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SK텔레콤에 이어 KT도 최근 블록체인 청사진을 전격 공개하며 통신사들의 시장 공략이 빨라지고 있다. 5G 시대를 맞아 네트워크의 집중력을 강조하면서 ICT 기술을 포함하는 탈 통신 기조가 강해지는 한편, 통신사들의 블록체인 플랫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 SK텔레콤 오세현 블록체인사업개발유닛장이 블록체인의 발전방향과 SK텔레콤 사업 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출처=SKT

SKT와 KT "판을 바꾸겠다"

블록체인의 가치 중 가장 각광받는 것은 탈 중앙화와 보안 인프라다. 통신사들의 주력인 네트워크가 중앙 집중형 권력을 표방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으로는 5G와 함께 도래할 방대한 데이터를 일괄적으로 처리하기 어렵다. 통신사들이 ICT 플랫폼 전략에 뛰어들면서 자기들의 정체성인 중앙화 플랫폼 DNA와 함께 탈 통신 트렌드를 따라가며 탈 중앙화의 블록체인에 관심을 두는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 블록체인 청사진을 전격 공개했다. IBM과 SK C&C를 거쳐 지난해 SK텔레콤에 합류한 오세현 블록체인사업개발유닛장이 전면에 나섰다.  오 유닛장은 ‘고객에게 신뢰받는 블록체인 거래 플랫폼’을 사업의 비전으로 제시하며, ▲디지털 실명제로 인터넷 세상의 신뢰기반 마련 ▲지불 편의성 제고 ▲블록체인 거래 플랫폼 신뢰도 확보를 목표로 향후 SK텔레콤의 블록체인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거래 혁신 변화에 방점을 찍었다. 현재 인터넷에서는 고가 부동산 ∙ 다이아몬드와 같은 귀금속 ∙ 전문가의 평가가 가격을 좌우하는 원자재 등을 거래하는데 제약이 있다. 블록체인을 적용하면 거래가 되는 자산의 이력 확인이 가능하고, 거래참여자의 본인확인이 가능해져 신뢰 기반의 P2P 거래가 가능해진다. 거래 참여자의 직접 시장 참여로 중개자의 역할이 축소되고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SK텔레콤이 새롭게 음원 시장에 도전하며 블록체인 플랫폼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SK텔레콤은 건전한 암호화폐 생태계를 조성하고 블록체인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토큰 익스체인지 허브(Token Exchange Hub)' 사업도 추진한다. 오 유닛장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사업을 하고자 하는 기업과 개인, 그리고 사용자 모두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각오다.

KT는 자회사 BC카드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블록체인 플랫폼 연구를 진행했다. 단순히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SCFA(Strateg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 라는 아시아 최대 통신사업자 협의체를 통해 일본 NTT 도코모와 중국 차이나모바일과 협의해 블록체인 기반 로밍을 타진해 왔다. 24일에는 블록체인을 인공지능과 5G 등 KT의 5대 플랫폼과 유무선 네트워크에 적용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상용망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했다는 설명이다. 기존 퍼블릭 블록체인은 처리속도와 용량이 낮아 사업화에는 부적합하고,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비공개 데이터 관리로 인해 투명성이 낮으며 소규모 구조로 인해 상대적으로 보안성이 낮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KT는 전국에 위치한 초고속 네트워크에 블록체인을 결합한 노드를 구축해 운영하는 방식으로 성능과 신뢰라는 두 가지 장점을 추구한다는 설명이다.

KT 블록체인은 2019년 말까지 최대 10만 TPS(Transactions Per Second, 초당 거래량)의 성능을 구현할 예정이다. 현재 KT 블록체인의 성능은 2500 TPS이지만 올해 말까지 1만 TPS를 구현하고, 2019년 말까지 10만 TPS를 달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KT는 이 블록체인 기술을 기존 인터넷 서비스에도 적용해 IP가 아닌 고유 ID기반의 네트워킹을 통해 연결과 동시에 바로 본인인증이 가능한 블록체인 기반 인터넷 기술도 최초 공개했다.

블록체인 범위의 확장도 눈길을 끈다. KT는 해킹과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반 본인인증 기술을 적용한 블록체인 지역화폐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지역소비를 살려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고 음성적 유통 등을 근절해 자원의 선순환을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김포시와 KT엠하우스가 손잡고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발행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다른 지자체들에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블록체인을 차세대 기술인 빅데이터, 로밍, 인공지능 등에도 접목하여 글로벌 사업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KT는 36개사가 가입된 ‘KT 블록체인 에코 얼라이언스’를 인공지능, 보안 등 KT가 협력중인 전체 에코 얼라이언스로 확대하고 사업적 지원을 병행한다. 중소 협력업체들의 블록체인 사업화를 지원하고, 관련 사업역량 확보를 위한 교육도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 우면동 연구개발센터에 블록체인 실증센터도 개소한다.

▲ KT가 블록체인 전략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출처=KT

SK텔레콤의 거래, KT의 구체적 로드맵 눈길

SK텔레콤의 블록체인 플랫폼 활용은 거래에 방점이 찍혔다. 음원 시장 재도전과 함께 블록체인을 생태계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구체성이다. SK텔레콤의 블록체인 로드맵은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각론이 불충분하다는 평가다.

KT는 SK텔레콤과 비교해 범위가 넓고, 공개된 활용방안이 구체적이다.

가상통화에 대한 논란과는 별도로, 블록체인의 시장성은 충분하다. 지난 6월 과학기술정통부가 발표한 ‘블록체인 기술 발전전략’에 따르면 국내 블록체인 시장은 2017년 500억에서 2022년까지 약 1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 추산한 바 있다.

KT는 블록체인 플랫폼 개방과 관련 생태계 활성화를 통해 산업 전 영역의 발전을 촉진함으로써 2022년까지 국내 블록체인 시장 규모를 과기부의 예측규모인 1조원까지 성장하는데 기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실감형 미디어 시장 진출로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블록체인으로 다양한 기술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적용의 스펙트럼도 굉장히 넓다. KT는 국내 최초로 블록체인 기반의 웹소설 플랫폼인 ‘블라이스’를 오픈해 저작권자에게 정산을 투명하게 제공하고, 콘텐츠 보안을 강화해 저작물이 불법 유통될 수 없는 기반을 조성한 바 있다.

소규모 전력중개 사업에 블록체인을 적용한 사례가 공개된 점도 중요하다. 기존 태양광 발전소의 전력거래는 한국전력의 월 1회 검침을 통해 발전사업주가 자기의 발전량에 대한 정보를 얻고 전력대금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KT는 사물인터넷 기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발전량을 수집하고, 이를 블록체인으로 저장한다. 전력대금 청구에 필요한 발전량, 발전시간, 전력가격 과 같은 정보들은 무결성과 신뢰성이 보장되는 블록체인 시스템에 저장되고, 스마트 컨트랙트로 정산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에너지 수요관리(DR) 사업에서는 ‘블록체인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해 참여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 개발할 감축용량 거래 시스템은 블록체인의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통해 참여기업 간 감축량을 자동으로 거래할 수 있다. EV 충전 등 다양한 스마트 에너지 상용 서비스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선보이며 블록체인을 통한 새로운 사업가치 창출을 지속할 계획이다. KT 플랫폼사업기획실 김형욱 실장은 “KT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ICT 기술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앞으로도 KT는 블록체인 기반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여 국가 산업발전과 국민생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블록체인으로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한 산업군이 보인다. 출처=KT

통신사들은 왜?

이동통신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가 통신장비시장에서 일찌감치 화웨이와 손을 잡고, IPTV에서는 넷플릭스와 협력하는 등 당장의 시장 공략에 매몰되어 신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반면 SK텔레콤과 KT는 빠르게 블록체인 정복전에 나서고 있다. 통신사들에게 강력한 중앙 집중형 네트워크 구축이 사업의 본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색적인 행보다. 블록체인은 탈 중앙화, 즉 분산형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탈 통신 전략과 관련이 있다. 현재 통신사들은 5G 시대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으나 인공지능과 플랫폼 서비스 등 탈 통신 사업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단순히 네트워크만 제공한다면 5G 시대에도 기본적인 '고속도로 사업자'에만 매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정체성인 탈 중앙화가 통신사의 중앙 집중형 플랫폼과 맞지 않아도, 탈 통신 트렌드에는 정확히 부합된다.

5G 시대를 맞아 블록체인과 의외의 연결을 추구할 여지도 있다. 5G 시대는 방대한 데이터를 전제로 하며, 통신사들은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 기존의 중앙 집중형 네트워크로는 부담이 되기 때문에 블록체인의 P2P에 가까운 플랫폼 운용에 눈을 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네트워크의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가입자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려면 탈 통신 트렌드에서 강조된 '권한 양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다양한 산업과 만나는 장면도 매력적이다. 단순한 가상통화를 넘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서 블록체인이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통신사들의 플랫폼 의지도 강하다는 말이 나온다. 지금까지 추구하던 통신사 중심 플랫폼 연결 전략은 아니지만, 탈 중앙화를 통한 플랫폼 연결을 유지하며 다양한 영역에 자연스럽게 손을 뻗칠 수 있다는 뜻이다.

초연결 시대를 맞아 보안 인프라 강화에도 긍정적이다. 블록체인은 이론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하며, 통신사들은 블록체인을 통해 5G 시대를 맞아 방대한 데이터를 큰 부담없이 운용하며 보안 위협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