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달 삼성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침체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삼성에 손을 내밀고, 삼성이 분쟁과 갈등을 털어내기 위해 이에 적극 화답하는 장면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뜻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 부총리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삼성을 8월 초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해 언론과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부회장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김 부총리는 직접 언급을 피했으나 사실상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12월 LG를 시작으로 1월 현대차, 3월 SK, 6월 신세계를 방문하며 구본준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최태원 회장, 정용진 부회장을 잇따라 만났다.

주요 경제 지표에 경고등이 들어온 가운데 김 부총리는 각 대기업을 방문,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하청업체와의 상생을 주문하기도 했다. 

▲ 김동연 부총리가 지난해 12월 구본준 부회장을 만나고 있다. 출처=LG

대기업들의 화답은 빨랐다. 김 부총리가 지난해 12월 “협력 업체 상생에서 모범이 되는 대기업”이라는 덕담을 하며 LG를 방문하자 구본준 부회장은 즉각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면서 “2018년 19조원 투자하고 1만명을 고용하겠다”고 화답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1월 “5년간 4만5000명을 고용하겠다”고 말했고 최태원 회장은 3월 “3년간 80조원을 투자하고 2만8000명을 새로 뽑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27일 2020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경기도 이천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정부와의 사전교감이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

정용진 부회장은 6월 만남에서 혁신성장과 협력업체와의 소통을 선언하며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창업기업에 대한 판로지원 등 상생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가 삼성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면, 강력한 투자와 함께 일자리 창출에 힘써달라는 주문을 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 관계자는 “김 부총리가 이 부회장을 만난다면, 지금까지 대기업 방문과 비슷한 대화가 오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논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달 초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특히 강조한 것이 바로 일자리 창출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인도 노이다에서 열린 삼성전자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을 전격적으로 만났다. 신남방정책을 가동하며 새로운 경제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문 대통령과 인도는 물론 아시아 전역에 ICT 입지를 다지려는 이 부회장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공장 준공식 현장에서 약 5분간 만남을 가졌으며 두 사람의 자리에는 조한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과 홍현칠 삼성전자 서남아담당 부사장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인도의 고속 경제성장에 삼성이 기여해 고맙다"면서 "한국에도 많은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와 삼성 사이에 때 아닌 훈풍이 돌고 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에게도 나쁜 상황이 아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장기호황) 종료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스마트폰과 생활가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이를 타개하고자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초부터 유럽과 북미, 일본, 중국을 누비며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 등 초연결 ICT 기술 인프라 확보에 나서고 있다. 체질변화에 가까운 혁신을 노리는 상태에서 강력한 투자까지 예고하는 가운데, 정부가 규제개혁 등을 통해 판을 깔아줄 경우 이재용 식 신경영을 펼치기가 용이해진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현재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으나 아직 대법원의 판단을 남겨둔 상태다. 여기에 노동조합 와해의혹,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으며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지상파 방송사가 폭로한 고 염호석 씨 시신탈취 의혹은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여기서 일자리 창출을 매개로 삼성과 보폭을 맞춘다면 이 부회장의 미래 행보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지난 24일 반도체 백혈병 분쟁과 관련해 시민단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과 중재에 전격 합의하고 삼성생명의 4300억원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하는 방안을 26일 이사회에 상정하는 등, 삼성을 둘러싼 분쟁과 갈등을 모두 털고 가려는 행보가 감지된다”면서 “삼성이 정부의 일자리 창출 의지에 부합하며 분쟁을 털어내면서 이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대비하고, 궁극적으로 이 부회장 경영복귀를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삼성에 손을 내밀고, 삼성이 분쟁과 갈등을 털어내면서 이에 적극 화답하는 장면이 예상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삼성의 뜻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탄생한 현 정부가 이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이 인도에서 이 부회장을 만나자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즉각 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의 주역인 이 부회장이 납득하기 어려운 집행유예 판결로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문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는 부적절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3일 강연을 통해 "삼성의 지난해 순이익 가운데 20조원을 풀면 200만명에게 1000만원씩 줄 수 있다"고 발언하는 등, 정치권이 경제계를 바라보는 눈이 여전히 구태스러운 것도 부담이다. 홍 원내대표는 "20조원이라는 큰 돈을 예로 든 것"이라면서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주장이 아니다"고 해명했으나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가 공식 자리에서 특정 기업을 사례로 삼아 적절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구미사업장 네트워크사업부 철수에 나서자 온갖 루머가 양산되는 장면도 불안하다. 최근 지방선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 시장이 탄생했으나,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력과 완전히 결별하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인 구미에서 사업장을 철수시키려 한다는 괴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이 부회장의 거취와 삼성전자에 쏠리는 시선이 많은 가운데, 정부와 삼성의 조심스러운 접점 타진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