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남은 오레곤주 벤드의 블로버스터 매장.     출처= Sandy Harding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한 남자가 토요일 아침, 오레곤주 벤드(Bend)의 한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Blockbuster)의 고풍스런 입구를 가로 막고 있다. 매장의 총지배인 샌디 하딩이 매장에서 나와 외쳤다.

“거기 주차하면 안 돼요.”

하딩은 요즘 블록버스터의 마지막 매장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제지하느라 바쁘다. 한 때 최대 비디오 대여 유통 리테일 스토어였던 블록버스터는 이제 현대화 물결의 희생의 상징이 되었다.

이 회사의 전성기였던 2004년에는, 미국의 전역의 도시 곳곳과 교외 쇼핑몰에 있는 9000개의 블록버스터 매장은 가족 영화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찾는 명소였다. 그러나 넷플릭스(Netflix), 레드박스(Redbox) 같은 디지털 진보의 냉엄한 도전은 블록버스터 모든 매장에서 고객을 잠식해 나갔다.

수천 개의 블록버스터 매장이 문을 닫았고 2018년 7월에는 단 세 곳만 남았다. 알래스카에 두 곳, 그리고 오레곤주 벤드에 있는 샌디 하딩의 매장.

그나마 이 달이 지나면 알래스카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 두 곳의 매장마저 문을 닫는다. 그러면 오레곤에 있는 하딩의 매장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블록버스터 매장이 된다.

"사람들은 매일 이 매장 앞을 지나면서 ‘영업중’이란 팻말을 보고 이렇게 말하지요. ‘오, 이런, 어떻게 아직도 이런 게 있지? 너 왜 아직 거기 있는 거야?’”

하딩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 중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으려는 낮모르는 손님들만 북적거린다고 말했다. 이제는 비디오를 빌리려는 손님보다 구경꾼들과 관광객들만이 매장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장사진을 치고 있다. 소문이 퍼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블로버스터 간판 앞에서 셀카를 찍거나 일부는 매장안에 들어와 뭔가를 사기도 한다.

하딩은 2005년 5월 이 매장에 취직해 14년 동안 근무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동안 바뀐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꾸준한 고객 서비스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고, NBC에서 현재 방영중인 ‘더 굿 플레이스’(The good Place) 같은 최신 드라마도 대여해 준다.

매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IBM 컴퓨터에는 여전히 같은 플로피 디스크가 돌아가고 있어 젊은이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 컴퓨터는 아무도 해킹할 수 없지요. 그게 이 컴퓨터의 장점입니다.”

그러나 하딩도 넷플릭스나 레드박스가 더 많은 옵션을 제공하면서부터 매출이 떨어졌고, 인터넷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사람들이 엔터테인먼트를 소비하는 방식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 대여가 크게 떨어졌다. 1989년에 블록버스터는 17시간마다 매장이 하나씩 늘어났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거의 같은 속도로 매장 문을 닫았다.

케이블 TV 방송국을 운영하는 디쉬 네트워크(Dish Network)가 2011년에 블록버스터를 인수한 이후 몇 년 동안, 대부분의 지역에서 매장이 문을 닫고 겨우 몇 개만 살아 남아 버텼다.

▲ 마지막 남은 오레곤주 벤드의 블로버스터 매장 내부.      출처= Sandy Harding

하딩은 현재 고객들의 대부분은 몇 년 동안 단골 고객이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매장 통로를 걸으면서 향수를 느끼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찾기 위해 진열대를 샅샅이 뒤지기도 한다. 새로 출시되었거나 인기있는 영화의 마지막 판본을 수집하는 것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다운로드 버튼을 누르는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작은 스릴을 맛보게 해준다.

마지막까지 남은 세 곳의 블록버스터 매장 중 두 곳이 알래스카에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인 인구가 많고, 겨울이 길고 어두운 알래스카는 인터넷 사용료가 매우 비싸서, 비디오 대여 사업이 다른 곳에서 소멸된 이후에도 여전히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알래스카의 두 매장도 폐점을 발표했다. 알래스카 블록버스터의 케빈 데이무드 총지배인은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그 동안 매장을 사랑해 준 단골 고객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28년간 당신들을 가족으로 생각했습니다."

첨부된 동영상에는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매장 앞 주차장에서 양초를 놓고 무릎을 꿇는 장면이 나온다. 알래스카 매장은 곧 재고떨이를 위한 행사를 갖는다.  

케이블 채널 HBO에서 ‘존 올리버와 함께 하는 래스트 위크 투나잇’(Last Week Tonight with John Oliver) 쇼의 진행자인 존 올리버는 2005년 영화 <신데렐라 맨>에서 러셀 크로우가 입었던 조끼를 알래스카 매장에 보내면서까지 고객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알래스카 매장의 문을 닫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블록버스터의 운명을 인과응보라고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거대 체인망이라는 지배력을 앞세워 영세 소규모 비디오 대여점들을 망하게 한 장본인이 혁신에 적응하지 못해 자신도 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딩은 이제 그녀의 매장을 벤드라는 지역 사회의 중심으로 남기를 바란다.

미국 코미디 배우 진 와일더가 2016년 사망했을 때, 이를 애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그가 출연했던 영화 ‘불타는 안장’(Blazing Saddles), ‘영 프랑케슈타인’(Young Frankenstein), ‘월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 같은 영화를 찾았지만 볼 수 없었다.  

하딩의 매장에도 많은 고객들이 찾아와 물었다. “진 와일더의 영화 있나요?”
하딩이 대답했다. “물론 있고 말고요.”

당신이 다른 어디에서도 원하는 영화를 찾을 수 없었다면 답은 간단하다. 벤드 3번가 레드박스 지나 리비어에 있는 블록버스터에 가보라. 거기 가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