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승현 기자, 김진후 기자, 박자연 기자] 주 52시간제 시행과 최저임금 인상, 불경기가 겹치면서 자영업자들이 최대의 난관을 맞이하고 있다. 명동과 종로 등 주요 상권은 물론 관광객이 몰리는 서울 삼청동, 북촌 등지에도 침체의 바람이 무겁게 상권을 누른다는 말도 퍼지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기자 세 명이 직접 현장을 확인했다.

삼청동의 현실은 ‘잔인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골목길에만 머문 공실 사태가 이제 대로변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로 곳곳의 가게에 ‘상가임대’ 표지가 걸려 있고 심지어 ‘전층임대’ 간판도 붙어 있었다. 상인들은 매출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에 도달했다고 입을 모았다. 당사자들은 업종별로 서로 다른 부분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3일 오후 찾은 삼청동.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네 시간 동안 거리를 오간 인원은 100명 남짓으로 추산됐다. 10분에 두세 명 꼴이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개인·가족 단위의 관광객과 삼청동 주민이 그들의 전부였다.

나날이 기록을 갈아치우는 폭염은 가라앉은 상권을 바싹 태우는 듯했다. 한때 관광객이 북적이며 활력을 보인 삼청동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상인들은 먼저 임대료에서 원인을 찾았다.

상인들에 따르면 관광명소로 주목받기 이전인 2008년 30평 매장의 임대료는 보증금 1억4000만원, 월세 620만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는 3배 가까이 올랐다. 보증금은 3억원에 육박하고, 월세도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곳이 허다하다고 했다.

통상 정독도서관을 기준으로 북서쪽을 삼청동, 남동쪽을 북촌(가회동·계동) 상권으로 분류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둥지내몰림)의 대표 예시로 자주 거론된 곳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상승과 하락 곡선을 그린 곳이 삼청동 중앙로다.

경복궁 동쪽 삼청로가 청와대로 가는 길에서 갈라져 동편으로 꺾어 들어가면 독특한 인테리어의 디저트 카페와 ‘보세’ 옷 상점들이 있다. 2000년대 후반 북촌 한옥마을 정비로 북촌 지역 경기가 살아나면서 상권이 이곳까지 확장됐다. 특히 ‘카페거리’로 불리는 중앙로 옆길은 2012년경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모이기 일쑤였다. 북악산이 가깝고 트여있지 않아 북촌 권역 안에서도 고즈넉하고 색다른 분위기로 유명세를 탔고, 이윽고 삼청동은 독립 상권으로 차츰 성장했다.

▲ 사진은 줄폐업한 '카페골목'의 카페 중 하나. 출처=이코노믹리뷰.

양날의 검이었다. 삼청동 중앙로는 골짜기 지형이라 교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이 때문에 자가용이 아니면 진입하기 힘들다. 지하철은 없고, 그나마 다니는 대중교통은 마을버스 1대에 불과하다. 주변에 대형 기업이나 사무실이 없어 고정된 구매층이 없다. 아파트도 없어 지역주민도 두텁지 않다.

동네 주민의 말에 따르면 주중엔 외국인 관광객들, 주말엔 내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그러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대상이 관광객에 맞춰지면서, 상권의 양상도 그에 맞게 변해갔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겨냥해 2014년 말부터 화장품 브랜드가 입점했고, 프랜차이즈들이 하나둘 자리 잡으면서 임대료는 이전보다도 껑충 뛰었다.

붐이 일은 상권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매장이 늘어났고, 건물주와 협상이 잘 되지 않으면 폐업하는 곳도 생겼다. 거기에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새로운 업체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삼청동 중앙로가 텅 비기 시작했다.

<이코노믹리뷰>가 상인들을 직접 만나본 결과, 폐쇄형 지형과 매출부진이 근본 원인이라는 데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지만, 원인을 따지는 데에선 업종별로 조금씩 인식의 차이를 보였다.

보세 상품 판매점, “상권 형성이 불완전”

중앙로의 한 옷가게에 근무 중인 권수정(26) 씨는 “올해 초부터 봄 사이에 떠나는 업체가 많아졌다”면서 “상권이 번화가에 알맞게 형성되지 않고 전부 분산된 게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약국·패스트푸드·쇼핑할 곳 등이 모여 있으면 방문객의 니즈가 충족될 텐데, 서로 떨어져있으니 ‘상권’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김은영(24) 씨는 삼청동 상권을 두고 “경복궁, 창덕궁 등 궁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라면서 “익선동처럼 궁에 더 가깝고 매력 있는 동네가 조성되면서 관광객이 안국역 근처에 머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청동은 걸어서 방문하기엔 멀다는 것이다.  권씨는 “봄·가을에 예쁜 삼청동인 만큼, 가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면서 매출 회복을 꿈꾸고 있었다.

▲ 이코노믹리뷰는 3일 삼청동 현장을 둘러봤다. 사진은 중앙로로 불리는 대로변의 대형 매장. 출처=이코노믹리뷰.

음식점은 “최저임금 부담도 상당해”

삼청동 주민센터 옆 ‘스시go’를 운영하는 하지원 대표(42)는 “삼청동의 폐쇄된 지형 때문에, 광화문에서 어떤 일이 생기면 바로 직격을 맞는다”고 원인을 짚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여러 이슈 때문에 광화문에서 집회가 많이 열렸다”면서 “삼청동으로 진입하는 차량이 통제되면 상인으로선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또 더위, 추위, 호우 등 날씨의 영향이 있는 날이면 손님들이 예약을 했다가도 취소하는 바람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요식업계의 특성은 또 있었다. 임대료 부담도 상당하지만,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물가 전반이 올랐다는 것이다. 하 대표는 “지난해보다 쌀값이 4000~5000원이나 전례 없이 폭등했다. 다른 식재료비 상승도 살로 느낄 정도”라면서 “임대료는 집집마다 다른데, 입주하는 사람은 그걸 감수하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임대료 부담은 중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우리 매장에 고용된 사람들은 이미 내년 최저임금보다 더 많이 주고 있다”면서도 “일은 못하면서 최저임금만 받으면 된다는 풍토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텅 비어가는 건물들에 대해서 하 대표는 “결국 임대료, 인건비 모두 버티지 못할 정도로 저조한 매출 때문”이라 정리했다. 하 대표는 “건물주가 인테리어 비용 2억을 들여 직접 운영하는 매장도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면서 “아이스크림 가게가 7월에 철수하는 상권에서 이 상황을 버틸 높은 매출은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

하 대표에 따르면 중국 단체 관광은 삼청동의 외식업체와 별 관련이 없었다. 그는 “30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자유시간을 주기 때문에, 식사를 하러 오기엔 실제 구매능력이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관광객 급감으로 화장품 업체에 여파

화장품 업체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한 화장품 판매점의 매니저 강 모 씨는 관광객의 감소가 매출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강 씨는 ‘광화문의 집회로 차량 통제’가 한 요인이라는 것엔 동의하면서도, “화장품 매출 부진은 사드의 문제, 특히 중국의 ‘한한령’ 문제가 컸다”면서 명동 화장품 업체들이 침체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그녀는 “주중 오전에 방문하는 관광버스의 수 자체가 확 줄었다”면서 “일본이나 영어권의 개인·가족 단위 방문이 중국 단체 관광객보다 많아지면서, 매출도 반 토막 났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 빈 건물들 중에 꽤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가 사용하던 건물이 많다”고 했다. 또 강 씨는 “높은 임대료를 충당하느라 음식과 커피 가격이 너무 높아 점심을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높아 물가도 비싸진 게 고객들이 외면하고 있는 이유라는 것이다.

유명 브랜드도 임대료 앞에선 ‘을’

스타벅스 같은 유명 브랜드는 어떨까. 서규억 스타벅스커피코리아 팀장은 “대부분의 지점을 번화가에 출점하는 스타벅스는, 임대료와 인건비가 전체 유지비의 40%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홍보·사회공헌팀 팀장에 따르면 모든 지점이 스타벅스 본사 직영점이기 때문에, 본사 차원에서 임대료와 인건비를 관리한다.

임대료, 인건비 중 더 큰 비중을 묻자 “스타벅스는 종각·명동의 영세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골목에 진출하지 않는다”면서 “그래서 주된 상권에 입점하면 임대료 부담이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 건물주와 임대료를 협의하기 어렵다”면서 “집주인이 안정된 입주를 추구하는 게 대부분이라, 5년 장기 계약을 하는 스타벅스를 집주인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스타벅스 측은 건물주와 윈윈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장·단기 계약, 인테리어 준비 등을 사전에 소통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서 팀장은 “아무래도 스타벅스는 시간제 노동자들을 쓰지 않다 보니 인센티브 등을 반영하면 인건비 부담도 무시 못 할 수준”이라고 상황의 복잡함을 설명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소통 원활해야

이에 대해 삼청동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공실 사태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책임의식을 갖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분석하면서 “건물주는 정확한 현실을 고려한 적정 임대료와 계약방식으로 공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임차인들에겐 “한복대여처럼 잘 된다는 업종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상권의 메리트를 떨어트리는 ‘제 살 깎아먹기’”라고 경고하면서도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눈앞의 임대료에 급급해지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