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의 내 존재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각각 다르게 대답한다. 어떤 이는 평가의 대상이 가진 ‘직책’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대표 또는 조직의 리더 그룹일 경우에는 당연히 영향력의 폭과 깊이가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만약 조직 속에 전문 경영인과 오너가 함께 있다면, 그래서는 안 되지만, 보통은 오너의 말을 들어서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사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어떤 이들은 지니고 있는 ‘직무’에 주목한다. 조직이 다루고 있는 비즈니스가 무엇이고, 그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어떤 직무가 수행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당연히 마케팅 에이전시에서는 ‘AE 직무’가 핵심이고 제조에서는 생산과 영업이 쌍두마차를, IT 개발은 당연히 ‘(리소스) 개발과 고객 발굴 및 유지’가 중요 직무가 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직무보다는 직책에 더욱 주목한다.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철저하게 ‘사람 중심의 기능(技能)’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능(機能 - 능력에 따라 일정한 분야에서 하는 역할과 작용)이 아닌 기능(技能 - 육체적, 정신적 작업을 정확하고 손쉽게 해 주는 기술상의 재능) 말이다.

이 둘의 차이는 분명하다. 무언가를 가능하게 함에 있어 기능(機能)은 사람보다는 주어진 역할과 책무에 집중한다. 일에 집중해 일이 되는 방향에서 일을 그저 일로 보는 것이다. 당연히 전제조건은 조직은 직무의 합이고, 조직의 목적과 목표에 맞게 직무 시스템을 언제든지 손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직책보다는 직무를 우선적으로 보고, 목적에 부합하는 유연한 시스템 구축, 그 속의 개인이 담당하는 직무의 범위는 비즈니스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반면 기능(技能)은 기술 기반으로 판단하고, 그 가능함을 개인이 가진 숙련의 완성도, 이른바 일을 얼마나 효율 및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물론 똑같은 일이라도 누가 맡는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에 기대어 목적 달성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높은 수준의 기술 수준 또는 경험을 한 이들이 높은 직책을 지니게 되고, 그들의 판단에 철저하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시스템을 짜는 이들과 이에 순응하는 이들로 갈리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조직은 위의 두 가지 경우 중에 어떤 성향을 많이 지니고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 후자라고 할 것이다. 개인이 가지는 직책에 기대어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지우고, 그에 대한 조직의 명운을 맡기는 것이다.

그렇게 직책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우리 모두는 ‘승진’에 목을 매면서 조직 속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능(技能)’에 국한된 업무를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란 거의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조직의 통제 아래에서 하게 되었다. 이른바 빈칸 채우기식 업무, A와 B 사이를 연결하는 것만으로 내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면서 스스로 무능함을 키우는 경우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분명 조직과 연결된 내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조직도 그 속에서 일하는 개인도 미묘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려고 해야 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직이 너무나 많은 완충작용을 담당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이른바 소극적으로 일해도 된다고 믿는 직장 속 ‘알바족’ 또는 ‘개인의 영달을 최우선으로 놓는 승진주의자들’ 말이다.

그나마 승진주의자들이면 조금은 낫다. 아니 알바족에 비해 생존에 유리한 편이다. 이들은 자신의 성취를 위해 영악하게 조직을 이용할 줄 알며 다분히 정치적이다.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적절하게 부풀려서 이를 몸값에 이용할 줄 안다. 물론 절대 고수를 만나면 꼬랑지를 내리지만, 보통의 사람들 앞에서는 스스로가 가진 능력을 끊임없이 과시하려고 한다.

물론 이런 성향이 과하게 작용하면 조직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안중에도 없이 스스로가 가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한다. 분명 내부 경쟁은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피해야 함에도, 오히려 피하기보다는 주변 팀 또는 동료들과 과열 경쟁을 일으킨다.

승진주의자들을 구분하기는 쉽다. 경쟁적인 성향을 지니기에 조직 성과는 하락하는데, 이들은 반대로 올라간다. 물론 KPI상의 오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부분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성하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된다. 적어도 그렇게 유리한 상태로 만들어 조직 속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운이 매우 좋거나 천재이거나, 약삭빠른 타입 임에 분명하다.

또 하나, ‘알바족’은 조직에게도 개인에게도 최악이다. 이들은 일을 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확히는 주어진 역할만 채우려고 한다. 만약 그 이상의 일을 조직에서 요구하면 열심히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조직은 시장 환경, 그 속의 고객에 따라서 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들은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다. 아니, 변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면으로 변화를 거부하고, 조직에서 실행하려는 변화를 주도하는 일에 대해 자신의 일의 변화가 나타나면 주저하지 않고 반대표를 던진다.

이해는 간다. 비즈니스도 그 속에 포함된 사람들도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성공 방법이 거의 통하지 않게 된 사회다. 가중된 복잡성이 각각의 업종별 비즈니스의 성공 요소를 쉽게 가늠할 수 없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기에 쉽사리 명확하지 못한 자신의 정체성과 반대되는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직은 과거에 비해 더욱 보수적 선택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역할과 책임을 매뉴얼로 만든 것이다. 조직의 목적을 달성해야만 그 속의 개인이 살 수 있었고, 개인보다는 조직을 우선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은 있었다. 알바족은 알바족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조직에 적응하다 보니 나타나게 되었고 또한 더욱 많아졌다. 많은 이들이 상대적으로 큰 조직에 계속 남아있거나 들어가려고 하니, 조직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결정을 보수적인 측면에서 하게 된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조직을 병들게 했다.

조직에서는 몇 가지 업무 활동을 고정해 Routine 업무로 만들어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이런 방식은 개인의 전문성에 기대기보다는 조직이 가진 힘을 통해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이는 잠시 동안만 좋았다. 왜? 호황을 지나 불황을 거치고 고도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저성장시대에는 통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의 이유는 스스로가 일의 가치를 ‘직책’보다는 ‘직무’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연결된 사람이 가진 직책에 따른 기능(機能)보다는 기능(技能)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분명 완벽하다고 믿었던 시스템임에도, 시스템의 유연성을 무시한 채 전체 최적화에 성공하면서 새롭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일의 입장 또는 조직은 ‘직책보다는 직무’에 주목해야 한다. 일은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 하는 것이다. 조직은 직무의 합이고, 그중에 조직이 나아가려는 방향, 고객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중요한 직무는 일부 정해져 있다. 이를 고도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유연한 시스템을 구축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 또는 주도하는 국면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은 기능(機能)적으로 일하면서 조직의 목적 달성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목표를 위한 ‘성취 지향적’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 만약 기능(技能)적 입장만을 계속 고수한다면 언젠가 나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숙련도를 가진 이들에게 대체될 것이다.

저성장시대에는 조직이 가진 힘으로도 극복하기 어렵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조직의 성과는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조직들은 각자 살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하고, 결국에는 인적자원 청산이라는 강수를 꺼낸다. 이는 ‘전략다운 전략이 거의 부재’했던, 지나간 과거 속 호황기 시절에 성장한 우리 기업들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직이 제시하는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도, 그 시스템을 유연하게 유지하고 계승하는 것도, 이를 활용해 개인의 성취지향적인 커리어를 쌓는 것도 모두 필요하다. 조직에 잘 길들여진 인재가 아닌, 조직을 잘 길들여서 원하는 성과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을 말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성향의 인재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