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미국 자동차업계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수입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한 미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반대 청원을 냈다. 미국 자동차관계자들은 자동차 가격 상승에 따른 가격경쟁력 하락과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현지에 거점을 둔 자동차 기업들은 무역전쟁 피해를 우려하며 생산기지 해외이전을 준비·진행 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업계가 수입차에 대한 관세부과를 반대하는 청원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와 부품 공급업체, 자동차 딜러 등은 전날 수입차 고율 관세가 현실이 되면 “자동차 가격이 오르면서 일자리는 감소할 것”이라고 관세 부과에 집단으로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청원에는 미국 내 생산기지를 둔 외국 자동차 제조업체를 대표하는 단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자동차업계가 트럼프 대통령에 보낸 공개서한에는 “수입차와 차량 부품에 대한 관세부과는 미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세금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미국 자동차업계는 온라인과 신문 광고를 통해서 ‘수입차 관세 반대’ 캠페인을 전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12개 미국·해외 자동차 제조업체를 대표하는 미 자동차제조업연맹(AAM)은 19일 열리는 공청회에서 발표할 자료에도 “수입차에 대한 관세는 미국 근로자들과 전반적인 경제에 해를 끼치는 도미노 효과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AAM은 수입차량에 대해 25%의 관세가 부과되면 수입차 한 대당 소비자 부담이 평균 5800달러(약 650만원)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1910억달러(약 216조4400억원) 규모의 자동차와 1430억달러(약 162조470억원)어치의 자동차 부품을 각각 수입했다.

미국의 대표 완성차업체인 GM도 고율 관세 반발에 나섰다. GM은 지난달 29일 상무부에 성명을 보내 “수입차에 대한 관세 부과는 미국 일자리를 줄이고 GM을 지금보다 더 힘들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GM은 미국에 연산 180만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해외 공장에서도 약 110만대를 생산해 미국으로 들여오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캠리 부품 30%가량을 일본에서 가져오는 도요타는 “미국이 25% 관세를 부과하면 켄터키주에서 생산하는 중형 세단 캠리 가격이 1800달러(약 200만원) 가까이 올라간다”며 “고율의 관세 부과는 미국 경제와 소비자에게 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BMW는 “독일과 캐나다, 멕시코, 일본, 한국 등 자동차 수출국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 원칙과 경쟁’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BMW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공장에서 3만6285명을 고용하고 있다. 현지에서 생산하는 자동차의 70% 이상을 수출해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

'무역전쟁 피해라' 이탈하는 미국 업체와 생산기지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한 무역정책을 고수하면서 정작 미국내 생산시설이 해외로 이탈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에 거점을 둔 세계 완성차업체들은 생산기지 이전을 고민하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제조사 테슬라가 연간 50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대규모 공장을 자유무역지대인 린강(臨港)개발특구에 짓기로 했다. 중국이 미국산 자동차에 부과한 최고 40%의 보복관세가 지난 6일부터 발효되면서 중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테슬라의 차량 가격은 20% 이상 인상돼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미·중 무역전쟁을 계기로 상하이 공장 건설 계획을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모터사이클 브랜드 할리 데이비슨은 지난달 25일 EU의 보복관세를 피하고자 미국내 생산시설 일부를 해외로 옮기기로 했다. EU가 미국의 철강 관세 폭탄에 대응해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 등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이 조치로 할리 데이비드슨이 EU에 수출할 때 적용되는 관세는 기존 6%에서 31%로 급등, EU시장내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연간 판매량이 4만대에 달하는 EU 시장을 지키기 위해 부득불 생산시설을 일부 이전키로 한 것이다.

벤츠가 속해 있는 다임러그룹에도 불똥이 튀었다. 다임러는 지난 4월 1분기 실적 발표 보고서를 통해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임러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해 중국에 판매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BMW도 관세 부담을 피하려고 미국 공장 생산량을 줄이고 중국 공장의 가동률을 높일 전망이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가동하는 스포츠유틸리티(SUV) 생산라인의 일부를 미국 외 지역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현지언론 포스트앤드쿠리어이 보도했다. BMW는 중국 합작사 브릴리언스 오토모티브그룹 홀딩스와의 최근 계약에 따라 중국 내 제조시설을 2019년까지 연간 52만대로 늘리기로 했다.

BMW의 하랄트 크루거 최고경영자(CEO)는 브릴리언스 측과의 계약 직후 “중국에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뼈대를 세웠다”며 “미래 투자와 성장, 전기차 생산에 공헌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관세폭탄에 맞서 중국이 미국산 자동차에 최고 40%의 보복관세를 부과하자 BMW는 늘어난 관세 충격을 흡수할 수 없어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수입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검토 중인 미국 상무부는 19일 공청회를 열어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한다.

상무부에 따르면 공청회에는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기업, 경제단체, 정부 관계자 등 45명이 발언할 예정이다. 참여하는 국가로는 한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멕시코, 캐나다, 터키, 일본, 말레이시아, 남아공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금액 기준으로 멕시코, 캐나다, 일본, 독일, 한국은 미국에 자동차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들이다.

이들은 자국의 자동차·부품 수출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관세 등 수입규제가 부당한 이유를 설명할 예정이다. 한국은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가 이 자리에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