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애플이 역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기록한 기업이 됐습니다. 애플의 주가는 3일 뉴욕증시 기준 207.4달러를 기록하며 기념비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습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면서 “몹시 흥분되는 일이며 우리는 미래에도 우리의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잡스의 카리스마, 애플을 정의하다
애플은 그 어떤 스타트업보다 가장 스타트업다운 기업이지만, 기업의 역사로만 보면 중견기업입니다. 게임회사 아타리를 퇴사한 스티브 잡스와 엔지니어 동네친구 스티브 워즈니악이 실리콘밸리의 한 차고에서 애플을 설립한 것이 1976년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40년이 넘었습니다.
애플의 성장에도 부침이 많았습니다. 잡스는 애플을 설립한 후 특유의 영업력으로 인근에서 컴퓨터 매장을 운영하는 폴 터렐의 납품의뢰를 따냈습니다. 직후 아타리의 기술자인 론 웨인(Ronald Wayne)을 영입해 탄생시킨 애플I은 10개월 동안 200대나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뒤이어 출시한 애플II도 크게 성공하면서 잡스는 돈방석에 올랐습니다.
세계 PC 시장의 거인 IBM이 움직였습니다. IBM은 유통망과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애플이 가능성을 증명한 개인용 PC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잡스는 리사 프로젝트를 가동해 GUI를 탑재한 애플 리사를 출시했지만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잡스는 팹시콜라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를 "설탕물을 팔며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자"는 말로 영입했으나, 존 스컬리의 반발에 결국 애플을 떠났습니다.
잡스가 떠난 애플은 IBM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의 맹공으로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갑니다. 그 때 넥스트를 설립한 잡스가 애플로 복귀합니다. 잡스는 비대해진 맥킨토시 라인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맥킨토시, '아이맥 G3'를 발표하는 한편 회심의 한 방을 보여줍니다. 2001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희대의 역작. 아이튠즈 스토어와 연결해 현재의 애플이 존재하도록 만든 아이팟 신화입니다.
아이폰은 20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2007에서 처음 공개됩니다. 키노트연설을 한 잡스는 블랙베리의 스마트폰과 아이폰을 비교하면서 "폰에 달린 조잡한 키보드를 언제까지 사용할 것인가"라는 파격적인 멘트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초기 아이폰은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3.5인치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아이폰 2G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Apple reinvents the phone(애플이 전화기를 재발명하다)“
팀 쿡, 관리의 시대를 말하다
애플을 이끌었던 열정적이고 광적이면서, 편집증적이며 독불장군이었던 잡스는 2011년 암으로 사망합니다. 모두가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누구일 것인지 주목하는 가운데, 놀랍게도 팀 쿡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행동 하나하나가 화려했던 잡스와 달리 팀 쿡은 조용하고, 과묵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누구도 팀 쿡이 잡스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입니다. 애플이 잡스였고, 잡스가 애플이었던 시절. 애플은 잡스 2.0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포천의 유명기자 아담 래빈스키는 2012년 저서 <인사이드 애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팀 쿡이 애플의 CEO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래빈스키에 따르면 팀 쿡과 잡스의 공통점은 1960년대 록앤롤 히트곡을 좋아하는 취향 외에는 없다고 합니다. 잡스가 호화로운 요트를 타고 세계를 모험하는 것을 즐겼다면, 팀 쿡의 취미는 요세미티 국립공원 등산이라고 합니다. 팀 쿡은 애플의 영원한 숙적인 IBM에서 무려 11년이나 일하기도 했습니다.
잡스는 병으로 정상적인 업무를 보기 어려워지자 퇴직을 결심하고 다음날 바로 쿡을 차기 CEO로 임명합니다. 자기와 전혀 다른 캐릭터인 쿡을 후계자로 삼은 셈입니다. 애플은 어떻게 됐을까요?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아이폰 밴드게이트, 잦은 iOS 오류, 아이폰 패블릿 시도 등 많은 논란과 사건사고가 쿡의 시대에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쿡의 시대에 이르러 애플이 몰락할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쿡은 잡스처럼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달변가도 아니고, 본능적인 혁신의 화신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쿡이 잡스의 유산을 지우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잡스는 4인치 아이폰을 지향했으나 쿡은 아이폰6에 이르러 경쟁사 삼성전자의 패블릿 스타일을 따라가기 시작했고, 심지어 스타일러스 스마트폰 트렌드까지 적극적으로 체화해 애플펜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모두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잡스의 '원 모어 띵'이 사라진 자리에는, 따분하고 별볼일없는 게이남자만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애플의 마법은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잡스를 그리워하며 과거의 애플을 말할 때, 쿡은 복싱의 인파이터처럼 차근차근 포인트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애플페이, 자율주행차, 웨어러블 등 아이폰 이상의 가치에 집중한 것도 쿡의 시대에 벌어진 일입니다. 필요이상의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작업이 쿡의 특기입니다.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 모든 권력을 본인에게 집중시켰던 잡스와 달리 부문장들에게 충분한 권한과 책임을 줍니다.
필요하다면 자존심을 숙이고 머리를 숙입니다. 쿡은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중국으로 날아가 현지 관리들을 만나며 현지 유통선을 지켜냈습니다.
잡스의 애플이 앞만 보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였다면, 쿡의 애플은 지금까지 잡스가 이룬 과실을 차분하게 정리하면서 조금씩 전열을 재정비하는 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잡스의 흔적도 과감하게 지우는 결단을 보입니다. 유통망 관리를 통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수익을 독식하면서, ICT 업계의 트렌드를 주도한 애플의 저력입니다. 애플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각)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매출 533억달러, 순이익 115억달러라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합니다.
또 다른 카리스마..제프 베조스
쿡은 잡스의 유산을 활용하거나, 과감하게 내치며 시가총액 1조달러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남은 것은 제국의 유지입니다. 쿡이 제국의 유지를 위해 상대해야 하는 사람이 잡스처럼 화려하고 강렬한 CEO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바로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입니다.
베조스는 잡스와 비슷한 사람입니다. 그는 잡스처럼 판을 흔들고, 기회를 엿볼 줄 압니다. 미국 시애틀 인근에 무료 바나나 스탠드를 비치해 주변 상권에 예측불허의 충격을 안겼고, 무인매장 아마존고를 통해 지금까지 경험하기 어려운 충격과 공포를 안겼습니다.
베조스가 이끄는 아마존의 조직문화는 ‘성공을 위한 질주’입니다. 2002년 베조스가 사내에 ‘두 개의 피자 팀(Two-Pizza Teams)’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피자 두 개를 먹을 수 있는 10명 수준의 팀을 꾸려 자유롭게 사업을 전개하라는 뜻이지만, 그 의지에는 분명한 책임이 따라왔다고 합니다. 성과 달성 여부는 ‘적합성 함수(Fitness Functions)’라는 명확한 실측으로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은 100번의 시도 중 90번을 실패해도, 큰 줄기로 보면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베조스는 뛰어난 후각과, 필요하다면 직원을 압박하고 겁박하는 무자비한 폭군의 면모도 뽐내고 있습니다. 자기의 이메일을 외부에 공개해 직접 고객의 불편함을 청취하고 바로 '???'라는 글과 함께 담당자에게 보낸다고 합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경우 무차별적인 분노를 터트리는 성향이 언론에 보도되어 큰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아마존은 올해 2분기 순이익 25억3000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전년 동기 1억9700만달러의 12배를 상회하는 성적이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한 529억달러를 기록했습니다. 클라우드 AWS를 중심으로 이커머스라는 새로운 무기가 주효했다는 평가입니다. 자연스럽게 애플의 뒤를 이어 시가총액 1조달러 고지에 오를 유력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애플과 아마존의 비즈니스 영역은 크게 겹치지 않지만, 관리형 CEO인 쿡이 전임자 잡스와 닮은 베조스와 1조달러 경쟁을 벌이는 장면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