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ndow-Tearing78-3, 115×115㎝, Mixed Media on Cloth, 1978

한사람의 作家와 作品을 깊이 모르면서 그저 皮相的으로 말한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대단히 섭섭함을 끼치는 것이 될 것 같다. 더욱이는 이 젊은 '화가 박철'이 첫 個人展을 가지면서 그간의 행보를 보이려 할 즈음, 무엇보다 自己에게 대해 스스로 確認하려는 苦心을 안고 있는 박철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박철 작가(朴哲, ARTIST PARK CHUL,HANJI ARTIST)가 나에게 말해 준 것은 ‘때 묻은 유리의 表面이 빗물에 찍히고 씻겨 흩날려 얼룩진 패턴의 이미지를 再現해 보려고 하였다’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채택된 기법으로서 찍기와 이에 사용된 화선지와 천, 이러한 주변들에 대하여 가능한 한, 記述해 보이겠다.

이 한지작가 박철의 「찍기」법은 분명히 유리의 얼룩의 이미지化에 잘 들어맞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나타난 패턴의 単位들과 이들의 集合的 全体가 보이는 「形態」는 처음의 의도에서 기대했던 것보다는 한층 많은 이야기를 품어갖고 있다.

単位패턴의 大小関係와, 位置나 距離関係가 주는 印象과, 竝列방법에 의한 平面性은 모두 무엇의 이미지화를 위해 기여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이미지形成의 第二段階가 나타나는 바 表面의 한 意味関與性이 그것이다.

単位들은 크고 작고간에 모두 어떤 이야기 속에서 자기의 役割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狀態의 본질은 적절히 말해서 作品의 表面感情이고, 이것이 애초에 '한지화가 박철'이 노렸던 事態와는 다른, 대단히 먼 거리의 것으로 생각되게 하는 要諦이다.

박철 화가(PARK CHUL,박철 화백)는 이러한 사태의 表情을 처음에는 유리表面에서 은밀히 感知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의 상태는 그러한 처음을 조금도 나타내 주지 않고 있다.

△글=김복영,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