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컬래버레이션이 한참이다. 컬래버레이션은 협업, 협력을 뜻하며 서로 다른 제품, 브랜드, 사람이 만나 새로운 제품 또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키는 도넛회사 크리스피크림과 컬래버레이션해 농구화를 만들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과자 새우깡과 의류회사 에잇세컨즈가 컬래버레이션해 새우깡 티셔츠를 만들거나, 멜론맛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메로나가 스펀지 회사와 손잡고 메로나 스폰지를 내놓았다.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새로운 감성이나 영역이 만나서 시너지가 난다. 이러한 장점 때문인지 많은 회사들이 앞다투어 새로운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가구 회사 이케아가 요리책을 제공하고,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연어와 육포를 판매한다고 하면, 이는 언뜻 보기에 또 하나의 컬래버레이션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은 컬래버레이션이 아닌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이케아의 <페이지를 요리하라>(Cook this Page)라는 요리책은 아주 특별하다. 이 책은 한 장씩 찢을 수 있고, 책 속의 빈 칸을 채우기만 하면 요리가 완성된다. 예를 들어 양파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그 위에 양파를 놓으면 되고, 소금이라고 쓰인 칸에는 그 면적만큼 소금을 채우면 된다. 이렇게 조미료와 재료로 빈 곳을 채워 돌돌 말아 오븐에 넣으면 요리가 완성된다. 잉크는 식용잉크이고 종이도 보통 조리 때 쓰는 쿠킹 페이퍼라서 인체에 무해하다. 게다가 이 요리책은 이케아에서 무료로 배포된다.

사실 이케아는 가구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이다. 가구 하나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깎고 재단할 필요 없이 조립하는 것만으로도 뚝딱 가구를 만들 수 있다. 가구를 쉽게 만들 수 있다면 요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힘들게 요리를 할 필요 없이 시키는 대로 놓기만 해도 멋진 요리가 완성되는 이케아식 쿡 북. 비록 가구와 요리 영역은 달라도 이케아답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이케아는 매년 버려지는 수백만 톤의 가구를 재활용해 새 제품을 만들겠다는 모토 아래 중고 가구 매입 서비스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차량공유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무료로 가구를 픽업하고 구매 가격의 최대 50%까지 이케아 바우처를 지급한다. 쓰고 버리는 가구를 판매하는 회사에서 헌 가구를 새로 만드는 회사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북미 캠핑 의류의 선두 주자 파타고니아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유통업계의 일 년 매출을 좌지우지한다는 블랙 프라이데이에 파타고니아는 재킷을 사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광고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단순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가 아니었다. ‘최고의 옷을 만들었으니 오랫동안 입어서 자원을 아끼라!’는 창업자의 취지대로 파타고니아는 호기로운 이벤트성 광고 아니라 실제로 옷을 고쳐 입고 수선하는 방법을 영상으로 알려주고, 키트를 만들어 제공했다. 심지어 이베이에서 검색하면 중고품이 먼저 나오도록 했고, 아버지가 입던 옷을 아들에게 물려주라는 광고를 하기도 했다.

유기농 목화 개념도 없는 90년대 중반에 100% 유기농 순면을 사용하고, 플라스틱에서 실을 뽑아 새 옷을 만드는 등 말이 아닌 실천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보여줬던 파타고니아는 2016년 프로비전이라는 브랜드로 식품 사업을 시작했다. 옷 만들던 이들이 음식에 대해 얼마나 알까 생각하면 오산이다. 훈제 연어는 지역주민들이 잡은 것을 사서 쓰고, 거기다 연어를 너무 많이 잡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의 동선을 파악해 환경활동가와 생물학자의 도움을 받아 개체 수에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만 포획한다. 육포를 만들어도 항생제와 호르몬 주사에 찌든 가축이 아닌 로키산맥 동쪽의 대초원지대에서 자유롭게 방목한 버팔로 고기를 재료로, 도축부터 제조까지 농장 주변에 그 모든 것들을 만들어 지역 경제 일자리까지 제공한다. 맥주도 화학비료나 살충제 없이 키운 보리를 이용해 환경오염을 최소화한 맥주를 판매한다.

설립 이래 40년간 꾸준히 성장해온 파타고니아. 금융 위기 때도 50%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미국 아웃도어 시장 2위로 등극한 파타고니아는 ‘음식 사업을 재고하자’(Rethinking Our Food Chain)라는 모토를 내걸고 파타고니아답게 우리의 일상을 바꾸려고 한다. 

 

https://www.patagoniaprovisions.com/

INSIGHT 

모든 조직들은 ‘더 나은 삶’, ‘인류 공영’ 같은 아름다운 말들을 기치로 내건다. 그런데 공허한 말뿐이 아니라 깊은 사유와 가슴 절절한 공감을 통해 ‘철학’을 세운 조직들은 이 철학에 뿌리로 두고 실천해나간다. 그리고 반대로 그 실천들을 보면서 어떤 철학을 토대로 세웠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조직의 철학은 대체 누가 만드는 걸까? 회장이? 조직의 수장이? 브랜딩을 하는 회사가? 조직원 한 명 한 명이 그 철학을 공유하고 내재화해야 한다. 미친듯이 돌아가는 속도전 속에 오늘 자기에게 떨어진 업무를 처리하기가 힘겨운 조직원들에게 가끔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대체 정말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 일은 세상을 어떻게 더 좋게 만드는 것인가?’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 바쁜 짬을 내서라도 꼭 생각해야 한다. 철학이 중요한 이유는 일관된 행동을 할 수 있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일이란 일을 사랑하는 것뿐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라는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의 말처럼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그 무엇은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