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earing 80-5, 118×89㎝, Mixed Media on Cloth, 1980

박철 작가(ARTIST PARK CHUL,한지작가 박철)는 거의 豫期치 않은 이미지化를 試圖한 셈이고 이것을 「찍는다」는 「活動」속에서 펼쳐 보이려 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때의 ‘豫期치 않은’ 이미지化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이미지화는 원래 意識的이고 따라서 意志的이미지의 表象性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편 박철 한지작가는 實驗的 行爲에 까지는 나가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 이유는 単位패턴의 철저한 意識性이 말해준다. 분명히 '화가 박철'에는 行動主義的 操作活動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의 마음은 작품의 表面을 감싸면서 다시 마음속으로 되돌아오는 순환운동을 할 뿐이다.

▲ Tearing 81-7, 60×60㎝, Mixed Media on Cloth, 1981

그래서 떠오르는 것은 그의 마음활동 안에서이며, 이것을 밖으로 投象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朴哲(PARK CHUL,박철 화백)의 모든 이미지 패턴은 意識속에 잠겨있으면서 浮動하는 모습을 띈다. 이것이 어떻게 그의 패턴의 「形態」가 偶然스럽게 정확히 말해 豫期치 않은 가운데에 進行되었는지를 말해준다.

이로보아 朴哲(박철 화가)의 「찍기」는 이미지의 問題에 關聯되어 있음이 들어난다. 그리고 그가 이것을 보다 豫期치 않은 角度에서 試圖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은 하나의 作家的 葛藤때문이라고 보여진다.

表面의 無限한 情感과 意味關與가 보다 强力해 질 수 있는 다음 段階의 조치와 아울러 어떻게 豫期치 않은 作業의 意識的 試圖를 擴張하여 意識의 外部의 영역으로 딛고 나갈 수 있는지의 考慮가 朴哲(한지화가 박철, HANJI ARTIST)에게 주어진 課題라고 믿어진다.

△글=김복영,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