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전기자동차(EV)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석유가 아닌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통상 전기차의 심장인 ‘배터리’는 전기자동차 제조비용의 30%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배터리 시장도 덩달아 성장해 자동차 업계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떠올랐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16년 25기가와트시(GWh) 규모에서 2025년 300~1000GWh까지 10배에서 40배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마디로 전도유망하다. 시장이 늘어나면 그만큼 기업의 매출과 수익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경쟁은 맹렬하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배터리시장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해 2~3년 안에 배터리 시장의 승자가 되겠다며 ‘삼국지’를 쓰고 있는데, 현재 전황은 중국이 급부상하고 한국과 일본이 밀리는 형국이란 평가가 나온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출하량에서 중국의 CATL이 일본의 파나소닉을 밀어내고 처음으로 1위로 올라섰다. 한국의 LG화학과 삼성SDI는 각각 4위와 6위를 기록했다.

CATL은 4.31GWh를 기록해 전년에 비해 무려 350% 가까이 성장했다. 점유율도 18.5%로 일본의 파나소닉과 동률을 이뤘다. 파나소닉도 4.3GWh의 출하량으로 근소하게 2위에 올랐지만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29.4%에서 18.5%로 떨어져 배터리 종주국 배터리 명가의 자존심을 완전히 구겼다.

우리나라의 LG화학의 출하량은 2.13GWh로 전년 점유율 2위에서 4위로 밀려났다. 삼성SDI도 1.1GWh로 전년 점유율 5위에서 6위로 내려갔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중국 업체의 약진이다. CATL을 필두로 BYD, 파라시스(Farasis), 구오쏸(Guoxuan), EVE 등이 10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들 업체가 1년 만에 기록한 성장률을 보면 ‘같은 성장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LG화학과 삼성SDI가 각각 36.4%, 38.3%의 성장률을 보인 반면 중국 업체들은 무려 세 자리 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CATL이 349%, BYD가 158%, 파라시스가 140%, 구오쏸이 348%의 성장률을 보였고, EVE는 무려 1만10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 기업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중국 정부가 2016년부터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펴면서 전기자동차 시장을 육성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 기업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설비 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CATL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은 2016년 8GWh에서 2018년 23GWh 수준까지 늘어났는데, 2020년에는 이를 두 배 수준인 50GWh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BYD는 올 6월 중국 서부 칭하이에 축구장 140개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세웠다. 내년까지 생산능력을 24GWh 규모로 확대하고 2020년까지 60GWh까지 높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업체들이 한국 업체들을 무섭게 위협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로 굳어졌다. 휘발유 엔진, 디젤 엔진을 탑재한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을 무섭게 따라잡은 중국이 이제 배터리 시장에서도 한국을 배제하기 위해 온 국가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는 일본 파나소닉도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8.6GWh의 생산능력을 갖춘 파나소닉은 일본 국내는 물론 중국, 미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1000억엔(약 1조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파나소닉은 최근 코발트 비중을 크게 낮춘 전기차 배터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코발트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시점에 코발트 비중을 낮춘 배터리가 나온다면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고객사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한국 배터리 업체를 위협하는 다른 변수도 있다. 바로 배터리 사업에 뛰어드는 완성차 업체들이다. 지난 6월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와 일본 혼다는 차세대 자동차 배터리 공동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토요타 역시 차세대 배터리로 꼽히는 전고체전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의왕연구소에 배터리 셀을 포함한 완제품 시험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시험용으로 일부 제조한 규모가 아니라 제대로 된 라인을 갖추고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확대했다.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사업 진출 곧 배터리 전문업체 고객의 이탈과 장래 매출 감소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배터리 전문업체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수성 전략은 무엇일까?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초격차 전략’이 꼽힌다. LG화학은 안전성강화분리막 기술을, SK이노베이션은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LiBS) 기술을 그리고 삼성SDI는 다기능배터리팩(MFM) 기술로 중·일의 협공과 완성차업체의 진출에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