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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일이 재미 있는 것은 일이 재미 있어서가 아냐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8.08.08  07:23:35
   

20년도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새록새록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군복무 28.5개월간의 경험이다. 당시 또래들보다 두어 살 늦게 들어간데다가, 그러잖아도 ‘욱’하는 성격에 남모르게 가슴앓이가 많았다. 통신부대에서 대대 보급행정을 내내 했고, 최상위 부대의 지원부대여서 신경 써야 하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역이 용인이었는데, 뒤편에 자그마한 산이 있었다. 지금도 그 산의 높이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정상에 통신 기지가 있었고, 그 명칭이 471고지였기 때문이다.

통신부대의 주 임무는 각 전투 부대의 통신을 지원하는 역할이기에 일반 보병보다는 덜 힘들지만, 가끔 전봇대를 타거나 하수도를 기어 다니며 통신선을 가설해야 할 때가 많다.  나는 그런 야전 훈련은 받은 적이 없었지만, 일직 당번병이 되면서 가끔 471고지로 다녀와야 할 경우가 생겼다.

471미터는 조금 높은 언덕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10년 이상을 거의 매주 다닌 북한산 백운대는 836미터이고 문수봉은 727미터, 낮은 봉우리들인 의상봉이 502미터, 원효봉은 505미터다. 게다가 북한산은 국내 오대 악산에 들어갈 정도로 암벽과 바윗길이 많은 험산이지만, 471고지로 가는 길은 험하지도 않고 바윗길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어떤 훈련보다 그 고지로 다녀오기를 싫어했다. 부대 내 모두가 똑 같은 심정이었다. ‘471고지 보다 차라리 하루 종일 삽질을 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471고지로 가려면 부대 밖으로 나가 마을을 끼고 산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 중간에는 과자, 음료수, 라면에 세제 같은 것을 파는 구멍가게도 있어서 군것질이 가능했는데도 불구하고 혼자 산을 올라야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다.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주말등산을 낙으로 삼고, 폭설에 강추위든 장마에 폭염에도 산에 가는 것이 마냥 즐겁다. 그런데 겨우 471미터급 야산에 왜 그렇게 질색 했는지 모르겠다. 그 때 471고지에 다녀오는 것은 하기 싫은 의무였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험하고 높은 산을 정말 가고 싶어서 오른다.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힘들지만 지금은 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즐거움이다.

직장이 재미가 없는 것은 돈을 받고 다니기 때문?!

최근 TV 모 오락프로그램에서 희한한 내용을 봤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각종 고민거리들을 들고 나와서 개그맨을 비롯한 MC들과 연예인 게스트들이 대화하면서 해결책을 찾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날은 너무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둔 사장의 고민이 주제였다. 외식업체여서 오후부터 일하고 늦은 밤에 퇴근을 하는 일상이었는데, 그 직원은 남들이 퇴근한 후에도 남아서 새벽까지 온갖 일을 더 했고, 시도 때도 없이 사장에게 전화로 보고도 했단다. 날이 새고 늦은 퇴근을 해서는 잠깐 쉰 뒤에 오전에 출근해 일을 하는데,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일을 해서 참다 못한 사장이 방송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는 정말 일을 하고 싶어서 일거리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꺼리는 청소부터 온갖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오히려 사장의 눈에는 부족함이 보이지 않는 매장을 둘러보면서 일거리를 찾아내는 통에 사장부터 온 회사 직원들이 맘 속에 불만이 가득했다. ‘일이 좋아, 일이 하고 싶어서’라는 그의 열정을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일 하는 것이 좋아서’ ‘일 하는 것이 즐거워서’라고 말을 한다. 사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짧은 만화 한 토막이 와 닿았다. 후배쯤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왜, 이렇게 직장이 재미가 없지?”라고 하소연을 하자 선배는 ‘재미있는 곳에 가면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돈을 받고 있으니 당연히 재미없지’라는 답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오락프로그램에 나왔던 그 사람은 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초년에 실패했던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지난 번과 같은 실패를 두 번 다시 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이었다.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는 결국 그 사업장이 잘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장이 시키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기색이 분명함에도 일을 찾게 되는 강박 관념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일본에 미라이공업이라는 회사는 직원들의 일하고자 하는 의욕과 창의성으로 거물 마쓰시타를 이겼다. 미라이공업은 일하고자 하는 의욕과 창의성을 최고의 가치로 만들었다. 전체 1만8천여개의 제품 모두가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고, 그 중 90% 이상이 특허를 받았다. 동종업계에서는 상상도 못할 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1945년 창업이래 흑자행진을 멈춘 적이 없다고 한다. 거대기업 마쓰시타를 제치고 전기자재 분야의 부동의 1위를 마크하고 있다. 원동력이 바로 그들만의 차별화된 조직문화 때문이다.

‘항상 생각하라’가 모토인데, 좀 다르게 생각하기를 원하고 있다. 일단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무조건 500엔을 지급하는데, 제안의 가치를 따지기부터 한다면 제안하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무조건이란다. 제안된 사안에 대해서는 경영진이 아닌 평사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평가한다.

미라이공업의 창업자인 야마다 아키오는 직원들의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모든 노력을 여기에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욕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자율이 필수적이라, 일을 할 때는 확실하게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다. ‘자율권을 주고 간섭을 자제하면 사람은 성장하게 되어 있고 결국 조직에 도움을 주게 된다’는 확고한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라이공업에는 출근카드가 없고, 작업복 규정도 없으며 사내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규칙도 최소한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구성원들의 수준도 다른 회사는 모방할 수도 없을 만큼 높다고 한다. 결국 이렇게 자율에서 의욕으로 그리고 성과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야말로 조직의 발전을 낳고, 이는 다시 직원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 미라이공업의 정년은 70세이고 모든 직원이 정규직이며,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한다.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힘들어 했지만 극복한 것이 바로 이런 강한 조직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알고 보면 워렌 버핏도 우리와 생각은 같아

만나기만 하면 찡그린 얼굴로 하소연을 털어놓는 지인이 있었다. 지인의 회사에서는 모든 일에 있어 모든 결정은 실무나 팀장, 임원에게도 없고, 크든 작든 물어봐야 한단다. 오너로 있는 사람과 배우자가 최고경영진 자리를 꿰차고 있는데, 단돈 십 원도 보고를 해야 진행된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신입이든 경력이든 신규 입사자들이 초기에는 뭐든 열심히 하려고 덤비다가도 몇 달 가지 못해 무기력증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오래된 직원들은 어떤 일이라도 뭔가 하기 보다는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초기에 하는 시늉만 하며 뻔질나게 보고하다가 중도에 그만 두는 묘수를 둔다고 한다. 보고서를 잔뜩 준비하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회장실 부회장실 들락거리며 일하는 티만 잔뜩 내고는, 자신과는 무관하게 보류되고 말았다는 시나리오대로 간다는 것이었다. 생색은 다 내지만 고생스럽게 일은 하지 않아도 인정받는 일거양득인 셈이었다. 그게 안타까워서 지인은 뭔가 시작하면 끝을 보기 위해 노력하다가 상처 입기 일쑤였다는 것이었다. 이런 조직에서 일은 재미도 아니고 보수를 가져다 주는 보람거리도 아니며 재앙일 뿐이다. 흉내만 내야지 실질을 끌고 가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된다.

‘취미생활을 일로 하면 좋을 것’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하지만 관건은 취미 인지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주도권을 쥐고 해 나갈 수 있는 재량권의 유무다. 천하의 워렌 버핏이 투자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림을 그린다고 칩시다. 사람들이 ‘와, 정말 멋진 그림이군’ 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하지만 누군가 ‘파란색 말고 빨간색을 좀 더 넣으면 어떨까요?’ 하고 말한다면, 그 사람과는 작별입니다. 그건 내 그림이거든요. 바로 그게 재미있는 거죠.’ 우리라고 워렌 버핏이랑 생각이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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