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최근 원화와 위안화의 동조화 현상이 강해졌다. 미·중 무역분쟁이 양국 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진 셈이다. 환율시장이 안정세를 찾을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위안화의 약세 기조는 다소 장기화될 전망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대미 교역은 무역은 물론 자국 내 국유기업의 디폴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통화완화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안화의 영향은 물론 성장성 등 매력이 떨어지면서 원화가치의 하락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미국도 관세부과에 따른 인플레 압력 등으로 금리상승 부담이 존재하는 만큼 시장불안은 점차 완화될 전망이다.

지난 18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0.73% 오른 1132.3원을 기록했다. 금융투자업계가 내다본 올해 하반기 환율 밴드 구간(1100~1130원)을 넘어서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7일(현지시간) 미국 노동시장과 인플레이션 전망을 긍정평가하면서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 주 원인으로 파악된다. 달러화 강세 전망이 원화 약세를 부추긴 것이다.

원화 약세 원인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신흥국 자금유출, 국내 경제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 등이 꼽힌다. 최근에는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위안화 흐름이 원·달러 환율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까지 한국과 중국의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동반 상승했다. 그러나 7월에는 한국의 CDS 프리미엄은 하락한 반면, 중국은 상승했다. 즉 위안화가 아닌 여타 요인이 원화 가치에 영향을 미쳤다면 원·달러 환율은 하락(원화 강세)했어야 한다.

6월 초부터 최근까지 달러화 대비 원화와 위안화는 각각 4% 넘게 절하됐다. 같은 기간 달러가치 상승은 1%도 채 되지 않았다. 원화와 위안화의 가치는 여타 신흥국 통화와 비교해도 유난히 빠르게 하락했다.

▲ 원/달러와 위안/달러 환율 추이[출처:한국거래소]

원인은 위안화다. 이 기간 동안 위안화는 20회 넘게 절하고시됐다. 달러화 가치 변동이 크지 않았음에도 위안·달러 환율이 급등한 배경이다. 높은 익스포저에 영향을 받아 원화 환율도 동조화된 것이다.

현재 원화와 위안화의 약세는 무역분쟁 고조에 따른 중국과 아시아 지역 국가의 수출 위축 가능성이 반영돼 있다. 경제 지표 흐름보다는 불안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현재 원·달러 환율은 오버슈팅돼 있다”면서 “한국의 CDS 프리미엄을 보면 원화의 저평가는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역분쟁과 위안화 약세며 그 기조는 당분간 반전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성장성이 결여돼있는 원화자산의 특성상 원화 강세를 견인하는 수급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버슈팅 구간에서 정상화되는 과정을 거쳐도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를 하회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위안화는 여전히 약세 압력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역내외 위안화 환율갭이 추가 상승의 여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원화의 오버슈팅 해소도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원화·위안화 약세 언제까지

원화와 위안화가 약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중 무역전쟁이 완화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역전쟁에 따른 1차 경제피해보다는 환율 변동에 따른 2차로 발생하는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환율과 주식시장 변동성은 자산가치 변화를 통해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시장이 글로벌 환율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의 전개 과정을 쉽사리 예단하기 어렵다. 지난 6일 미·중 양국이 각국 수입품 340억달러에 대한 관세부과를 실행한 데 이어, 10일에는 미국 무역대표부가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 관세부과 세부내역을 공개해 양국 간 무역분쟁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협상의 의제로 삼을지조차 불분명하다는 것이 문제다.

이승훈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20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3차 관세)를 부과하기 전에 협상이 마무리되는 것”이라면서 “이후라도 양국이 대화채널이 가동돼 분쟁을 진정시키는 경우가 차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중간선거 전에 양국의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글로벌 헤게모니를 두고 경쟁하는 양 국가의 패권 경쟁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반 영국과 독일, 1940년대 소련과 미국, 1980년대 일본과 미국 등의 충돌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한 국가들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유럽은 제조강국의 지위를 미국에 빼앗겼고,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 후 ‘잃어버린 30년’을 보냈다.

미·중 무역전쟁이 전 세계 보호무역주의 확대로 이어질 경우 교역 악화에 따른 투자 위축은 불가피하다. 세계 경제성장률 하락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아직은 중국이 미국과 전면전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기축통화 등 패권을 구체화할 만한 힘이 없다는 평가다. 이 또한 위안화 가치 하락 기조가 예상보다 장기화될 수 있는 요인이다.

▲ 중국 상장 기업 디폴트 수 [출처:KB증권]

중국은 생산과 투자 등 내수지표 부진으로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이 3분기 내 최저인 6.7%에 그쳤다. 무역갈등 여파가 반영되는 하반기 성장에 대한 우려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중국은 정부의 금융부채 축소 노력 및 구조개혁 등의 결과로 중국 내 기업 부도가 이슈다. 상장채권 발행 기업들의 신규 부도 건수는 2016년 30개에서 2017년 10개로 줄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이미 9개를 기록하고 있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중국은 국유기업 디폴트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며 “최근 지준율 인하와 동시에 유동성을 공급 측면에서 위안화 약세를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역분쟁과 중국 내 상황을 동시에 고려하면 위안화 약세 기조가 상당히 오래 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미국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경제 펀더멘털은 여전히 탄탄하지만 글로벌 교역량 위축과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부과는 인플레 압력은 높일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채권시장 약세(금리 상승)로 이어질 수 있다. 금리수준이 급격히 높아질 경우 소비위축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운용역은 “우려되는 부분은 관세부과로 수입이 제한돼 공급이 감소할 경우 물가가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달러 가치 상승폭이 크지 않아 미국의 인플레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물가가 상승해 미국 금리가 오를 경우, 그 가능성은 낮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