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최근 한국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대표 예가 드라마, 영화 등 영상 부문이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명량’은 관객 1700만명을 돌파했고, 임시정부 시절을 그린 ‘암살’은 1200만명을 넘었다. 게임은 어떨까. 국내에서 한국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은 거의 전무하다. 한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이렇게 높은데 왜 게임에서는 한국 역사의 모습을 보기힘든 걸까. 이를 놓고 게임업가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게임인재단은 23일 오후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지하 2층 국제회의장에서 ‘한국사 대중화와 게임적 상상력의 융합’이라는 주제로 학계와 게임업계 전문가가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 최태성 강사가 게임화 가능한 한국사 스토리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최태성 강사 “왜 게임으로 개발되지 않을까? 싶은 흥미로운 한국 역사 많다”

학계에서는 한국사 강의의 스타 최태성 강사가 게임화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몇 가지 소개했다. 우선 단군 이전의 이야기를 제시했다. 주류학계에서 위작이라고 평가받는 단군 이전 스토리는 신화적인 요소가 많고, 흥미를 끌 만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정확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획자의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도 있다. 이를 이용하면 흥미로운 게임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한국판 ‘삼국지’가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4세기를 주름잡던 백제와 5세기를 주름잡던 고구려, 6세기에 위상을 떨친 신라의 진흥왕 등은 공통으로 한강을 차지하려고 애썼다고 설명하며, 고구려의 강력한 기마병, 백제의 수군 등을 활용해 게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시대 배경으로는 정도전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정도전이 조선을 설계하는 모습을 활용해 건축 장르 게임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최태성씨는 일제강점기에는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더욱 많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 독립투사들을 캐릭터로 등장시켜 게임 내에서 의열단 활동을 완료하는 미션을 부여하는 등의 게임이 가능하다. 

그는  “최근 역사에 대한 관심도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라고 평하며 “게임 영역도 역사를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하면 콘텐츠가 풍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게임 개발에 지나치게 고증을 중요시하는 것은 반대했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역사의 기본 토대만 제대로 갖춰지면 그 콘텐츠 안에서 제작자의 상상력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역사 게임 개발 전문 김태곤 CTO가 역사게임 개발의 어려움과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김태곤 CTO “역사 게임 사업 리스크도 커, 단계적으로 발전해야” 

조이시티의 김태곤 CTO(최고기술경영자)는 한국 게임 시장에 왜 한국사를 이용한 콘텐츠를 찾기 힘든지에 대해 늘어난 게임 개발 비용·기간을 들었다. 게임 개발 환경은 내수만을 노리기엔 부족하며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익숙한 스토리를 제공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앞으로 역사 게임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게임의 질적인 부분 향상과 한국 중심의 게임 구성 탈피, 현실감 있는 고증 등을 제시했다.  

김태곤 CTO는 국내 주류 게임 업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역사 관련 게임 개발 외길 인생을 걸어온 개발자다. 대표작으로는 ‘충무공전(1996)’, ‘임진록2+(2001)’, ‘거상(2002)’, ‘군주(2004)’ ‘타임앤테일즈(2006)’, 아틀란티카(2008), ‘광개토태왕(2015)’ 등이 있다. PC온라인 1세대 개발자이며 많은 게임을 연달아 히트시킨 스타 개발자이기도 하다.

▲ 게임 거상의 플레이 모습. 거상에서는 최고의 상인이 되는 것이 목표다.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 충무공전, 워다이어리, 임진록 시리즈.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김 CTO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까지는 국내 게임 업계에서 큰 규모의 수출 성과는 없었다. 한국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만들어도 국내에서 충분히 흥행하고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구조였다. 당시엔 게임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시간이 현재보다 훨씬 덜한 탓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이 넘어가며 국내 게임의 완성도가 점점 높아지며 제작비가 늘어나고 개발기간 또한 늘어났다. 

김 CTO는 “제작비와 개발기간이 늘어나며 역사 게임을 개발하는 입장에서 한국 시장만을 위해서만 게임을 개발하기에는 위험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삼국지’같은 역사와 달리 우리나라의 역사는 해외에서 크게 알고 있지 못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개발비와 개발 기간보다 내수시장이 워낙 작은 점도 한 가지 요인이었다. 이에 김CTO는 해외 시장을 노린 ‘아틀란티카’ 같은 게임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한국사를 소재로 한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음에도 쉽게 나오지 못하는 이유로 “게임은 대규모 산업이며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아이디어의 비전이 충분히 공감될 수 있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 CTO는 “현재 국내 게임업계는 역사 콘텐츠를 다루는 방법이 굉장히 기본적인 수준에 있다. 그러나 역사 콘텐츠에 감각있는 인력이 게임 쪽으로도 많이 충원된다면 콘텐츠는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김 CTO는 역사 게임을 지속시킬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안했다. 우선, 일러스트와 그래픽 등의 질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MMORPG에 등장하는 서구 판타지 영웅들의 모습처럼 멋진 캐릭터의 모습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한국사라고 해서 한국인들의 취향에만 맞게 외군을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표현하는 점 등이 개선되야한다고 주장했다.

둘째로 고증에 대한 부분을 개선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한국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몰입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고증을 거쳐야한다고 주장했다. 

▲ 왜군 캐릭터 모습.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 영화, 드라마 속 고증이 부족한 흔적들.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AR(증강현실)을 이용한 게임도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열풍을 몰고온 ‘포켓몬고’처럼 사용자가 핸드폰을 들고 위치기반 서비스를 통해 직접 역사적 장소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 23일 오후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지하 2층 국제회의장에서역사 학계와 게임업계 전문가가 모여 한국사를 이용한 게임 제작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헌형 민족문제연구소장, 조이시티 김태곤 CTO, 최태성 한국사 강사.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최태성씨는 “토론을 하며 한국사가 게임화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는 걸 느꼈다”면서 “그렇지만 한국사와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 개발자들이 스토리에 대한 고민을 한국사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CTO는 “게임에서의 역사는 단독으로 성장할 수 없다”면서 “역사와 관련돼있는 다른 문화도 같이 성장하고 소비자들도 그에 따라 역사 게임에 대한 인식이 같이 올라가면 좋은 역사 게임 대중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의 좌장 임헌형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선진국일수록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서 “역사 콘텐츠가 게임의 주류가 되길 기대한다”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