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올 가을 유달리 낙엽이 아름답다. 노랗게 물든 풍성한 은행잎들 사이로 길게 늘어진 햇살이 스며들면 그 아름다움에 연신 셔터를 누르지만 역시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을 기계가 따라오지는 못한다. 아름다운 은행잎과 고풍스런 옛길, 그리고 음식과 쇼핑을 즐기는 주말의 여유를 원한다면 북촌동 길을 경유한 삼청동행처럼 적당한 곳이 없다. 그리고 적당히 상업적인 물이 든 삼청동 골목 안에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곳, 와인바 링가롱가가 자리하고 있다.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 한옥마을이 있는 북촌동 길을 걷다 언덕을 넘어 삼청동 길에 이르면 “이곳도 참 많이 변했구나” 싶다. 이전엔 눈치 보며 은근슬쩍 밀고 들어오던 브랜드 숍들이 이젠 화려한 건물 속에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고급스러워졌지만 상업적으로 변하는 것이 왠지 아쉬운 삼청동이다. 그래도 반가운 것은 운치를 더하는 가로수 은행잎들, 그리고 여전히 삼청공원 맞은편 골목 한 쪽에 자리하고 있는 와인바 '링가롱가'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뉴질랜드 원주민 역사를 기록한 책이름을 딴 ‘링가롱가’는 유럽의 시골농가에 있을 법한 어느 소박한 카페를 옮겨놓은듯 하다. 작고 낡았지만 편안하고 아늑하다. 게다가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삼청동 끝자락 삼청공원 맞은편에 위치한 이곳은 그리스 산토리니 같은 흰색에 군청색 외관이 인상적이다. 외관과 달리 실내로 들어서면 아늑한 조명을 받은 겨자색 컬러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은 주인장이 바뀌었지만 오랫동안 이곳의 터줏대감이었던 목공예가 출신의 강지형 사장이 직접 디자인한 ‘ㄷ’ 자형 모양의 테이블이 작은 링가롱가를 가득 채운다.

오래되어 대패질도 잘 안 되는 나무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는 테이블 바와 미술을 전공한 그의 부인이 직접 그린 나무덩굴까지 세심한 곳에 신경 쓴 부부의 손길이 링가롱가의 편안하면서도 이국적인 인테리어에 일조한다. 유성 페인트가 아닌 겨자색 물감으로 부부가 직접 칠한 벽도 인상적이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안쪽으로 들어가면 프라이빗한 공간이 나오는데 4명과 6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탁 트인 바가 어색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유럽여행 때마다 조금씩 수집해 온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가구들로 인해 마치 프로방스의 한 농가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역시 이곳의 백미는 ‘ㄷ’자형 테이블 바에 앉아 와인을 즐기는 맛이다. 11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라 친구들과 미리 예약을 하고 온다면 마치 이곳을 통째로 빌린 듯한 자신들만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와인을 마시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편이 좋겠다. 와인 레스토랑이 아닌 그야말로 Bar 형태라 와인과 즐길 수 있는 안주는 베이컨&아스파라거스, 모듬치즈, 카나페, 구운 방울토마토와 까망베르 치즈 정도가 전부다.

때문에 이곳은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 ‘2차로 와인 한 잔 하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왠지 밥만 먹고 헤어지기가 아쉬운 사람과 좀 더 대화를 하고 싶을 때 오는 곳이다. 그러나 와인과 어울리는 안주로서는 크래커에 크림치즈와 참치, 맛살, 각종 베리류 등을 올려놓고 즐길 수 있는 카나페와 까망베르, 발사믹식초를 뿌린 구운 방울토마토는 매우 훌륭하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주로 예전부터 이곳을 찾아왔던 단골손님이 절반이다. 20대 젊은 손님들도 특색 있는 공간에 많이들 찾지만 주 고객은 30~50대의 중년층이다. 클래식한 인테리어가 마음을 편하게 하고 낮은 천장은 조곤조곤 이야기할 수 있는 아늑함을 주기 때문이다. 혹 혼자 오게 되더라도 바에 앉아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와인을 마실 수 있어 어색함이 없다.

현재 이곳은 28세 젊은 나이의 차승준 사장과 그의 어머니 이선희(52) 사장이 링가롱가의 주인장을 맡고 있다. 링가롱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던 털보아저씨 강지형 사장이 떠난 자리를 두 모자(母子)가 채우고 있다. 와인공부를 한 차승준 사장이 전반적인 경영을 맡고, 이선희 사장은 중장년층의 손님들의 말벗이 되어주며 아들을 돕는다.

이곳의 와인들은 가격이 높지 않다. 4만5000원대 '로버트 몬다비 우드크릿지 카베르네 소비뇽'부터 27만원대 알마비바까지, 샴페인까지 합친다면 35만원대 돔페리뇽이 가장 비싼 가격대다. 강남의 와인바들이 100만원대 그랑크뤼 와인들을 구비하고 있는 데 반해 삼청동 링가롱가는 고가의 와인보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가격대의 와인들을 100종류 정도만 구비해놨다.

하우스 와인은 한 잔당 1만2000원. 특징이 있다면 750ml 와인 한 병을 두 명이 나눠먹을 수 있는 분량으로 하우스 와인을 많이 따른다는 것이다. 코르크 차지는 병당 2만5000원이지만 단골손님이 와인을 들고와 주인장과 공유한다면 코르크 차지는 받지 않는 센스도 있다.

가을에 어울리는 진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차승준 사장은 프랑스나 이태리 와인을 떠나 아르헨티나의 ‘말벡’ 품종을 권한다. 입 안에 가득 차는 ‘오크향이 나면서도 진한 과일향이 깊어가는 가을과 어울릴 것’이라는 것. 술이 싫은 여성들은 좋은 꽃향기가 나는 허브티나 직접 갈은 원두커피를 추천한다.쭦

메뉴 : 삼청공원 근처 부엉이 박물관 맞은편
와인 : 각 나라별 와인들로 4만5000원~35만원대 와인 구비
특징 : 유럽의 여느 농가 같은 좁지만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 다만 안주만 있고 별도의 식사메뉴 없음
와인 추천안주 : 카나페 2만원, 구운 방울토마토와 까망베르 1만8000원
오픈시간 : 오후 5시~새벽 1시, 주말 오후 12시 반부터
문의 : (02)730-3323

최원영 기자 uni3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