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Jinx)란 재수 없고 불길한 현상에 대한 인과관계적 믿음을 가리킨다고 한다.

자신에게 징크스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시합 전날 면도를 하면 경기에서 진다고 하는 운동선수도 있고 시험 보는 날 아침 머리를 감으면 시험을 망친다고 믿는 수험생도 있다. 돌출입, 양악수술 날짜에 병원에 오는 환자들 중에도 나름대로 수술의 성공을 위해 뭔가 자신만의 징크스를 피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흉악했던 징크스는 대입 시험 날 아침에 일어났다. 이과생인데도 늘 수학보다 영어를 더 잘했던 필자가 고2 때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수학공부에 열을 올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애착이 가는 필기도구를 갖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항상 시간에 쫓기며 수학시험을 보던 경험을 살려, 당시 유행하던 ‘흔들어 샤프’ 하나를 샀다.

필자는 이 샤프로만 수학 공부를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 녀석을 손에 잡으면 용기와 지혜가 샘솟는 것 같았다. 목표였던 S대 의대에 입학하는 꿈이 머지않아 보였다. 이 샤프펜슬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희열, 졸음과 싸우면서 밤을 샜던 순간, 반복해서는 안 될 실수들을 조목조목 기억해주는 필자의 동반자이자 비밀병기와도 같았다.

이 보물이 대학입학시험 당일 아침 6시에 두 동강이 났다. 당일 아침에 한 문제라도 더 보겠다고 그 샤프를 손에 쥔 채 우왕좌왕하다가 벽에 샤프가 부딪히면서 반으로 뚝 부러지고 만 것이다. 애써 침착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2년 동안 잠 자는 시간 빼고는 늘 필자와 함께 한 보물이 눈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징크스란 없다고 외치고 싶었다. 아무 일도 아닐 거라고 되뇌었다.

징크스는 빗나가지 않았다. 필자는 그해 S대 의대에 낙방했고 대신 같은 학교 치대에 합격했지만 오기로 재수를 선택했다. 필자만의 흔들어 샤프가 두 동강 났던 기억, 시간에 쫓기며 새카만 수성싸인펜으로 문제를 풀다가 빈 공간이 없어 쩔쩔 맸던 기억은 지금도 악몽이다. 징크스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아끼던 필기도구가 두 동강 난 사건이 분명 심리적으로 필자를 압박하고 평정심을 깨뜨린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20세의 필자에게는 인생이 걸린 순간이었다. 여담이지만 S대 치대와 의대를 두 번 입학한 필자는 치아를 포함한 얼굴뼈를 다루는 돌출입 수술, 악안면수술을 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하는 수술에도 징크스가 있을까?

필자는 이제는 수술할 때의 징크스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오랜 동안 돌출입, 윤곽수술, 양악수술과 같은 얼굴뼈 수술을 해왔다. 머리를 감았든, 면도를 했든, 전날 밤 와인을 한 잔 했든, 그날 아침을 굶었든, 손톱을 깎았든, 필자의 수술에 지장을 줄 만한 징크스는 없다. 또한 환자가 필자의 조카든, 부모든, 잘나가는 연예인이든, 직업이 경찰, 검사, 의사 무엇이든, 환자 몸에 메스를 대는 게 일상인 필자로서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의사들 사이에 속어로 ‘VIP 신드롬’이라는 믿기 어려운 용어가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VIP 신드롬이란 내내 괜찮다가 VIP를 수술하면 뭔가 문제가 생기더라는 흉흉한 징크스 같은 것이다. 그 신드롬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사소한 문제라도 유독 VIP에게 생기면 더 미안하고 더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기억이 남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만약 정말 VIP에게 유독 문제가 잘 생기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의사의 평정심이 깨지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정말 특별히, 남달리 잘해줘야 하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더 잘해주기 위해서다.

이 논리대로라면 돌출입, 윤곽, 양악 수술을 준비하는 당신은 VIP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하게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의사의 평정심을 깨뜨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 의사의 ‘내공’이 높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필자에게는 필자를 찾아 수술 받으러 온 환자들이 모두 다 VIP다. 아니, 모두 그냥 평범한 환자들이다. 다 똑같은 평정심으로 수술해야, 하던 대로 할 수 있고 그게 최선이다.

강철로 만든 톱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환자가 필자에게 평생 단 한 번의 돌출입 수술을 받으러 온 날, 수술용 톱이 두 동강이 난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다. 똑같이 생긴 톱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