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가상통화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사실상 ICO(가상통화 공개)를 금지한 가운데 국내 가상통화 시장은 중국 등 외국 거래소의 텃밭으로 변하고 있으며, 시장 투명성을 추구한다는 본래의 취지도 흔들리고 있다.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등 국내 주요 거래소의 시장 점유율이 크게 떨어지는 가운데 수사당국의 압박도 심해지고 있다. 가상통화 시장의 약세가 블록체인 기술 전반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부의 국내 가상통화 시장 정책이 사실상 실패로 판명난 가운데, 최근 석연치않은 ICO들이 대거 등장해 투자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 카카오를 사칭한 ICO. 출처=카카오

돈스코이부터 카카오까지
최근 국내 가상통화 시장에서 돈스코이호의 망령이 판치고 있다.

발단은 싱가포르 신일그룹이라는 기업이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인근에 침몰한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며 시작됐다. 이들은 돈스코이호가 2003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발견한 진짜 보물선이며, 침몰한 배에는 천문학적인 가치의 금괴가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신일그룹은 인양할 배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금괴를 담보로 신일골드코인(SCG)를 발행해 판매했다. 류상미 전 신입그룹 대표가 건설용 철강업체 회사인 제일제강 지분을 7.73% 매입하자 관련 주가가 들썩이는 등, 싱가포르 신일그룹 사태는 가상통화는 물론 일반 주식시장까지 강타했다.

결국 사기로 가닥이 잡히는 모양새다. 싱가포르 신일그룹은 재차 기자회견을 열어 돈스코이호에 금괴가 실려있으며 이를 인양할 것이라 발표했으나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SCG가 사기코인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한편, 싱가포르 신일그룹도 실체가 없는 페이퍼 컴퍼니라는 점도 확인됐다. 현재 경찰은 신일그룹 전 회장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한 상태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ICT 기업들이 블록체인에 뛰어들며, 이들을 사칭한 코인 발행 시도도 있다.

카카오는 지난달 19일 최근 카카오 네트워크 KON이라는 피싱 사이트가 등장하자“계열회사 그라운드X를 통해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코인세일 이와 관련해 카카오를 연상하게 만드는 어떠한 내용도 당사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카카오 네트워크 KON을 살펴보면 블록체인 업계의 많은 전문가들이 팀을 주도하는 것으로 묘사됐다. 유저 인터페이스도 카카오와 비슷하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금시초문이며, 카카오 네트워크 KON은 사실상 사기극으로 판명되는 분위기다. 카카오는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카카오코인을 만들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ICT 기업 시스코도 사기 ICO에 휘말렸다. 커뮤니티와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통해 시스코 코인, 혹은 시스코 FSC 코인을 홍보하거나 판매하는 일이 벌어지자 시스코 코리아는 지난 5월 "시스코 코인 등은 시스코와 전혀 상관이 없으며, 법적인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스코 코인, 시스코 FSC 코인의 정체는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일부 커뮤니티를 통해 이를 홍보하는 게시글이 등장하고 있으며, 개발자로 추정되는 이들은 시스코 코인을 시스코 본사의 블록체인 개발팀이 만들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최근 가상통화를 둘러싼 논란이 깊어지는 가운데, 일부 사기성 코인이 범람해 업계를 망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스코 코리아는 "당사의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 시스코 FSC 코인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있다"면서 "사기 등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요망한다"고 강조했다.

사기는 아니지만 ICO 준비 과정에서 오해가 생겨 구설수에 오른 경우도 있다. 팬텀코인이 대표적이다. 푸드테크 프로젝트를 위해 ICO를 단행한 팬텀코인은 정상적인 방식을 거쳐 최근 4000만달러를 조달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팬텀코인의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배달의민족이 팬텀코인에 참여하고 있다는 오보를 내 문제가 됐다. 배달의민족은 “팬텀코인이라는 블록체인 가상통화 ICO가 추진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향후 “가상화폐로 배달음식 결제”도 가능해 질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다수 있었지만 배달의민족과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일부 투자자들이 배달의민족을 거론하며 팬텀코인의 ICO를 홍보하는 일이 벌어지자 과대광고의 부작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 시스코를 사칭한 ICO. 출처=갈무리

ICO 전략 가다듬어야
국내 ICO는 불법이 아니라, 무(無)법으로 봐야 한다. 금지했으나 명확한 금지 법안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어정쩡한 스탠스'에 국내 가상통화 시장이 더 큰 혼란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금이라도 ICO에 대한 전향적인 전략을 구축해 음지의 ICO를 양지로 끌어내는 전략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ICO 규제안을 발표하며 불확실성을 해소한 장면이 반면교사다. 규제로 나서면서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걷어내 검증된 ICO를 유치, 아시아 ICO 허브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탄압 일변도가 이어지며 시장의 불확실성만 증폭된 국내 사정과는 명확한 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