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유적 벽화에서 이집트 공주 네페피아밧(Nefertiabet)이 호피 옷을 입고 있다.  출처= Everett Collection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1950년대의 흑백 사진에서 가수이자 여배우인 어사 키트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호피 옷을 입고 있다. 그녀는 도전적이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며 그녀 옆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치타가 앉아 있다.

그것은 상징적인 사진이다. 30년 전, 풍자 무용가 조 웰든이 호피 옷의 이야기와 유산을 연구하는 데 영감을 준 사진 중 하나다. 웰든의 연구 결과가 최근 출간된 새 책 <맹수, 호피의 역사>(Fierce : The History of Leopard Print)에 다시 집대성되면서 호피 무늬가 왜 가장 유행하는 패턴이 되었는지, 그 기원과 진화, 변화를 보여주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CNN이 최근 보도했다.

“키트가 (호피 무늬 유행을) 처음 시작했지요. 호피 무늬 옷을 입은 그녀는 너무 멋있게 보였고 강해 보였습니다. 그녀는 또 재력가였는데, 호피 옷이 그녀의 매력과 재력을 모두 표현하는 멋진 방법으로 비쳤습니다.”

웰든에 따르면 표범 무늬는 이미 수 세기 동안 권력, 독립, 자신감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어 왔다.

“표범은 사납고 민첩한 동물로 알려져 왔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옷을 입으면서 표범과 원초적 관계가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표범은 전 세계에 걸쳐 도상학(圖像學, Iconographies)적으로 두드러진 역할을 해왔다. 기원전 6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점토 조각상 <차탈회윅의 앉아 있는 여인>(Seated Woman of Çatalhöyük)에서는 표범에 팔을 얹고 있는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

이집트의 지혜 여신 세샤트(Seshat)는 표범이나 치타 가죽을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또 중국 신화에서 서역의 왕대비로 알려진 서왕모(西王母)의 그림에도 호랑이의 이빨과 표범의 꼬리로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18세기와 19세기부터 호피 옷은 부와 지위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대량 생산된 직물과 의류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 무늬가 사회의 메인스트림을 이루면서 현대적 의미를 갖게 되었지요.”

▲ 가수 비욘세가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호피 옷을 입고 공연하고 있다.  출처= Everett Collection

진화하는 유행

호피 무늬의 유행은 그 이후로 여러 차례 반복을 거듭했다. 때로는 교양 없는 졸부, 도발적, 싸구려같이 조잡한, 또는 위험스러운 이미지로 간주되기도 했다. 때로는 스타를 꿈꾸는 신인 배우들이 입었고, 싸구려 옷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영화에서 음악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에서 호피 옷을 입은 여성들은 상스럽고, 천박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런 인식에는 <트로피 와이프>(The Trophy Wife, 아름다운 아내를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내용의 드라마), <나쁜 엄마>(The Bad Mother), <팜므 파탈>(Femme Fatale) 같은 드라마나 영화들이 한 몫 했다.

그러나 호피 무늬는 여전히 상류층 패션에서 널리 유행했다. 크리스챤 디오르(Christian Dior)는 1947년 패션 쇼에서 모피가 아닌 표범 무늬를 선보인 최초의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렸다. 조세핀 베이커, 엘리자베스 테일러, 재클린 케네디, 에디 세지윅 같은 스타일 아이콘이 디오르의 호피 옷을 입었다.

최근 수십 년 동안에는 가수 비욘세,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 미셸 오바마 같은 사람들이 공개석상에서 호피 무늬 옷을 입고 나와 시선을 사로잡았다. 패션 잡지들은 패션쇼에서 피에르 발망, 조르지오 아르마니, 위베르 드 지방시 같은 유명 디자이너의 호피를 선보이며 ‘호피의 귀환’이라고 요란 법석을 떨었다.

웰든은 “표범 무늬는 그 해석에 개방적이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립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과감한 색상과 어울리기도 하지만, 호피 무늬 옷은 그 자체로도 완벽하게 돋보이기도 합니다. 이 옷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다시 동물의 원래 이미지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존경심, 두려움, 저항할 수 없음 같은 이미지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양이과 동물들은 야행성 활동을 하는 데다가 바람기도 있지요. 그래서 그런 옷을 입은 여성도 그런 사람이라고 연상하기 쉽습니다.”

▲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도 인도와 파키스탄을 방문하면서 호피 코트를입었다.     출처= Everett Collection

오늘날 표범 무늬가 소비자의 다양한 성향 속에서 인기를 유지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이분법적 구분 때문인지도 모른다. 웰든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행이 오늘날에도 호피 무늬의 인기가 지속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표범 무늬는 세련됨, 고급스러움, 섹시함 등 모든 느낌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표범 무늬는 결코 유행에서 무시되지 않으며, 주류 문화의 메인스트림을 보여주는 데 여전히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웰든은 이 세상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달라지는 시대에, 또 여성을 보다 강한 존재로 표현하고 싶을 때, 표범 무늬는 아주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나를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