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황진중 기자] 오픈 이노베이션은 해외에서는 기업을 넘어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그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미국 소비재 기업 P&G와 레고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이제 고전으로 회자된다. 보스턴시의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도 널리 인용된다.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의 고전, P&G와 레고

오픈 이노베이션의 해외 기업의 사례로는 P&G의 C&D(Connect and Development)와 레고의 사례가 꼽힌다.

P&G는 전 세계에 2만7000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71개 국가에서 7500명에 이르는 연구원들이 다양한 제품을 연구하고 있는 미국의 소비재 기업이다. 혁신은 강한 브랜드를 강조하면서 성장하는 P&G의 주요한 경영전략 중 하나다. 1990년대 예상 매출 성장률보다 적은 성장을 경험한 P&G는 기업의 혁신율을 최대로 향상할 필요를 절감했다.

P&G처럼 성숙한 시장에서 활동하는 대기업은 연간 최소 4~6%의 성장을 달성하지 않으면 지속 불가능하다. P&G는 연간 약 40억달러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야 했다. 250억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릴 때까지는 자체발명(Invent-It Ourselves) 모델로 성장했지만 2000년 들어 등장한 신기술들이 회사의 기업혁신을 위한 R&D 비용에 부담을 줬다. R&D 생산성도 떨어지면서 P&G의 주가는 118달러에서 52달러로 반토막 나는 등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이에 당시 엘런 조지 래플리 회장은 P&G가 추진하는 혁신의 핵심 아이디어 중 외부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비율을 2008년까지 50% 수준으로 높일 것을 지시했다. 그는 P&G의 내부 연구진과 지원 스태프의 역량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P&G 관계자는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외부에서 창조된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성향이 있었다”면서 “이를 외부인의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기업 경쟁력과 수익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로 변화시키는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P&G는 개방혁신 사례연구의 고전 ‘프링글스 프린트’를 탄생시켰다. 굴곡이 심한 감자칩인 프링글스에 이미지를 새기는 작업은 기술 난제가 많았다. 온도와 습도가 높은 제조 과정 중에 프린트가 이뤄져야 하고 식용 잉크도 필요했다. 내부 R&D에만 의존했다면 제품 개발에서 출시까지 2년은 걸렸을 테지만, P&G가 운영하고 있던 네트워크에서 이태리 볼로냐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한 대학 교수가 자기가 개발한 식용 잉크 분무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와 제휴해 신상품 개발을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해낼 수 있었다.

P&G는 새로운 개방형 혁신 모델을 도입한 이후 2000년에 15%에 불과한 외부 아이디어 활용률을 신제품 35%, 제품 개발계획 45%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P&G는 “C&D로 R&D 생산성을 60% 증가시킨 반면 소요 비용은 현저하게 감소하는 성과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레고의 사례도 의미심장하다. 세계 시장을 호령한 레고는 1994년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레고의 특허가 풀리면서 비슷한 저가 제품이 난립하고,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 비디오 게임의 등장으로 소비자의 놀이생활을 대체하는 대체재가 급속하게 증가해 레고만의 경쟁력이 약화된 결과였다.

레고는 경쟁력과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제품 수를 크게 늘렸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1994년 109개에서 96년 160개, 98년 347개로 제품 수가 늘면서 레고 특유의 개성이 사라진 탓이었다.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레고의 순이익은 감소해 1998년 4800만달러 적자로 전환하고, 전체 8670명 직원 중 1000여명을 해고할 지경에 이르렀다.

1998년 일어난 ‘마인드스톰 해킹사건’은 제품과 지적재산권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폐쇄형 기업 레고를 개방혁신의 길로 이끌었다. 레고가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맞춤형 로봇을 제작할 수 있는 마인드스톰이라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한 뒤 3주 만에, 레고팬들이 제어 프로그램을 해킹해 기본 기능 외에 다양한 기능을 추가한 버전을 인터넷에 공개한 사건이다. 레고는 해커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일지 고민하다가 차라리 사용자들과 협력해 신제품과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꿨다.

레고 애호가와 손을 잡기 위해 ‘레고 아이디어스(LEGO IDEAS)’ 홈페이지를 개설해 제품 아이디어를 모으는 개방혁신을 이뤄내면서 2004년부터 2014년 사이에 매출을 5배로 늘리는 등 성장세를 이어갔다.

▲ 스트리트 범프 앱 사용 예시. 사진=스트리트범프

포트홀과 스트리트범프, 보스턴시의 ‘도시 수리’ 혁신

오픈 이노베이션은 일반 산업계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 보스턴시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보스턴은 빅데이터와 크라우드소싱을 적극 활용하는 대표 도시로 꼽힌다.

오래 전부터 미국 주 정부와 지방 정부는 포트홀(아스팔트 포장의 공용시에 포장 표면에 생기는 국부적인 작은 구멍)과 같은 도로 위험요소들을 찾아내려고 전국 도로를 샅샅이 뒤졌다. 미국 정부는 “세븐일레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딘가에”라며 상당히 포괄적인 위치를 알려주는 성난 시민의 제보 전화에 의존해 이를 수습했다. 다시 말해 당국은 포트홀 관련 보고를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도로 위 여러 위험요소는 오랫동안 보고되지 않은 채 방치되면서 수많은 차량을 손상하고 납세자들의 분노를 샀다.

공공부문이 포트홀과 도로 위험요소들을 이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한 이유는 자동차 보험사들이 몇 안 되는 기본 변수를 가지고 보험료 견적을 낸 것과 같다. 당시 가지고 있는 데이터로는 이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었다.

보스턴시는 일을 해결하려고 팔을 걷어붙였다. 미국 명문대 MIT 출신 컴퓨터 전문가들을 모아 보스턴의 도로를 효율적으로 유지 보수할 수 있는 개선책을 구상했다. 2012년 7월 보스턴 최장기 재임 시장인 토머스 메리노 시장은 뉴어번메카닉(NEW URBAN MECHANIC)이라는 부서를 신설해 ‘스트리트 범프(Street Bump)’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 스트리트 범프 앱 구동 모습. 사진=이코노믹리뷰 장영성 기자

스트리트 범프는 스마트폰 앱이다. 이 앱은 운전 중 마주치는 도로 위험요소에 관한 정보를 자동으로 시에 전송해준다. 불길한 소리를 듣자마자 스마트폰이 알아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스트리트 범프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은 운전을 시작하기 전 앱을 작동하고, 스마트폰을 계기판 주변이나 컵 홀더에 놓아두면 된다. 그 뒤로는 앱이 알아서 정보를 수집하고 시에 전송한다.

원리는 스마트폰에 설치된 동작탐지기인 가속도계가 차량이 어딘가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GPS는 사고 위치를 기록하고, 스마트폰은 아마존 웹서비스에서 관리하는 원격 서보에 정보를 전달한다.

초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여기에서 매사추세츠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과 크라우드소싱 전문 기업 엔터이노센티브(Enter Innocentive)가 등장했다. 보스턴시는 이노센티브사와 ‘오픈 이노베이션’을 진행, 스트리트범프를 개선하고 거짓 양성반응 수를 감소시키고자 했다. 이노센티브사는 앱 개선작업을 ‘게임화(Gaming)’라는 하나의 시합으로 만들었다. 이노센티브사는 40만명에 이르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이 사업에 리버티뮤츄얼이 기증한 2만5000달러의 상금을 걸고 해결책을 공개 모집했다.

하룻밤 만에 스트리트범프를 개선할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고의 아이디어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매사추세츠주 서머빌에 사는 해커들, 미시간주 그랜드밸리주립대학 수학과 학과장, 익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아이디어를 추천했다. 특히 보스턴시 해커들은 이 앱을 통해 나타나는 정보를 빅데이터로 구축, 보스턴시 전역에 인력을 고루 배치하고 운전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시민들이 파손된 도로를 발견해 신고하는 데 많은 절차와 시간이 걸려 신고 건수가 적었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에 시민들이 스트리트 범프 앱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실행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도로 관리국으로 전송되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신고의 번거로움이 사라지면서 더 많은 양의 데이터가 축적됐고, 이를 통해 시는 도로 복구에 드는 시간과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빅데이터, 신기술, 새로운 사고방식을 포용한 오픈 이노베이션의 예가 스트리트 범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