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SIDE > 전문가 칼럼
[박충식의 인공지능으로 보는 세상] 스피노자와 인공지능
박충식 U1대학교(아산캠퍼스)스마트IT학과 교수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8.08.08  18:16:03
   

인문학을 전문으로 공부하지 않은 필자가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항상 인공지능과 인문학을 엮어서 보려는 이유가 있다. 인공지능이 기계를 만드는 공학이기도 하지만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세부적인 이해도 필요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수단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공학화된 인문학, 즉 인문공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존재다. 인지과학 분야에서 <데카르트의 오류>(Descate’s Error)라는 책으로 주목받았던, 스피노자와 같은 포르투갈 출신의 신경생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감정 연구에서 스피노자는 인공지능과 관련해 주목받았다. 다마지오의 3부작, 첫 번째 책 <데카르트의 오류>에서는 정서와 느낌이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두 번째 책 <사건에 대한 느낌>(The Feeling of What happens)에서는 느낌과 자아가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의 역할을, 세 번째 책 <스피노자를 찾아서>(Looking for Spinoza)는 한국어 제목 <스피노자의 뇌>으로 둔갑(?)했지만 좀 더 감정을 천착한다. 책은 다마지오가 거센 바람이 부는 1999년 12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스피노자의 생가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마지오는 영어에서나 한국어에서나 미묘한 차이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통칭 감정이라는 개념에 관해 정서(Emotion), 느낌(Feeling), 감정(Affect)로 구별한다. 정서는 신체적 현상으로 통증이나 쾌락과 같은 경험이며, 느낌은 정서가 사고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괴로운 상태나 평안한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고 감정은 이 두 가지를 통칭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정서를 표현하는 능력을 잃으면 그에 해당하는 느낌을 상실한다고 한다. 느낌과 의식은 복잡한 환경 속에서 복잡한 행동 반응이 요구되는 인간과 같은 생물의 경우, 과거를 염두에 두고 미래를 예측하는 자전적인 자아와 추론 능력, 복잡한 의사결정능력을 가진 의식의 발달이 요구되었고 그 의식 절차의 일부로 느낌이 출현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판단은 언제나 과거의 기억과 연관된 정서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행동은 감성, 부끄러움, 긍지, 복종, 등 정서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윤리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정서의 구체적인 기록이다. 스피노자의 저서 <에티카>에는 덕의 일차적인 기반은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출발하며 행복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적혀 있다. 현대 진화론이나 뇌과학에 상응하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참고 1).

   

<그림 1>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와 <에티카>(<참고 2>)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지능적인 기계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인간이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고 영혼을 가진 존재라고 한다면 일찌감치 인공지능은 컴퓨터 과학이 아니라 신학이나 종교학 분야에 속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피노자는 인간에 대한 유물론적 철학을 필두로 심신일원론적 이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이 유물론적인 존재를 지탱해주는 근원적인 힘으로서의 코나투스(Conatus), 그리고 감정에 대한 탐구, 더 나아가 이러한 존재의 윤리적인 면까지 일관된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물질인 컴퓨터로 인간과 같은 기계를 만들려는 인공지능 연구자에게는 선지자 같은 존재가 아닐까?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그런 내용의 책이고 그리므로 인공지능 연구자에게는 복음과 같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의 스피노자는 놀랍도록 현대적인 사상가다. 알튀세르, 게루로부터 들뢰즈, 마트롱, 네그리, 마슈레, 발리바르, 등 20세기 후반 대륙으로부터의 스피노자 연구가 비록 정치적이기는 하지만 스피노자 스스로 정신을 정신적 자동장치(Automat Spirituale)로 이해하고 있을 정도로 본질적인 면에서는 반인간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이라는 의미에서 현대적이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와 달리 정신과 신체를 근본적으로 상이한 두개의 실체로 보지 않고 처음부터 인간을 통일체로 파악하면서 정신과 신체를 이러한 통일체의 두 개의 표현으로 본다. 스피노자는 갈릴레이, 데카르트와 더불어 자연을 기하학적인 관점에 따라 설명하려는 근대 과학의 기획을 공유한다. 그러므로 신체만이 아니라 인간 전체, 따라서 정신도 자연물과 동일한 인과관계에 따라 규정되며, 동일한 관성 원리에 따라 작용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사진만 보고 고양이인지 아닌지, 바둑판만 보고 다음 바둑돌을 어디에 놓을지 등만을 목표로 삼는, 현재의 약한 인공지능적인 방법만으로는 인간과 같은 강한 인공지능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 개발자들 사이에 의미 있는 무한 학습을 만들 수 있다면 제대로 된 인공지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농담은 코나투스로부터 시작한다면 진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책 <자아, 마음에 오다: 의식적 두뇌만르기>(Self comes to Mind: Constructing The Conscious Brain)의 목차 앞 페이지에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표현하는, 필자 또한 인애해 마지않는, 또 다른 포르투갈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의 <불안의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나의 영혼은 숨겨진 오케스트라와 같다: 나는 내 안에서 어떤 악기들이 – 현악기들, 하프들, 팀벌들, 그리고 드럼들 - 어울려서 연주되어 나오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나 자신을 오케스트라로 알아차릴 뿐이다.”

 

참고 1. 안토니오 다마지오(저), 스피노자의 뇌, 임지원(역), 사이언스북스, 2007.

참고 2. https://en.wikipedia.org/wiki/Baruch_Spinoza

참고 3. 질 들뢰즈(저), 스피노자의 철학, 박기순(역), 민음사, 2001.

박충식 U1대학교(아산캠퍼스)스마트IT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태그]

#이코노믹리뷰, #박충식 U1대학교(아산캠퍼스)스마트IT학과 교수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전문가 칼럼
여백
여백
동영상
PREV NEXT
여백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회사소개채용정보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인터넷신문위원회 바로가기 YOU TUBE  |  경제M  |  PLAY G  |  ER TV  |  ZZIM
RSS HOME 버튼 뒤로가기 버튼 위로가기 버튼
이코노믹리뷰 로고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84 10F (운니동, 가든타워)  |  대표전화 : 02-6321-3000  |  팩스 02-6321-3001  |  기사문의 : 02-6321-3042   |  광고문의 02-6321-3012
등록번호 : 서울,아03560  |  등록일자 : 2015년 2월 2일  |  발행인 : 임관호  |  편집인 : 주태산  |  편집국장 : 박희준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진혁
Copyright © 2018 이코노믹리뷰.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 홈페이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