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며 두 나라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속속 중국으로 달려가고 있다. 실리콘밸리 특유의 비즈니스 감각과, 중국이 가진 거대한 내수시장의 매력이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중국에 대한 구애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넘치는 중국 사랑

현재 중국 정부는 글로벌 ICT 업계의 공습에 대비해 진입장벽을 크게 올리는 한편 방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러에코(러티비),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이유에 중국 정부의 노골적인 감싸기가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웨이보다. 중국에서 페이스북과 같은 외국 SNS는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 대신 웨이보가 있다.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는 인터넷 포털인 신랑(新浪)의 서비스며 이 역시 중국 정부의 강력한 육성정책 결과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중국 정부는 대부분의 외국 ICT 서비스를 차단했으나,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러브콜을 날리는 대표적인 실리콘밸리 기업은 애플이다. 아이폰 1차 출시국에 항상 중국을 포함시키는 애플에게 미중 무역전쟁의 치열함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애플은 지난해부터 중국에서 서비스되는 iOS 앱 수백개를 삭제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주문형 가설사업망 앱도 현지법을 준수한다는 이유로 삭제했으며 영상통화 및메시지 앱 스카이프도 지웠다. 5월에는 스팸전화를 차단하거나 걸려온 전화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앱 콜킷 서비스도 중단했다. 중국의 과도한 ICT 규제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는 가운데, 애플이 사실상 백기투항한 셈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중국을 방문한데 이어 3월 1차 미중 무역전쟁 당시에도 중국 우한에서 열린 중국개발포럼(China Development Forum)에 참석했다. 중국 고위 관리들과 연이어 만나며 현지 스킨십을 강조하는 한편, 미중 두 나라에게 “무역전쟁에 임하면서 서로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로 중재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서 제작된 아이폰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쪽으로 선회하며 숨을 돌렸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애플은 두 나라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거듭하고 있다.

애플이 중국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거대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중국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중요한 전략 요충지며 애플이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애플이 올해 1분기 65조44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할 수 있는 이유도 중국 시장에서의 선전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애플의 올해 1분기 중국 시장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다.

▲ 구글도 인공지능을 매개로 중국에 진출하고 있다. 출처=구글

구글도 중국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구글은 현재 중국에서 포털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끈질기게 중국에 구애를 보내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12월13일(현지시각)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에 인공지능 연구소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구글 클라우드(Google Cloud)의 수석 과학자 리페이페이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개발자 대회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기조연구에 집중할 것"이라면서 "학계와도 긴밀하게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핵심인 검색 서비스는 당국의 검열에 가로막혀 운용될 수 없지만, 초연결 시대의 인공지능 인프라는 충분히 현지 진출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렸다. 이번 연구소 설립도 구글의 중국에 대한 미련이다. 현지 인력을 대거 고용해 산학협력까지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린 이유다. 구글은 이번 인공지능 연구소를 통해 현지 인공지능 기술력을 견제하는 한편, 인력을 대거 확보해 철저하게 활용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구글 아시아 인공지능 허브로 중국을 낙점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중국은 14억명의 인구가 만들어내는 방대한 데이터와 정부 차원의 강력한 ICT 지원정책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조만간 인공지능 시장에서 미국을 따라잡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구글은 중국 정부의 큰 그림에 협조하며 현지 시장 공략에 나서는 중이다.

페이스북의 중국 사랑도 정평이 났다. 페이스북은 빠른 중국 진출을 위해 SNS가 아닌, 구글처럼 인공지능과 같은 ICT 인프라 협력에 집중하고 있다. 2016년 마크 저커버그가 중국을 방문해 스모그가 가득한 베이징 시내를 조깅하며 친밀감을 키우던 당시, 마윈 알리바바 회장을 만나 인공지능 전략을 논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크 저커버그는 중국인 아내인 프리실라 챈을 언급하며 페이스북과 중국의 인연을 유독 강조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회사 설립 시도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지난 18일 중국 항정우에 자본금 3000만달러로 페이스북 테크놀로지라는 자회사 설립 허가를 받았다. 중국 현지의 ICT 인프라와 협력해 인공지능 전략을 키우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나왔다. 2009년 중국에서 페이스북 접속이 끊긴 후 계속 재진입을 노리던 중, 이번에는 자회사 설립이라는 카드까지 빼들고 강한 복귀 의지를 보인 셈이다. 그러나 중국은 단 몇 시간만에 페이스북의 중국 자회사 설립 승인을 취소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다.

일각에서는 페이스북이 가상통화를 중심으로 중국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올해 초 본인 명의의 사명서에서 “중앙권력을 분산한다는 점에서 가상화폐의 가치는 충분하다”면서 "중앙집권 시스템의 권한을 빼앗아 사람들에게 되돌려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페이스북과 메신저는 단독 결제 플랫폼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질적이고 방대한 결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다는 뜻이며, 이는 페이스북의 약점 중 하나로 여겨진다. 반면 중국의 위챗이나 알리페이는 이미 현지 모바일 결제 시장의 92%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꾸준히 중국 진출을 타진하는 상황에서 열악한 결제 경쟁력을 보완하기 위해 가상화폐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CNBC는 "중국은 가상화폐를 금지하고 있으나 페이스북이 조기에 가상화폐를 페이스북 플랫폼에 연동한다면 가상화폐 기반의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IBM과 테슬라 등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중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테슬라는 지난 10일(현지시각) 중국에 연간 5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실리콘밸리는 멈추지 않는다

미중 무역전쟁은 물론, 최근 남중국해를 둘러싼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높아지며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스마트제조 2025로 대표되는 ICT 대국굴기를 견제하는 상황에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민 정책과 과도한 일자리 창출 압박 등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실리콘밸리의 악감정이 쌓이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핵심은 역시 실리콘밸리의 다급함에 있다는 평가다.

당장 애플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가운데 중국 시장을 놓치면 치명타를 입을 전망이다. 페이스북도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중국시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새로운 국면 전환을 꾀하기가 어렵다. 자회사 설립 시도는 실패했지만 이와 비슷한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구글도 중국 시장 진출만 이뤄진다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성장을 노릴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으나, 실리콘밸리가 끝까지 중국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테크노드 연구소의 박정환 연구위원은 “지금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 중국 시장은 개척하지 못한 미지의 땅과 마찬가지”라면서 “ICT 기술이 모바일에서 인공지능으로 급변하고 있고, 중국도 ICT 대국굴기에 대한 열망이 강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서로 협력의 교집합을 모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