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라는 단어를 인터넷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전적 의미로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미술이 지닌 정의는 국어사전의 정의처럼 ‘美’라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심미적인 것만을 뜻하는 걸까? 아니다.

1980년대 한국에서는 진보적인 미술작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변혁운동이 일어났다. 기존의 심미적인 미술의 가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미술계의 현 상황을 반성하고,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하며 우리 역사의 그늘을 판화, 걸개그림, 벽화 등으로 사회변혁을 주장했던 ‘민중미술’이 그것이다. 이때부터 한국의 미술은 절대적인 미(美)를 벗어나 사실적 묘사, 콜라주(Collage), 사진, 전통미술 도상의 차용 등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여러 매체나 방법을 다양하게 수용했다. 작품의 내용도 저널리즘적인 시선으로 계몽의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내용으로 민중들에게 선보였다. 이러한 저널리즘적인 시선으로 미술계에 분 바람은 당대 민주화 운동 및 문화계의 흐름과 함께 해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회복하고 비판적 시각의 인식을 살려냈다.

김보미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민중미술을 주도하던 작가들의 그림과 닮아 있다. 과거의 민주화 운동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인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작품을 재구성해 하나의 이미지를 구성했다. 현대 사회의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스포츠맨 시리즈’와 ‘마리아 시리즈’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시리즈는 작가의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사회 문제를 민중미술만큼 직관적으로 작품의 의미를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그림을 그려냈지만, 민중미술만큼 민중 혹은 관람객에게 사회적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사회에게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현대 미술이 보여줘야 할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스포츠맨’ 시리즈

경쟁사회에서 인간은 “놀이하는 인간(호모루벤스)”으로서, 경쟁이 주는 욕심과 질투, 폭력성이 아닌 조화와 즐거움을 위해 땀 흘리며 뛰어다닐 수 있어야 한다. 경쟁은 룰 속에서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는 스포츠와 같은 것이다. 세상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고 그 다양함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규칙과 자연스러운 경쟁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듯이 말이다.

새둥지밑, 100.0x80.3cm, acrylic on canvas, 2015
퍼팅라인_60.6x91_acrylic on canvas_2015
가인과 아벨_130.3x162.2_acrylic on canvas_2012

 

‘마리아’ 시리즈

수태고지의 장면처럼 우리는 스스로 성숙해 가기보다는 외부적인 요구에 의해 조숙을 통보 받아 어쩌다 어른이 되는 마리아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아름다운 꽃처럼 우리는 한껏 아름다울 수 있는 축복을 받는 동시에,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책임감과 무게에 고민하고 있지는 않는지 마리아 혹은 나로 등장시킨 여자의 모습에 담아보고자 했다.

안젤리코 수태고지_72.7x53_acrylic on canvas_2017
수태고지_145.5x97_acrylic on canvas_2015

-김보미 작가의 작가노트 발췌-

 

필자는 김보미 작가의 작품과 작가노트를 보고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 어느 때보다 작품 앞에서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민중미술이 지금 무엇을 알고, 무엇을 생각해 봐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민중에게 던지듯이 김보미 작가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 또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이상과 현실의 충돌을 작품에 녹여내고, 대중들에게 손에 묻은 더러움을 깨끗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누 같이 이상과 현실의 충돌 사이를 깨끗이 씻겨내고 있다. 갤러리에 오랜 시간 앉아서 작품에 나오는 각각의 소재들의 의미를 확인하고, 작가의 의도를 하나하나 뜯어서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미술은 기존의 미적 의식을 벗어나고, 예술가들은 작품 내에서 변화된 사회에 대한 인식에 대해 새롭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사회적 특징이 예술가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지로 투영되고 그려지게 되었다. 어쩌면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은 모두 민중미술 작가의 모습을 조금씩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