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참 답답합니다. 중국이 전기차에 자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차에만 보조금을 주고 있는데 이건 사실 개별 기업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70~80년대 국가주도 경제성장을 했던 것처럼 중국도 하고 있는 것이라서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요.”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를 빌미로 한국기업들의 중국 내 경제활동에 타격을 준 것이 너무 많은데 전기차 배터리도 그중 하나예요.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은 자국 정부의 전폭 지원을 받고 있고,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 있기에 참 유리한 조건입니다. 우리 정부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으면 좋겠습니다.”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약진하는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에 대해 국내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 관계자들이 한 말들이다. 한 마디로 ‘뾰족한 수’가 없다는 뜻이다. 결국 이야기는 원론으로 돌아간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도 다른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다른 업체들과 확실하게 차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전폭 지원도 전기차 배터리 전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필수요건으로 지목됐다.

‘차별화된 기술·정부지원·틈새시장 공략’ 필요

‘차별화된 기술’이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어서 식상하기조차 하다. 통상 전기차 배터리와 같은 소재부품 시장에서는 연구개발 기간만 10년에서 15년이 걸린다. 하지만 한 번 차별화된 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 높은 진입장벽을 쌓을 수 있어 후발주자의 진입을 막고 회사는 경쟁력을 끌고 갈 수 있다는 게 통설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강자인 LG화학 관계자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개발로 진입장벽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지는 경쟁업체가 있는 데다 고객사와의 관계도 있는 만큼 공개하기 힘들지만 차별화된 기술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유지상 전자부품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장은 <이코노믹리뷰>에 “현재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에 비해 한국 업체들의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 우리 업체들이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 밀려 경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유지상 센터장은 “중국을 제외한 유럽 등의 시장에서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 크게 밀린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평가하고 “그러나 중국에서도 현재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만큼 정부의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현재 우리 전기차 배터리 기업의 기술 수준이 일정 수준 올라왔다고 판단하고 R&D 지원을 줄이고 있는데 이는 오판”이라면서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들과 벌이고 있는 경쟁을 감안하면 오히려 R&D 지원을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중국의 배터리 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으로서 사실상 공기업과 다름없다”면서 “이런 점에서 우리 기업들은 중국 정부와 싸우고 있는 것과 같다”며 배터리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집중 육성을 촉구했다.

틈새시장 공략도 전기차 배터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공식 중 하나로 제시됐다. 1~2인용 초소형 전기차인 마이크로모빌리티 시장으로 중대형 전기차 배터리에만 집중된 시선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은 “전기차 시장에서 마이크로모빌리티 쪽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데, 우리 정부도 마이크로모빌리티 규제를 완화해 보급하겠다고 밝힌 만큼 틈새시장 공략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마이크로모빌리티 분야에서도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시작되면 시장잠식이 일어날 수 있기에 기술개발과 더불어 틈새시장서 일정 수준의 물량 확보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자국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지만 우리 업체들도 중국 시장에서 경쟁을 포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이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많은 인구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중국 자동차 완성차업체 중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에서 강점을 보이는 회사는 없고 대부분이 외국 회사와 합작사 형태”라면서 “이런 이유에서 중국 정부는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만큼은 자국 회사가 주도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상황이 한국 배터리 업체에게 좋지 않지만 전기차 시장을 정부가 나서서 적극 키우는 나라가 중국인 만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 업체는 중국 시장과 나머지 절반인 미국, 유럽 시장을 공략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가야 한다”면서 “수출선 다변화를 통해 중국 업체들과 경쟁을 지속하면서 R&D를 강화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출처=전기차 시장조사업체 ‘EV세일즈

전고체 배터리와 같은 새로운 배터리도 연구 중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을 유력한 차세대 배터리로 지목되고 있는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 적극 나서는 기업은 삼성SDI 등 배터리 전문 업체를 비롯해 토요타 등 자동차 업체, 보쉬, 다이슨 등 전동공구 업체들이 거론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리튬이온이 이동하는 전해질을 고체로 만든 배터리를 말한다. 전지 내부의 양극과 음극 사이의 전해질이 고체인 배터리인데 안정성이 높고 열과 외부 충격 등에 강하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전고체 배터리 관련 연구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일각에서는 “여러 차세대 배터리 중 하나”라면서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안전성이 핵심인 자동차인 만큼 배터리 화재와 같은 사고 등 리튬이온 전지의 고질병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된다.

무엇보다 경쟁국인 일본이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2~2014년 토요타의 차세대 배터리 관련 특허 중에서 전고체 배터리 비중이 68%까지 높아졌다.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는 전 세계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이다. 미래 먹을거리인 전고체 배터리 시장을 이미 일본이 선점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은 대부분의 배터리 업체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쉬운 기술이 아니라서 현재는 ‘연구실 연구’ 수준 정도”라면서 “수년 전에 A4 용지 한 장 크기의 전고체 배터리를 만들었는데 작은 전구 하나 켜질 정도만큼의 에너지만 낸 일화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