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고층빌딩들이 내려다보이는 뉴욕 외곽의 언덕에 자리 잡은 공동묘지. 두 명의 범죄수사관들이 살인사건 단서를 찾기 위해 공동묘지를 방문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한 명이 맨해튼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이런 곳에 묻히고 싶다고 하자 다른 수사관이 코웃음을 친다.

죽으면 아무리 좋은 전경이라도 볼 수도 없는데 굳이 이런 곳에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돈이면 대학에 곧 입학할 딸아이의 학자금으로 쓰거나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저축하겠다는 주장에 다른 수사관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나고 자란 뉴욕시의 공동묘지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기 위한 비용은 얼마나 되길래 차라리 자녀 학자금으로 쓰고 자신은 화장을 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지난 2013년 사망한 전 뉴욕시장인 에드 코크는 이보다 5년 앞선 2008년 2만달러의 비용을 내고 자신이 묻힐 맨해튼의 트리니티 교회의 묘지를 사들였다.

시장을 지낸 뉴욕에서 떠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면서 기꺼이 2만달러를 낸다고 했다. 당시에는 죽은 후의 묘지를 위해 이렇게 비싼 비용을 내는 것에 의아해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 맨해튼 트리니티 교회의 묘지는 이 가격으로는 구매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아예 매장을 할 공간이 없어서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뉴욕시의 5개 지역인 맨해튼, 퀸즈, 브루클린, 스태튼 아일랜드, 브롱스 내의 묘지들은 사실 새로운 ‘입주자’들을 받아들일 공간이 거의 없다.

1831년 매사추세츠의 보스턴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공동묘지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했고, 뉴욕시에서는 1838년 그린우드 묘지가 선을 보이면서 교회 등이 비과세로 땅을 사들여서 묘지를 만들 수 있게 했다.

브루클린에 있는 478에이커(약 58만평) 규모의 그린우드 묘지는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자리가 채워져가서, 2016년 기준으로 묘지가 만들어질 수 있는 빈 공간이 불과 3~4에이커에 불과하다.

맨해튼의 공동묘지들은 가장 인기가 높고 수요가 높아서 사실상 빈 공간이 아예 없는 상태다.

그 다음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 브루클린인데 이는 산 사람들의 부동산 시장과도 유사하다. 맨해튼의 인기 이후 브루클린이 예술가들의 독특한 문화와 분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끝없이 인기를 얻으면서, 브루클린의 묘지 가격은 지난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4년간 무려 40%나 뛰어올랐다.

그린우드 묘지의 1명을 매장할 수 있는 면적의 가격은 1만9000달러(한화 약 2143만원)부터 시작한다.

이 가격은 시신이 매장될 위치의 기본 가격으로 만일 볕이 조금 더 잘 들거나 언덕 위라거나 하는 등의 좋은 ‘위치’를 선택하면 그 가격은 끝없이 올라간다.

단순히 묘비만 세우지 않고 한국의 왕릉처럼 묘지 앞에 석상을 세우거나 제단을 만드는 등을 할 수 있는 능 형식의 가격은 천차만별인데,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에 있는 마블묘지의 경우 1곳의 능 가격이 35만달러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능은 차고 1개 정도의 크기인데 VIP를 대상으로 예약이 가능하고 실제로 구매 가격은 공개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부 부유층의 경우 막대한 비용을 내고 피라미드를 본뜬 능과 스핑크스, 천사상 등을 무덤 앞에 세워놓기도 한다.

부유층에 밀린 가난한 사람들 혹은 중산층은 자신들의 고향인 뉴욕이 아닌 먼 외곽지역에 묘지를 만들거나 아예 화장을 해야 한다.

매장 비용이 이렇게 비싼 것은 뉴욕 시내에 묘지가 부족하기 때문인데 뉴욕 시내에 묘지가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것이 지난 1980년으로, 40여년 가까이 새로운 공급이 없었다.

매장이 이뤄진 공간을 묘지 측이 다시 활용하기 위해서는 매장된 사람의 가족들로부터 75년간 어떠한 종류의 연락도 닿지 않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그럴 경우 매장 공간을 묘지 측에서 재수용해서 판매하거나 이용할 수 있다.

때문에 신규 공급은 없고 재수용되는 공간도 부족하다 보니, 부유층이 아닌 경우 맨해튼에서 계속 밀려나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브롱스나 스테튼 아일랜드로 묘지를 정하거나 아예 화장이라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