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내년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기점으로 국내 ICT 전자 업계의 경쟁력이 강해지고 있다. 내수시장은 작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IT 테스트 베드로 여겨지며 많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속속 국내 시장으로 진격하는 중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글로벌 서비스를 편하게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토종 기업들이 역차별 등의 이유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 안드로이드 오토가 국내에 출시됐다. 출처=구글

단독형… 구글, 차이슨, AWS

글로벌 무대를 평정한 후 여세를 몰아 국내 ICT 시장에 진격하는 기업의 대표주자는 구글이다.

구글은 12일 국내에서 한국어가 지원되는 안드로이드 오토를 전격 출시했다. 안드로이드 오토는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차량을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과 연결해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지원함으로써 편리한 주행 경험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파트너인 현대기아차와 협력해 강력한 플랫폼 인프라도 구축했다.

안드로이드 오토는 카 인포테인먼트 업계 재편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완성차에 안드로이드 오토와 호환되는 디스플레이가 깔리는 순간 모바일 이상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없는 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자동차의 만남은 자동차에 탑승하는 운전사가 굳이 스마트폰을 작동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국내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안드로이드와 내수 자동차 시장의 왕인 현대기아차의 협력에 SK텔레콤이나 KT, 네이버 등이 긴장하는 이유다. 이들은 모바일 운영체제가 없는 상태에서 통신사 인프라로 자율주행차 시장을 노리거나, ICT 플랫폼 인프라를 통해 출사표를 던진 사례다. 스마트폰과 자동차의 연결고리인 운영체제도 없고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하지도 못했다.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가 순식간에 국내 카 인포테인먼트 시장을 장악한 후 ‘자동차 내부에서 스마트폰을 밀어내는 현상’을 구현한다면, 초연결 아웃도어 전략의 첫걸음부터 휘청거릴 가능성이 높다.

구글의 유튜브는 이미 국내 시장을 평정했다. 국내 안드로이드 유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이다. 모바일 앱 조사업체인 와이즈앱에 따르면 국내 안드로이드 사용자의 유튜브 이용시간은 2016년 79억분에서 올해 257억분으로 급등했다. 시장 점유율도 상승세다. 디지털 마케팅 전문회사 메조미디어에 따르면 지난해 유튜브는 국내 동영상 서비스 시장에서 38.4%의 점유율을 자랑했으며, 11.2%의 네이버와 8.3%의 카카오를 압도했다. 최근에는 국내 포털 사업자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구글은 최근 구글 뉴스를 업데이트했으며 구글 쇼핑을 통해 이커머스 시장까지 타진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인공지능 스피커인 구글홈 한국어 버전을 정식 출시할 예정이다.

중국의 차이슨도 국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디베아가 만든 무선 청소기 브랜드인 차이슨은 최근 중국 직구(직접구매) 돌풍의 중심에서 저가 무선청소기를 내세우며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가격은 다이슨의 10%에 불과하지만 기능은 상당 수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슨은 중국을 뜻하는 차이나와 청소기 명가 다이슨의 합성어며, 국내 네티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아마존은 이커머스가 국내 시장에 진입하지 않았으나, 클라우드인 AWS는 활동하고 있다. 국내 민간시장에서 빠르게 외연을 확장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공공 클라우드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이 시장의 절대강자인 KT가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 애플뮤직은 LG유플러스와 손을 잡았다. 출처=LG유플러스

길라잡이형… ‘LG 땡큐’

구글과 차이슨이 자기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한다면,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OTT 서비스 넷플릭스, 애플의 애플 뮤직 등은 국내에서 훌륭한 파트너를 발굴해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훌륭한 파트너, 길라잡이는 LG유플러스다. LG유플러스는 5G 통신장비시장에서 화웨이의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LG(주)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 권영수 전 LG유플러스 부회장이 공식적으로 화웨이 장비를 활용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4G에 이어 5G에도 국내 통신업계에는 화웨이 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가 12일 3.5GHz 대역 주파수 장비를 전격 공개하며 화웨이 운신의 폭은 좁아졌지만, 화웨이는 LG유플러스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국내 5G 통신장비시장의 중요한 플레이어가 될 전망이다.

넷플릭스의 길라잡이도 LG유플러스다. LG유플러스는 진정한 무제한 요금제를 통해 국내 이동통신시장 공략에 나서는 한편 IPTV에서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진출을 시도할 때 현지 시장 1위가 아닌, 2위나 3위 사업자와 손을 잡고 협상력을 끌어올린다.

국내 콘텐츠 업계는 우려하는 중이다. 한국방송협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글로벌 미디어 공룡이라 불리는 넷플릭스가 국내 진출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미디어 시장을 장악하고자 시도해 왔지만, 지상파 방송은 유료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산업계 전체와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상생의 미디어 생태계를 적절하게 보호해 올 수 있었다”면서도 “최근 LG유플러스가 불합리한 조건으로 넷플릭스와 제휴하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미디어 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한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애플 뮤직도 LG유플러스와 손을 잡았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부터 애플 뮤직과 협력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신규광고를 공개하는 한편, 5개월 무료 체험 혜택에 안드로이드 고객까지 포함하는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음원 콘텐츠 확보에 대한 열망으로 풀이되지만 ‘지나친 행보’라는 지적이다. KT의 지니뮤직 2대 주주로 활동하며 타사 서비스에 힘을 실어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단독 경쟁력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나, 인공지능 저변확대 측면에서는 LG전자와 협력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LG V30S 씽큐에 구글 어시스턴트 한국어 버전이 삽입된 대목이 단적인 사례다. LG전자는 구글은 물론 아마존과 적극 협력해 자기 가전제품에 타사 인공지능을 탑재하는 것에 적극적이다.

▲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공략이 빨라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주춤주춤형

모든 글로벌 ICT 전자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하는 것은 아니다. 규제에 막혀 힘을 쓰지 못하는 곳도 있다.

글로벌 모빌리티 플랫폼 우버가 대표적이다. 우버는 한때 국내 시장 정식 진출을 타진했으나 택시업계의 반발에 밀려 우버택시를 출시하지 못했다. 대신 우버이츠, 우버풀 등 파생 서비스를 중심으로 조금씩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우버의 우버택시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국내 카풀 서비스 업체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카풀 서비스 1위 업체인 풀러스는 최근 김태호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한편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또 다른 강자 럭시는 카카오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기울어진 운동장… 스스로도 돌아봐야

글로벌 기업들의 무차별적인 국내 시장 공략은 분명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토종 기업의 기본 인프라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특히 과도한 혜택이 문제가 된다. 유튜브는 각 통신사의 캐시서버를 통해 무임승차 논란이 불거지고 있으며, 외국계 유한기업이라 세금 포탈 논란도 여전하다. 캐시서버의 경우 국내 통신사들이 ‘알아서 혜택을 준 사례’이기 때문에 이견의 여지가 있으나, 유한기업이라는 이유로 세금 포탈 사각지대에서 정부 당국의 규제를 피하는 장면은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망 사용료와 관련된 논란도 꾸준하게 나온다.

길잡이형 국내 시장 진출 사례도 설왕설래다. LG전자와 LG유플러스가 다양한 기업들과 협력해 자체 플랫폼을 키우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보여주고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플랫폼 종속 우려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국내 시장 잠식의 ‘앞잡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명현 GGLS 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차이슨의 사례처럼 낮은 가격에 큰 성능 기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을 노리는 틈새시장은 국내 시장에 미치는 여파도 낮을 것”이라면서 “문제는 국내 기업과 협력해 시장에 진입하는 거대 기업이다. 이들은 시작부터 플랫폼 종속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국내 업계에서 유의미한 분석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국 기업을 무조건 배척하고 엄격한 규제의 잣대로만 일관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넷플릭스는 국내 콘텐츠 업계의 타격이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콘텐츠 업계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메기효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에서 견고한 카르텔을 구축한 이들이 의도적으로 외국 기업을 밀어내는 현상은 배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