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희준 기자]도처에 불길한 지표뿐이다. 국내에서 날마다 나오는 지표는 현재가 불안함을 일깨우고, 그리고 가까운 미래가 좋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생산과 설비투자 지표가 그렇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내총생산(GDP) 역시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부진하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불황에다 52시간 근로제, 시간당 임금 인상이 겹치면서 자영업자들이 “못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창업보다 폐업이 많다는 소식도 연이어 나온다.

이뿐이 아니다. 기업과 은행들도 죽을 상을 하고 있다. 상반기 실적이 좋았건만 “정작 어려운 것은 지금부터”라고 이들은 공히 입을 모은다. 이들은 일제히 “내년이 더 걱정된다”고 말한다. 불황과 더위가 겹쳐 체감경기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지친 이들은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 때문에 힘겨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사실 정치권은 특정 대기업을 겨냥해 돈을 내놓으라고 간접 윽박지른다. 집권 여당의 한 인사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이 얼마를 내놓으면 국민 한 사람당 얼마가 돌아간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말이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경제가 침체의 깊은 구렁으로 가라앉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태산 같다. 국민의 원성은 높고 대통령 지지율은 하락한다. 혹자는 내년에는 “외환위기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울한 말도 전한다. 말이 씨가 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되는 게 정부와 기업, 가계 등 각 경제주체들의 책무 아닌가.

희망의 싹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 기업들이 그나마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 그 하나요 정부가 현장으로 달려가 소통에 나서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우선 삼성전자, 하이닉스, LG화학, 삼성SDS, 삼성 SDI, 삼성전기 등의 실적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 기업들은 묵묵히 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했다. 삼성전기는 적층세라막리캐패시터(MLCC)라는 제품을 판 덕분에 영업이익이 무려 193% 증가했다. 이 제품은 포도주 잔에 가득 채울 경우 1억원에 이르는 고가 제품이다. 중국의 추격, 선진국의 견제 속에 이런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있으니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생존과 이익추구를 위해 혁신을 하고 경쟁력의 칼날을 예리하게 간다.

남은 것은 정부가 제 일을 하는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도 잘 하는 일이다. 서민층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고 해결책을 소상히 설명하면 현재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불만을 어느 정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김동연 장관의 시장 방문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단기 대증요법을 내놓는 과거 정부의 행태를 답습한다면 경기는 반짝 살아났다가 가라앉으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렇기에 정부는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야 한다. 먼저 민생탐방을 통해 서민과 중산층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고 “어려움을 알고 있으며 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이런저런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소상하고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동시에 지난 수십년간 각종 문제가 켜켜이 쌓인 우리 경제를 근본 개혁할 수 있는 근원처방전, 10년 아니 20년 뒤를 내다보는 국정철학과 그것을 집행하는 정책방향을 수립하고 제시하는 일을 해야 한다.

후자를 게을리하면 시장 상인을 만나는 일은 불만에 가득한 국민들의 시선을 잠시 돌리려는 면피용 쇼에 그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투톱’인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격주로 갖기로 한 정례회동이 국민갈등을 봉합하고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카드’를 무엇보다 빨리 내놓아야 한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지지층인 노동조합과 탈원전 세력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점은 더 잘 안다. 그렇더라도 그들의 주장에만 귀를 기울이고 그들만을 위한 정책에 몰입해서는 곤란하다. 국가경영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민생해결과 혁신을 강력히 추진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과 경제를 살리는, 힘들지만 가야 하는 길임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당장은 경제팀의 강력한 팀워크가 절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