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오픈 이노베이션 포럼. 출처=한미약품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은 이제는 확고부동한 흐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동안 제약·바이오 기업은 폐쇄형 혁신에 주력해왔다. 글로벌 제약사를 중심으로 사업영역을 다각화하거나 기업 간 인수합병으로 혁신을 모색하면서 ‘벽’을 뛰어넘으려 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자본과 신약개발 프로세스 등을 보유한 제약사는 특수 질환에 관한 혁신 기술을 보유한 연구소, 대학, 벤처 기업에 투자하거나 이들과 제휴하면서 개방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약기업이 이끄는 개방혁신… 제약강국 도약 앞당겨

오픈 이노베이션이 추구하는 개방과 공유, 혁신은 높은 기술력과 연구개발력이 필요한 제약·바이오 기업의 꽃이다. 그동안 의약품 분야 기업은 자체 연구개발(R&D) 역량에 의존하면서 연구 정보를 독점하는 폐쇄형 신약 개발로 성장했지만, 현재는 다양한 오픈 이노베이션 유형으로 개방혁신 경영 전략을 선도하고 있다.

이는 제약 기업이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제약 기업의 위기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는 시기가 맞물리면서 나타났다. 제네릭 등 경쟁 의약품의 출시 속도가 빨라지는 데 반해, 신약 개발의 기술과 시간, 비용이 계속 증가했기 때문이다. 미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신약개발은 전임상 단계에서 최종 상용화까지 평균 성공률 9.6%에 그칠 만큼 높은 R&D 역량과 기술이 필요하다. 새로운 약이 탄생하기까지는 대개 7년에서 12년이 필요하고 평균 8.7년이 걸린다. ‘신약개발은 실패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은 이런 난관을 잘 말해준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이런 난관 극복, 돌파의 열쇠가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에 따르면 폐쇄형 혁신의 경우 임상 1상 성공률은 68%, 임상 2상 36%, 임상 3상 61%, 시판 후 안전성·유효성 검사 75%이다. 개방형 혁신을 하면 단계별로 82%, 59%, 76%, 92%를 보인다. 제약기업들의 임상 중심 개발 성공률이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높아지는 것은 명약관화다.

▲ 한미약품과 협력하고 있는 문성환 압타바이오 사장이 한미 오픈 이노베이션 포럼에서 R&D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출처=한미약품

한미약품과 광동제약, 오픈 이노베이션 올인

국내 제약사 중 오픈 이노베이션에 박차를 가하는 기업으로는 단연 한미약품이 돋보인다. 한미약품은 단순히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발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미약품이 보유한 경험과 노하우, 자본의 공유 등을 위해 2016년 오픈 이노베이션 경영방침을 확립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국내외 산학연 등과 적극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약품은 미국 바이오 기업 아테넥스에 항암주사제를 경구용으로 바꾸는 플랫폼 기술 ‘오라스커버리(ORASCOVERY)’ 등을 적용해 기술을 수출하고 미국, 유럽 등에서 개발과 상업화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한미약품과 미국 스펙트럼이 함께 개발 중인 호중구감소증 치료 바이오 신약 ‘롤론티스(Rolontis)’는 올해 4분기 미국에서 시판 허가 신청을 앞두고 있다. 호중구감소증은 항암치료나 감염으로 백혈구 안의 호중구 숫자가 감소하는 질환이다.

한미약품은 또 중국 루예제약(绿叶製藥, Luye Pharma)과 포지오티닙의 중국 내 임상시험 등 개발과 생산, 시판허가와 제품화 이후 영업, 마케팅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고,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인 일라이 릴리(Eli Lilly)와는 HM71224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류마티스관절염 등 다양한 면역질환 치료제 개발 계획을 세웠다. 또 사노피(SANOFI), 얀센(Janssen) 등 대형 제약사와 협업하고 미국의 안과전문 R&D 벤처 알레그로(Allegro), 아주대학교 의학대학 서해영 교수팀과 ‘줄기세포 활용 혁신 항암신약’ R&D와 협업하는 등 국적과 기업 규모 등에 연연하지 않고 오픈 이노베이션 대상을 넓히고 있다.

▲ 한미약품 주요 오픈 이노베이션 현황. 출처=한미약품, 이코노믹리뷰

광동제약은 제약사업을 넘어선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유명하다. 광동제약은 비타 500 등 현금창출원을 바탕으로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다. 최근 개방혁신의 일환으로 생명공학 바이오벤처 기업 비트로시스와 바이오 신소재 개발을 위한 공동 R&D 업무협약(MOU) 계약을 체결했다.

광동제약은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으로 우선 비트로시스에 의약품과 식품 R&D로 축적한 인삼과 홍삼 원료 관련 제제화 기술을 제공하고, 비트로시스는 광동제약 기술에 자체 보유한 조직배양기술, 약용식물 복제 노하우 등을 접목해 천연물질 신소재 관련 기술과 원료 물질을 발굴하기로 했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공동 R&D MOU 계약 체결을 계기로 광동이 축적한 제제 기술의 활용 범위를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광동제약은 공공기관과의 협업으로 생물자원을 활용하는 산업화 소재 발굴에도 나섰다. 지난 달 제주 테크노파크,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과 MOU를 체결한 광동제약은 두 기관과 함께 해양과 육상 자원에서 신소재를 찾아낸 뒤 융·복합 기초 연구 성과와 산업계 네트워크를 연계해 사업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3자 역할 분담으로 미래 융·복합 기술분야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제주 지역 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제약사별 주요 오픈 이노베이션 현황. 출처=각 제약사, 이코노믹리뷰

다양한 협력의 방정식

최근 위식도 역류질환 부문 신약 허가로 국산신약 30호를 선보인 CJ헬스케어는 역량 있는 벤처기업을 초청해 ‘R&D 오픈 이노베이션 포럼’ 등을 열어 오픈 이노베이션 대상을 발굴하고 있다. CJ헬스케어는 2016년 포럼에서 항체의약품 개발 전문 벤처기업인 와이바이오로직스사와 이중타깃항체 의약품 R&D 계약을 체결했다.

CJ헬스케어는 안정성을 갖춘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투자회사인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와 152억원 규모의 ‘바이오 헬스케어 펀드’를 결성해 유망 바이오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등 기술 투자의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첫 투자로 치매치료 항체신약을 개발 중인 뉴라클사이언스사에 20억원을 투자했다. 이어 바이오 벤처기업 앱콘텍사에 20억원을 투자하는 등 제약사 투자펀드로 바이오 벤처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프로바이오틱스로 잘 알려진 체내 미생물과 관련, 제약기업들의 개방혁신 활동도 활발하다. 일동제약은 천랩과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공동연구소(ICM)를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 개설하면서 제품 R&D에 착수했다. ICM에서는 일동제약이 보유하고 있는 프로바이오틱스 목록과 생산기술, 제품 상용화 방안에 천랩의 차세대 유전자 처리 기술 등이 융합돼 다양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와 건강기능식품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종근당바이오 역시 서울대학교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과 협업으로 장내미생물은행을 설립하고 마이크로바이옴 공동 R&D MOU을 맺고 장 질환 치료를 넘어서 항비만, 골다공증 개선, 신장질환 개선에 효과를 나타내는 기능성 프로바이오틱스 연구 등 다수의 R&D 과제를 수행했다. 종근당바이오는 서울대학교와의 MOU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프로바이오틱스 제품 개발에 더욱 속도를 높이는 개방혁신을 이뤄낼 것으로 예상된다.

까스활명수 등 대표 액상소화제 제품을 보유한 동화약품도 연구기관, 정부기관, 기업, 학교 등과 기술 혁신 네트워크를 만들어 R&D에 힘쓰고 있다. 동화약품은 지난 2016년 울산과학기술원과 알츠하이머 치매치료제 R&D에 관한 MOU를 체결하고 혁신 신약개발에 착수했다. 동화제약은 또 아주대학교의료원, 경희대학교 등과 산학협력 관계를 만들어 신약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여재천 신약개발조합 전무는 “글로벌 기업인 테바와 길리어드를 보면 주요 성장 동력이 오픈 이노베이션과 M&A의 지속이었다”면서 “바이오 경제 시대의 신약 R&D 전략은 오픈 이노베이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