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소니, EA,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비디오게임 배급사들이 신작 트레일러 영상을 공개한 유튜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뜨겁다. ‘갓겜’이라는 찬양 댓글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싫어요' 대비 '좋아요' 숫자도 크게 높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와 사실감 있는 그래픽, 움직임덕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이런 비디오 게임의 높은 완성도 탓인지 콘솔용 비디오 게임을 방송하는 유튜버들이 큰 인기를 끈다. 구독자 수도 일반 다른 게임 유튜버에 비해 훨씬 많다. 

 

이런 단면만 본다면 국내 비디오 게임 시장은 클 것도 같지만, 사실 한국에서 비디오 게임 시장의 입지는 미미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4월 발간한 ‘2017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시장에서 비디오게임의 예상 매출액은 2711억원으로 전체 매출액에서 약 2%를 차지할 뿐이다. 점유율이 40%가 넘는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에 비해 초라한 점유율이다. 왜 국내에서는 콘솔 게임의 규모가 이렇게 작은 걸까? 이를 극복하고 장르의 다양성을 만들 수는 없을까?

 

PC온라인게임 중심으로 성장한 국내 게임시장 특성

우리나라는 90년대를 거치고 집집이 컴퓨터가 들어서며 PC보급률이 급증했다. 이에따라 PC온라인게임을 중심으로 국내 게임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콘솔 게임기가 있는 집도 있었지만 당시 부모님들의 게임에 대한 부정 인식 탓에 게임기는 ‘안 좋은 것’으로 분류되곤 했다. 이에 아이들도 콘솔 기기를 갖게 되기가 쉽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현상은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주를 이루는 북미·유럽과의 차이점이다. 북미·유럽은 가족들이 함께 거실에서 콘솔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발달했다. 퇴근한 아빠가 아이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게임 유저들은 혼자 방에서 게임을 하며 온라인상의 유저들과 만나는 것에 익숙해졌다. 

▲ 아빠와 아들이 함께 콘솔 게임을 즐기고 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게다가 국내에는 콘솔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사 자체가 전무했다. 현재도 비디오게임 개발은 미미한 실정이다. 시장이 작다 보니 수입산 대작 타이틀도 한글화가 돼 있지 않아 콘솔 게이머들은 마음껏 원하는 게임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사이 PC온라인게임은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게임업계에 재직 중이고 학창시절부터 비디오 게임을 즐긴 30대 L씨는 투명하지 못한 콘솔 기기 유통 정책을 회상했다. 콘솔 기기를 살 때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잘 모르고 사면 ‘호갱’을 면치 못하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이런 음지 문화가 비디오 게임을 더욱 마니아들 게임의 영역으로 몰고 갔다는 주장이다. 

비디오게임 매출액이 적은 건 국내의 작은 내수규모와 패키지 게임의 특성도 주요하다. ‘헤비과금러(하나의 게임에 큰돈을 쓰는 유저)’가 많은 모바일 게임이나 PC온라인게임과 달리 비디오 게임은 패키지 상품으로 게임을 구입하면 추가로 과금할 필요가 없다. 비디오 게임에도 추가 콘텐츠를 돈을 주고 다운 받는 DLC(다운로드 가능한 콘텐츠)가 있긴 하지만 비중이 크지는 않다. 매출이 커지려면 많은 사람이 즐겨야하는데 국내에는 그만큼의 수요가 없다. 

L씨는 한국인들이 집에서 콘솔 게임을 즐길만한 시간이 부족한 점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나도 오래전부터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지만 직장을 다니고부터는 매일 콘솔을 연결해서 게임을 할만큼의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모바일게임이 인기를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MMORPG 장르의 모바일 게임에서는 ‘자동전투’ 시스템이 도입돼 별다른 조작을 하지 않아도 게임을 할 수 있다.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문화가 형성된 점도 눈에 띈다. 비디오 게임 유튜버들의 인기가 그 예다. 비디오게임 유튜버인 ‘대도서관’, ‘풍월량’, ‘쉐리’ 등은 많은 구독자들이 시청하고 있으며 특히 대도서관은 27일 기준 구독자 178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 유튜버 대도서관이 방송에서 비디오게임 '디트로이트 비컴휴먼'을 플레이하고 있다. 출처=유튜브 갈무리

대도서관과 풍월량을 구독하는 20대 J씨는 “콘솔 게임은 플레이 시간이 길어 직접 즐기기엔 부담이 된다”면서 “유튜버들이 게임을 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치있는 유튜버들의 멘트와 비디오 게임의 스토리를 보는 재미가 있고 스스로 노력을 하지 않고 편하게 게임이 진행되는 걸 보는 게 좋다는 설명이다. 

과거 국내 콘솔 개발에 대해 정부의 지원도 있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강경석 본부장은 “과거에 콘솔 게임을 개발하는 중소기업에 SDK(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를 지원하는 등 활동한 적이 있지만 결국 게임이 출시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내 비디오 게임 시장이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갈 길 먼 국내 콘솔 게임시장… 같이 게임 즐기는 문화·비디오게임 개발 필요

콘솔 게임 시장은 최근 매출액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 규모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국내 비디오 게임 시장이 커질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은 없는 실정이다.

학창시절부터 콘솔 게임을 즐기는 40대 직장인 K씨는 “콘솔게임이 좀더 대중화되려면 한 가지 ‘빵’터지는 타이틀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용자가  특정 게임을 하기 위해 콘솔 기기를 살 정도로 이슈가 되는 게임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콘솔 게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K씨는 “8살 딸아이가 있는데 퇴근을 하면 같이 콘솔 게임을 한다”면서 “우리나라에도 가족이 함께 건전하고 즐겁게 게임을 하는 문화가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경석 본부장은 “전통 비디오 게임보다는 오히려 VR 같은 장르에서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의 스코넥엔터테인먼트는 소니와도 협업하며 VR게임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는 2002년 설립한 VR 콘텐츠 개발·서비스 업체다. 지난 2016년 소니의 PSVR, VIVE, Oculus 용 게임인 ‘모탈블리츠’를 개발하고 성과를 보였다. 

한국게임학회 회장 출신이자 이번 신임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에 오를 것으로 유력한 숭실대학교 이재홍 교수는 “우리나라 게임 시장이 현재 치우쳐져 있지만, 콘솔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들도 많다”면서 “비디오 게임은 엔딩을 보고 나면 영화 한 편을 본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스토리가 좋고 완성도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개발사들이 비디오 게임 개발에도 많이 도전해 게임 시장의 장르가 다양화됐으면 좋겠다”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게이머들은 PC나 모바일이 아닌 다른 형태 플랫폼 게임도 선택할 의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개발사에서도 콘솔게임 부문에 뛰어들고 있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신작 MMORPG ‘프로젝트 TL’을 이르면 내년에  PC버전과 콘솔버전 두 가지로 출시할 계획이다. 블루홀은 이미 ‘배틀그라운드’와 ‘테라’를 콘솔버전으로 출시해 긍정의 성과를 얻었다. 펄어비스는 ‘검은사막’ 콘솔버전을 하반기 출시할 계획이다. 물론 이 게임들은 해외 시장을 노리는 의도가 크지만, 이런 게임들이 국내 비디오 게임 시장에 가져올 변화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