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고영훈 기자]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SC, Stewardship Code)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도입 이후 하반기부터 주주권행사를 단계적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아직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 경영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충돌하고 있으며 사전공시와 의결권 위임도 쟁점이 되고 있다. 독립성 확보도 개선돼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공청회를 열며 청사진을 제시했다. 오는 26일 최종 심의와 의결 후 시행할 예정이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주주권행사 로드맵./출처=보건복지부

국민연금은 그동안 시장 영향을 고려해 의결권, 배당을 중심으로 주주권을 행사해 왔지만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으며 초과수익 창출과 장기 수익성 제고에 한계가 있어 새로운 방안 모색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발표자인 최경일 국민연금재정과장은 "삼성물산 합병 이후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국민연금을 보호하고, 기금운용의 독립성·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대됐다"며 " 최근 대한항공 사건과 관련,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일반 국민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과 관계기관 등은 지난 2016년 12월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가들에겐 고객 자산을 충실하게 관리해야할 수탁자 책무가 필요한 데, 이를 위한 가이드라인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대형 장기투자자로서 기업가치 향상, 기금 수익 제고를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31조5000억원(6.95%) 수준이다.

기업가치 훼손 기업에 월스트리트룰 적용 어려워 

국민연금 측은 대규모 장기투자로 인해 기업가치 훼손 우려 기업에 대해 월스트리트룰(Wall Street Rule) 적용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월스트리트룰이란 기관투자자들이 기업 경영에 관여해 의결권을 행사하기 보다 해당주식을 매각해 기업을 평가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기업가치 훼손이 우려되는 기업들에 대한 문제해결을 위한 주주활동 이행을 통해 기금 자산 보호와 장기 수익을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독립성과 투명성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초래된 국민연금에 대한 우려와 불신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는 사회적 이견과 기금본부 조직의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주주권행사 시 국내 위탁운용사와 의안분석 자문기관 등의 외부 자원도 활용한다.

독립적인 주주권행사를 위해 가입자 대표 추천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회는 기금본부가 수행하는 중요 주주활동을 승인·점검하도록 국민연금 주주권행사의 독립성을 강화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7개 세부원칙 이행방안을 담은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원칙을 신규로 마련하고, 기존 규정을 개정한다.

7개 원칙은 △수탁자 책임 정책 제정·공개 △이해상충 방지 정책 제정·공개 △투자회사에 대한 주기적 점검 △수탁자 책임 활동지침 마련과 주주활동 수행 △의결권정책 제정·공개, 행사내역 및 사유공개 △의결권행사 및 수탁자 책임이행 활동 주기적 보고 △수탁자 책임의 효과적 이행을 위한 역량과 전문성 확보 등이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주주권행사·책임투자 분리·통합 검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주주권행사와 책임투자 관련 사안을 분리하거나 통합할지 조정 중이다.

국민연금 배당관련 주주활동 프로세스./출처=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기존 의결권전문위를 확대·개편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설치했다"며 "이해상충의 우려가 있어 위원들은 정부 인사를 배제하고, 기금위 소속 기관과 단체 추천 민간 전문가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기금위 산하에 설치되며 14인 이내, 주주권행사와 책임 투자 등 투 트랙 접근을 위해 2개 분과위원회로 구성된다. 자산운용·자산운용평가와 위험관리 담당 법률경제경영금융 관련 분야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책임투자와 관련해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비재무적요소를 점검한다.

주식운용실은 재무요소를 점검해 기업의 경영성과 등을 들여다보고, 책임투자팀은 ESG평가모형에 따라 52개 세부지표에 의거해 기업을 점검하고 평가한다. 단, 기금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할 경우 즉각적인 공개 주주활동도 가능하다.

국민연금, 중점관리사안 선정 기업에 개선 요구 예고

차후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중점관리사안을 선정해 해당 기업과 비공개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 중점관리사안에 선정됐음에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기업의 경우 그 다음해에는 명단을 공개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선 주주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소송도 제기할 수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주주권행사 범위에 관해선 경영참여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경영권참여 해당 여부를 고려해 주주권행사 범위를 고민하고 있다. 또 위탁운용사에게 의결권행사를 위임할지도 검토하고 있다. 과도한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의결권행사 위임이 필요하단 입장과 신중론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시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계획도 운용사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문제 소지가 있다.

주주권행사는 올해 하반기 내 합리적 배당정책을 지향하고, 의결권행사도 사전 공시제로 전환한다. 주주대표소송에 관한 시행 근거와 제기 요건도 마련한다. △횡령·배임 △부당지원행위 △경영진 사익편취 행위 △임원보수 한도 과다 등의 기업 경영 리스크는 중점관리사안에 포함된다. 대한항공 사례처럼 오너리스크가 큰 기업의 경우 국민연금의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손해배상 소송도 기업의 불법적 행위일 경우에 적용되는 근거와 기준을 명문화한다. 현재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와 관련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내년부터는 기업과의 비공개 대화를 확대하고, 의결권 지침 등을 활용해 일반적인 원칙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 발 물러선 사외이사 추천도 기업이 찬성한다면 2020년부터 시행할 수 있다.

박 과장은 "의결권행사 위임 시 위탁운용사의 경우 영업상 이해관계, 의결권이 통일되지 않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관련 금융위 법령 해석은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 등에 문제가 있어 비공개 대화를 진행했으나 개선되지 않을 경우 2020년부터는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할 수 있다. 대화를 거부하거나 개선여지가 없는 경우 다음 단계인 공개중점관리기업 선정, 공개 서한 발송 등으로 강화된다.

국민연금은 이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법령해석이 합법적이라는 견해다. 금융위 법령해석에 따르면 기관투자자의 입장이나 요구사항을 보도자료로 배포하는 등 대외 공포할 경우 회사나 임원에 대한 영향력 행사로 볼 수 없다. 단, 이견이 대립될 경우 광의의 경영참여로 볼 소지는 존재한다. 금융위 법령해석에서는 5%이상 해당 기업 지분 대량보유자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단, 위임장 대결을 주도해 안건을 자신의 의사대로 결의시키겠단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경우엔 경영참여 주주권행사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와 관련한 연차보고서 발간도 추진하고 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찬성·반대 등 의결권 행사 내역과 비율, 주요 반대사유 등을 요약했으며 경영진과의 대화, 서신발송, 주주제안 공개 가능한 유형별 주주활동이 포함된다. 

출처=보건복지부

이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발표안에는 기관투자자와의 공동 협력 부분은 빠져 있다. 주요국의 세부원칙에서 이 항목을 적용하지 않은 국가는 일본이다.

의결권 행사 사전 공시…부작용 존재할수도

전날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공청회에선 폭넓은 의견들이 제시됐다.

토론자로는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박경종 한국투자신탁운용 컴플라이언스실장, 송민경 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 이찬진 변호사, 전삼현 숭실대 교수, 정우용 상장회사협의회 전무, 정용건 연금행동집행위원장,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등이 참석했다.

공청회에선 다양한 의견이 나왔으며 현재 로드맵은 개선할 부분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부 토론 패널은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찬반 사유 사전 공시가 시장에 압박을 줄 수 있어 부작용도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용건 위원장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며 "앞으로 국민들의 집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학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에 유리한게 국민에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해상충문제를 잘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민경 연구원은 "연기금의 손실이 명확히 예상되는데 아무활동도 안하는 것이 더 나쁘다"라며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연금 사회주의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공청회를 개최했다./사진=고영훈 기자

정우용 전무는 "좋은 제도를 들여온다면 기업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 "현재 안은 모호한 면이 많아 기업의 현실에 맞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 공시할 경우 국민연금의 의사를 따라할 가능성이 많아 시장 지침이 될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박경종 실장은 "경영상의 어렵고 민감한 부분을 미공개 대화로 처리될 경우 이와 관련한 처벌을 받으면 업계를 떠나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스럽다"며 주주권행사와 관련해 우려를 나타냈다.

류영재 대표는 "로드맵도 아직 모호하지만 민간 운용사들이 의결권을 행사하기엔 시기상조"란 의견을 냈다. 그는 삼성물산 합병에서 보듯이 대기업 계열 운용사들이 많아 이들에게 의결권을 위임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위원회의 독립성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재무적 활동과 비재무적 활동을 분리해 경영활동을 검토하겠다는 것도 현실과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케이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긍정적"

류 대표는 "전통적인 주주행동주의와 스튜어드십 코드를 잘 구분해야 한다"며 "재무적 리스크와 비재무적 리스크는 동전의 양면으로 폭스바겐과 대한항공의 경우 비재무적 리스크가 재무적 리스크였다"고 진단했다. 이번 도입방안이 무늬만 스튜어드십 코드가 아닌지 스스로 현실감각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케이프투자증권은 이날 경영참여권 미행사, 독립성 문제 등 관련 논란들이 존재하지만, 국민연금의 참여만으로도 상징성이 크다고 밝혔다. 한지영 연구원은 "국내기관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확산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