서 계좌명을 파나마법에 근거한 페이퍼 컴퍼니인 ‘다이아몬드 홀딩스’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 파나마법은 회사를 설립할 때 모든 서류에 실명을 기재하지 않아도 됐다. 레빈의 주문대로 거래를 하지만 마치 다른 사람들이 운용하는 것처럼 위장할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 홀딩스의 임원들은 모두 서류 작업을 도와준 바하마 로펌의 변호사와 직원들이었다.

그날 레빈은 처음으로 자신의 계좌에서 2만5000달러를 인출했다. 그는 세관 통과를 위해 100달러짜리 지폐로 바꾸고 작은 플라스틱 여행용 백에 넣어서 미국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4년 동안 그는 동일한 방법을 통해 190만달러를 인출했다.

그해 11월, 리먼 브라더스는 레빈을 M&A 부서의 부책임자로 채용했다. 그 자리는 레빈이 스미스 바니에서 탐냈던 지위였다. 급여 또한 상당히 올랐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레빈이 항상 갈망해 왔던, 월가의 중심에 서 있는 제대로 된 투자은행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리먼에 합류한 레빈은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리먼은 스미스 바니보다 더욱 정보가 많았고, 레빈의 트레이딩 속도는 더 빨라졌다. 1982년 말 그의 계좌 잔고는 이미 백만달러를 넘어섰다. 1983년과 1984년은 성과가 더욱 좋았다. 그의 불법적인 투자 성과는 해마다 거의 200만달러를 넘어섰다. 자금이 쌓이고 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이익의 규모 역시 커지고 있었다.

이처럼 레빈의 바하마 계좌에는 계속해서 돈이 쌓이고 있었지만 리먼 내부에서는 다시 밀리고 있었다. 그는 리먼에서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가 되고 싶었지만 회사는 최종적으로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레빈은 리먼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다행스럽게도 M&A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었고, 당시 정크본드의 강자로 떠오르며 M&A 시장을 주도했던 드렉셀이 레빈에게 관심을 보였다. 스펙은 다소 딸렸지만 M&A 분야에서 떠오르는 스타였고 패기가 넘치는 젊은이로 평가했다. 드렉셀은 그의 공격적이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려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1995년 2월 4일, 레빈은 드렉셀에 처음으로 출근했다. 레빈이 드렉셀에 입사했을 즈음 그의 비밀 계좌의 잔고는 약 400만달러를 넘었다. 드렉셀에서의 수입도 한 달에 10만달러에 접근하고 있었다. 레빈은 부자가 되어 있었다. 레빈은 이제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와 맨해튼에서 가장 비싼 식당을 자주 들락거렸다. 아내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했고, 아버지에게 최고급 차인 재규어를 선물했다. 그는 파크 애비뉴에 방이 6개인 아파트를 샀다. 가격은 약 50만달러였지만, 집수리와 인테리어에 거의 50만달러를 들였다. 갤러리를 방문하면서 피카소, 미로(Miro), 로댕의 작품들을 사들였다. 붉은색의 페라리 테스타 로사(Ferrari Testa Rossa)도 샀다.

모든 것이 완벽한 듯 보였다. 드렉셀에 진출한 레빈의 내부자거래는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드렉셀에는 리먼이나 스미스 바니보다 훨씬 더 많은 내부정보들이 있었고, 회사에서의 지위도 올라 더욱 많은 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로이은행에 쌓여있는 돈이 커지면서 거래 규모도 따라서 커졌다. 거기다가 거래 빈도까지 증가하고 있었다. 그의 내부자거래는 더욱 대담해지고 있었다.

그해 5월, 레빈은 너무 행복했다. 바하마 계좌의 잔고는 1000만달러를 넘어섰고, 이제는 월가 최고의 투자은행 중 하나에서 매니징 디렉터가 되어 있었다. 레빈의 성공은 절정에 올랐다. 그동안 의도적으로 줄였던 소비도 시작해서 누가 봐도 근사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5월의 아름다운 봄날, 레빈은 아내와 함께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로 화려한 휴가를 떠났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그의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단단하다고 서 있던 기반은 이미 오래 전에 갈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글은 Douglas Frantz, Levine & Co.: Wall Street’s Insider Trading Scandal (Henry Holt and Company, 1987); Michael Stone, “INSIDERS – The Story of Dennis Levine and the Scandal That’s Rocking Wall Street,” New York, July 28, 1986, 28, 그리고 판결문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