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빅데이터라는 유령이다. 검색빈도에 따르는 빅데이터의 결과이겠지만, 인터넷 화면에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광고가 뜨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빅데이터가 당신을 보고 있다’라는 표어가 곳곳에 걸려 있는 것만 같다.

우리나라는 ICT(정보통신기술) 강국이라는데도 미래산업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의 빅데이터 이용 목적은 주로 의료정보에 기반을 둔 진단체계, 타깃약제 개발 등이지만 우리나라는 대체로 민간의료보험의 시장확장, 마케팅산업 등을 효율화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4년 7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비식별화된 정보를 민간보험사 13곳에 1800여만원을 받고 팔았다. 심평원이 민간보험사가 보험상품의 손해율 평가 등 영리 목적으로 정보를 활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진료정보 총 87건, 1억850만명분(누적)을 돈을 받고 넘겼다는 사실은 뭇매를 맞기에 충분했다. 국민의 민감정보를 토대로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닌 금융산업계의 발전에만 주력한 것으로 추정되는 탓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빈번한 개인정보 유출로 개인의료 민감정보 보장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권으로 떨어진 나라다. 약학정보원은 미국의 빅데이터 업체인 IMS헬스(현 아이큐비아)에 50억건에 이르는 처방전 정보를 판매했다. 이러다간 주민등록번호 유출처럼 개인의료정보도 누군가에 의해 마구잡이로 사용되는 데 익숙해질 수 있겠다는 의구심이 든다.

의료정보는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와 달리 유전정보, 진료정보, 생활습관 정보가 모두 결합돼 있는 만큼 유출되면 개인정보 유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단순히 보험사 등이 영리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고용계약에도 이용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민간 기업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막대한 공공데이터를 입수한 후 이 데이터와 자사데이터, 계열사 데이터를 비교‧결합해 개인정보를 재식별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 기업은 240만여 고객의 ‘가입 건수, 보험료, 가입기간, 가입상품과 카드이용 실적정보’ 등의 개인정보를 13회에 거쳐 결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계열사가 보유한 모든 개인정보를 암호화한 후 결합하고, 다시 비식별화해 더 많은 정보를 보유하기 위한 방법이다. 계열사의 정보를 모두 모은 뒤 이를 공공데이터와 비교해 결합하면 개인정보 재식별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분석된다. 2016년 6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우리나라 기업의 개인정보 결합 시도 건수는 1억7014만건이고 결합 건수는 1226만건이다.

이렇게 탄생한 빅데이터를 누군가가 악용하면 결말은 끔찍하다. “A 씨는 신경계 질병 발생 가능성 60%, 우울증 가능성 42%, 집중력 장애 89%, 심장질환 가능성 99%, 조기사망 가능성 매우 높음, 예상수명 30.2년의 인생이군요”라는 정보해설이 가능한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가 온다면 “여기, A 씨 맞춤 신경계 질병 치료 기술, 우울증 치료제, 집중력 장애 치료약입니다. 3년 쯤 뒤가 심장질환 수술을 받기 적절한 시기군요” 역시 가능할 수 있겠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 환자단체가 “개인의료정보가 악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성급하고 무분별한 활용을 막고 있지만, 난치성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등을 무조건 반대할 수도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렇다.

올해 열린 한 의료정보정책 포럼에서 특정 환자의 의료정보를 포함한 자료가 배포됐다. 발제자의 발표가 끝나자,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의사가 일어나 “개인의료정보를 보호하면서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옳다”면서 “다음부터는 환자 의료정보 유출하지 마시고요”라고 덧붙인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의료 빅데이터 활용 방안의 해법은 관련 연구가 진행돼 치료를 받고 싶은 환자, 개인의료정보를 이용당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고 마련해야 한다. 부가가치에만 눈이 멀면 더 큰 문제를 놓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