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내년 최저임금이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나면서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분통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서로 자기들이 생각한 수준의 최저임금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건 현 정부는 일종의 속도조절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일선 소상공인들은 ‘망연자실’에 가까운 분노를 터트리고 있습니다. 노동계는 ‘실망스럽다’는 불만입니다.

 

결국 편의점주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초기 동맹휴업이나 심야영업 중단, 심야 가격할증 가능성까지 내비쳤으나 본사와의 계약 문제 등으로 현실성이 없다는 판단이 선 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하는 쪽으로 투쟁의 가닥을 잡는 모양새입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16일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일종의 배수진을 쳤습니다.

을과 을의 눈물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며 그와 비례해 사회 갈등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인상될 경우 종업원 숫자를 줄여 비용을 아껴야 할 판이라는 편의점주들의 ‘절규’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진지한 경청과 별도로, 다른 각도의 분석도 필요합니다. 편의점주의 시각으로 봅시다. 각종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장사는 잘 되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높은 임대료와 본사로 보내야 하는 로열티(Royalty) 비용만으로 허덕이는데 이제 종업원 임금까지 올려야 한다니 분노를 터트리지 않으면 이상합니다.

문제는 ‘높은 임대료와 본사로 보내야 하는 로열티(Royalty) 비용만으로 허덕이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편의점주들은 편의점 사업을 할 때부터 많은 리스크를 감내해야 합니다. 조물주 위 건물주에게 높은 임대료를 내야 하며 본사와 계약하며 막대한 로열티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편의점주들이 최저임금인상에서 분노하는 이유는 높은 임대료와 로열티 비용은 ‘해결할 수 없는 고난의 운명’처럼 받아들이면서 ‘당장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종업원 임금의 기본급이 올라가는 것’에 절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상승 문제에 천착하지 말고 구조적인 불합리함에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과도한 편의점 숫자에 따른 불필요한 출혈경쟁. 1989년 5월6일 한국 최초의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올림픽점이 문을 연 후 올해 3월 전국 편의점 숫자는 4만192개를 돌파했습니다. 2001년 3000개 수준이던 전국 편의점 숫자가 4년만에 1만개를 넘기는 것이 정상적인 현상일까요? 편의점 천국이라는 일본은 인구 2200명당 1개의 편의점이 있지만, 한국은 1300명당 1개씩 있습니다. 별도의 상권분석도 없이 수익을 위해 무차별 창업을 끌어낸 편의점 프랜차이즈 본사의 책임론이 불거져야 합니다.

높은 임대료도 문제입니다. 국내는 지나치게 건물주의 권리만 보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비롯해 프랑스, 영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임대차 계약을 자동으로 갱신하거나 장기계약을 유도합니다. 임대료를 올릴때도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점포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을 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담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국회의 무신경에 본회의에 잠들어 있습니다. 2016년 7건, 2017년 11건, 2018년 6건의 관련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는 단 한 번도 진지한 논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 ‘궁중족발사건’을 천천히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로열티 비용도 따져봐야 합니다. 본사와 점주의 공식 계약에 따라 체결된다지만, 본사는 임대료와 종업원 임금 리스크에 대해 1%의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점주는 매출이 높을수록 더 많은 로열티 비용을 제공할 뿐입니다. 그나마 이마트24가 정액제에 기반해 상생에 가까운 로열티 비용 책정에 나선다고 합니다.

▲ 지난 3월 택시기사들의 카풀 서비스 반대 토론회 현장.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구조의 문제...누가 싸움을 방조하나

최저임금인상 논의는 느닷없이 편의점주와 종업원의 신경전으로 번지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본질인 구조 문제를 봐야합니다. 최저임금인상이 점주들에게 타격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거대한 구조적 불합리함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편의점주와 종업원 모두 ‘을(乙)’입니다. 누가 을과을의 싸움을 붙이고 있을까요?

택시기사들과 카카오를 비롯한 모빌리티 기업, 그리고 풀러스와 럭시와 같은 카풀 업체들이 벌인 ‘설전’이 오버랩됩니다. 법률 문제는 제쳐놓고 이들의 전투는 점주와 종업원의 싸움과 비슷합니다. 을과 을의 싸움이라는 프레임보다 ‘눈 앞의 변화에 분노하며 구조적인 불합리함을 보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장면입니다.

택시기사들은 카카오택시의 스마트호출을 두고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풀러스와 럭시같은 카풀 업체들에게는 강한 적대감까지 보였습니다. 새로운 ICT 기술력이 택시기사들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택시기사들의 분노와 적대감은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큰 그림으로 본다면 구조 문제를 먼저 파고들어야 합니다. 살인적인 사납금, 잠깐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노동시간. 택시기사들이 손님을 골라 태우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들입니다. 이러한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무작정 새로운 ICT 기술에 대한 분노만 터트린다면 남은 것은 ‘공멸’밖에 없습니다.

각 계에서 벌어지는 ‘슬픈전쟁’을 부추기는 자들이 진짜 범인입니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혹은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과거의 주장까지 손바닥 뒤집듯 안면을 바꾸는 이들을 먼저 잡아내야 합니다. 상호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뻔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의 현상으로만 이야기를 하면 잡음만 벌어질 뿐입니다. 시스템, 구조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