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승현 기자, 김진후 기자, 박자연 기자] “날씨도 덥고 회식도 다들 줄어서 장사 요즘 너무 안 돼요.”

지난 2일 <이코노믹리뷰> 기자가 찾아간 서울 종로의 한 족발집 가게에서 주인은 연신 부채질을 하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종각 ‘젊음의 거리’는 학원이 밀집해 유동 인구가 많고 서울 강북에서는 활발한 상권이 밀집한 지역이다. 직장인들의 저녁 식사, 회식 행렬이 잇따른 종각 상권이 ‘전성기’ 시절의 활기를 잃은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종각역 보신각 앞 빌딩은 약속장소로 많이 이용돼 늘 붐비던 장소인데도 장기간 공실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빈 상가 앞에 노숙인들만 자리 잡고 있었다.

▲ 사람이 없는 종각 '젊음의 거리', 오른쪽엔 공실이 보인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자연기자 

저녁 8시가 되어도 종각은 예전만큼 사람이 북적이지 않고 술을 마시거나 회식을 하는 손님들이 보이지 않았다. 청계천 방향에서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임대 문의’라고 붙은 공실부터 눈에 띄었다. 서울 도심 상권을 대표하는 종로는 임대료가 다소 감소했지만, 감당하기 어렵다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여전해 회복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몰락하는 ‘젊음의 거리’ 자영업들

일각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상승 등 현 정부의 친노동 정책이 불황을 이끌었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이코노믹리뷰> 기자 세 명이 직접 방문해보니 해당 정책이 미친 영향이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종로 상권의 특성상 직접 악영향을 끼친 것은 높은 임대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점심시간에도 한산한 종각 '젊음의 거리' 음식점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자연기자

부대찌개 집을 운영하는 사장 김 모 씨(45)는 올해 매출이 거의 20% 가까이 줄었다고 한탄했다. 그는 “손님은 계속 줄고 매출은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인건비는 오르니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대찌개는 불 앞에서 끓여 먹는 음식이라 매장이 더우면 손님들도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다. 손님은 없는데 에어컨만 매일 틀어놓고 있다. 임대료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전기세도 걱정이다”고 하소연했다. 밤 12시까지 운영하던 영업시간도 2시간 단축했다. 그는 “다른 식당도 다 문을 일찍 닫는다. 알바생도 3명에서 1명으로 줄였다. 다른 음식점들도 거의 다 알바를 줄이고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5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권 모 씨(53)는 곧 임대계약이 끝나면 문을 닫을 예정이다. 권 씨는 “서민경기가 안 좋은 데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니, 사람들이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돈을 쓰지 않는다”면서 “요 근래 수많은 주변 상가의 간판이 바뀌고,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료가 내려가는 추세지만, 그마저도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라고 말했다.

37평 월세 1540만원의 베트남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은정(54) 씨는 가장 큰 부담이 임대료라고 했다. 조 씨는 “임대료가 오르지 않았지만 상권이 죽은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다”면서 “매출이 계속 떨어져 지난달보다 매출이 1000만원 줄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미투운동이 확산된 후 줄어든 회식과 최저임금까지 오르니 너무 힘들다”며 울상을 지었다.

▲ 메인 거리에 위치한 한 종각 건물에 '임대 표지'가 붙어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자연 기자

 

주변상권으로 이동한 유동인구도 한 몫

젊음의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많은 사람이 오갔다. 젊음의 거리가 이렇게 쇠퇴한 이유는 무엇일까? 종로의 한 인근 공인중개사는 상권이 주변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임대료가 계속 오른 것을 원인으로 보았다. 그는 “광화문 근처에 르메이에르, GS 건설 등이 들어서면서 상권이 이동했다. 훨씬 좋은 서비스에 매물들이 쏟아지고 프랜차이즈도 이동하면서 종로 상권은 많이 죽었다”고 전했다. 종로 주변 서촌, 북촌 등 이색 골목상권이 인기를 끌고 광화문일대에 신규 상가빌딩 공급이 넘쳐나자 상인들이 더 낮은 임대료나 더 좋은 영업환경을 찾아 떠난 것이다.

▲ 대로변에 7년 동안 비어있다는 종로의 한 건물.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자연 기자

부동산114에 따르면 종로상권의 3.3㎡당 평균 보증금은 255만원, 월세는 19만5000원으로 조사됐다. 인근 광화문 상권과 비교해 약 1.5배 비싼 가격이다. 종로 안에서도 메인거리와 아닌 곳의 지역 편차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종각역에 위치한 한 부동산 관계자는 “지금 종로 대로변 건물 1층의 30평짜리 매장 임대료는 보증금과 권리금을 합해 5억 정도다. 예전엔 권리금이 더 세서 7억이었고, 10년 전에 10억이었다”면서 “거기에 새로 매장을 꾸미는 시설비 등이 더해지면 3억이 늘어나 8억이라고 보면된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믹리뷰>가 직접 취재해본 결과 10~11평 규모의 스테이크를 파는 술집은 보증금과 권리금은 밝히지 않았고 월 임대료는 550만원이었다. 현실에 맞춰 임대료를 내린 건물주들도 있고, 임대료를 낮추느니 차라리 비워두는 것이 낫다는 건물주들도 있어 월세가 1억인 삼일대로에 닿아 있는 한 건물은 7년째 비어 있다.

종각역 근처 작은 컨테이너에서 20년째 구두수선을 하고 있는 이 모 씨(57)는 상권이 가라앉는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2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켰는데, 식객촌과 피맛골로 상권이 옮겨가면서 올해만큼 경기가 힘든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구두방을 찾는 손님이 80% 줄어 문을 닫을까 고민 중이다. 그는 현재 주변 가게에서 나오는 박스를 모아 생계비에 보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힘들어졌다. 그는 “장사가 안 돼서 모이는 박스의 양도 반 이상 줄었다”면서 “㎏당 40원 정도 하는 폐지를 이렇게 모아서 어떻게 살아가겠나”라며 울상을 지었다.

건물주, “공실이어도 괜찮다”

종로의 상권이 죽고 있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황에도 대다수 건물주가 임대료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된다. 한번 임대료를 내리면 주변 시세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인상이 어려운 이유도 있다. 그러나 장기간 종로의 건물주일 경우 서둘러 임대할 필요가 없다. 이미 지난 시절 임대료로 벌 만큼 벌었기 때문에 공실로 둬도 상관없다.

종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대로변 상가의 임대료는 20여년 전 급등해 형성된 가격인데 오랜 건물주들은 담보로 잡힌 것도 거의 없이 장부가 깨끗해서 공실이 나도 월세를 내리지 않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들이 입주해도 매출이 떨어져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관계자는 “화장품 브랜드는 마진율이 90%라 버티고 있다. 임대료가 내려가지 않으면 이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