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이 가진 생태계, 인프라, 경쟁력을 외부의 파트너와 공유해 제3의 시너지를 내는 개념이다. 단순한 협업과는 다르다. 기계적인 만남이 한순간의 효과를 창출하며 제한적인 영역을 보여준다면 오픈 이노베이션은 말 그대로 생태계와 생태계, 플랫폼과 플랫폼의 화학적 결합을 의미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IT 플랫폼 생태계의 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두 가지 측면이다. 먼저 IT 기술의 발전이 시공간을 초월하며 벌어진 나비효과다. 소니의 워크맨 등장 후 많은 IT 기업들은 생활밀착형 멀티미디어 서비스에 방점을 찍으며 일종의 멀티태스킹 전략을 구사했다. 과거에는 음악을 감상할 때 LP판을 준비해 작정하고 음악만 들었다면, 소니의 워크맨은 음악을 듣는 행위와 걷는 행위를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며 정보는 빠르게 확산되고 재생산을 거쳤으며, 자연스럽게 시공간의 한계도 더욱 빠르게 무너졌다. 하나의 소비자는 하나의 산업영역에서만 만족하지 못했고 그 결과 기업들은 복잡다변해지는 소비자의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에 걸맞은 경쟁력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IT 기술이 시대를 관통하는 트렌드가 되며, 비 IT 영역의 기업들이 속속 IT 기업의 방식을 차용한 대목도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플랫폼 전략이다. IT 기업들은 전통적인 시장 등에서 차용한 플랫폼 모델을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풀었으며, 이 과정에서 철저한 생태계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중앙 집중형 기업들이 속속 탈중앙화 플랫폼 생태계 기업으로 거듭난 결정적인 계기는, IT 기업들이 보여준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한 것들이 많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부터 테슬라까지

구글의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설명할 때 단골처럼 거론된다. 안드로이드의 기반 자체가 철저한 오픈형 생태계를 지향하는 리눅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안드로이드는 2007년 11월 처음 공개됐으며, 시작부터 완벽한 개방형 생태계를 지향했다. 안드로이드는 개발자들이 자바언어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컴파일된 바이트코드를 구동할 수 있는 런타임 라이브러리까지 제공한다.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제공하는 한편 응용 프로그램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까지 지원한다.

최근 국내에 출시된 안드로이드 오토처럼, 구글은 모든 IT 플랫폼 산업을 철저하게 오픈 이노베이션의 측면으로 풀어낸다. 안드로이드 오토가 카카오 모빌리티와 협력하는 것은 정밀지도 반출이 어려운 상태에서 내린 고육책이지만, 현대 기아차와 협력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만남으로 풀이된다. 구글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각지에 구글 캠퍼스를 설립해 현지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한편, 이들을 안드로이드 생태계 산업역군으로 키우는 중이다. 중국 베이징에 마련한 인공지능 허브도 큰 틀에서 생태계의 저력을 믿는 구글의 오픈 이노베이션 로드맵 중 하나다.

▲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 출처=구글

만약 구글이 혼자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운영했다면 지금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다는 게 중론이다. ATL 경영리더십연구소의 박영일 소장은 <이코노믹리뷰>에 “들판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누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거대하고 아름다운 숲이 탄생한다”면서 “구글은 하나의 플랫폼, 즉 들판을 제공하며 비와 바람을 불러 안드로이드를 발전시켰기에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LG전자도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요한 사례를 보여준다. 구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하드웨어 동맹의 일원이자, 최근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전략을 구사하며 구글은 물론 아마존 등 다양한 기업들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 LG전자는 이미 많은 가전제품에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의 알렉사가 연동되는 기술을 보여줬다. 자체 인공지능 전략을 꾸준히 펼치면서 파트너의 인공지능 경쟁력을 가감 없이 빨아들이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정석이다.

스마트폰 전략에서 LG전자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더욱 빛을 발한다. 구글은 올해 구글 어시스턴트 한국어 버전을 출시하며 LG전자의 LG V30S 씽큐에 처음 탑재했다. 구글 안드로이드 생태계 확장을 원하는 구글과, 스마트폰의 기능 향상을 원하는 LG전자가 오픈 이노베이션의 틀에서 극적으로 만나는 장면이다.

네이버의 기술기반 플랫폼 전략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해 취임과 동시에 스몰 비즈니스와 기술기반 플랫폼 전략을 화두로 제시했다. 특히 기술기반 플랫폼은 안드로이드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과 비슷하다. 강력한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해 플랫폼에 올리면, 다양한 서드파티들이 몰려와 기술의 발전과 확장을 꾀하도록 만드는 전술이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지난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네이버의 새로운 리더십도 기업의 투명성, 공정성을 말해주는 것”이라면서 “투명한 경영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기술 기반 플랫폼 기업의 비전을 추구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공정한 플랫폼을 지향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술기반 플랫폼 전략으로 거대한 생태계를 조성, 이를 플랫폼 공공성에도 투영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네덜란드의 필립스도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화두로 삼았다. 필립스는 전자회사로만 널리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변신을 거듭하며 천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필립스의 역사가 말해준다. 1891년 탄소 전구 제조업체로 출발한 필립스는 1927년 라디오, 1950년에는 TV까지 제조했다. 1979년에는 콘텐트디스크 개발에 나서기도 했으며 1997년에는 DVD를 제작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자기업 필립스의 이미지는 당시에 만들어진 셈이다. 반전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2005년에는 의료영상정보 분야에서 세계 2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2006년 휴대전화와 오디오 등 대부분의 사업을 구조조정하며 새로운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TV 사업에서 철수하고 2013년 로열필립스로 사명을 변경하는 한편 2016년, 조명사업부를 독립 법인으로 분리했다. 인공지능과 결합된 헬스케어 시장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필립스의 행보는 오픈 이노베이션 그 자체다. 다양한 사업자들과 연합해 시대에 맞는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필립스는 지난 6월 롯데백화점 본점 8층 더 웨이브 존에 필립스 이노베이션 하우스까지 공개하며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공개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는 독특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추구한다. 치열한 연구개발을 통해 끌어낸 특허를 업계에 무료로 풀었다. 회사의 자산으로 볼 수 있는 특허를 아무 대가 없이 시장에 공개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전기차 업계의 성장이 곧 테슬라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한편,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도 있다. 전통의 라이벌 인텔과 AMD의 만남, 구글과 시스코가 손을 잡은 게 대표적이다.

반도체 업계의 강자인 인텔과 AMD는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대두하기 시작한 엔비디아에 맞서기 위해 합종연횡을 맺었고, 구글과 시스코는 아마존 AWS의 클라우드 경쟁력에 대항하기 위해 진영을 가다듬고 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의 인공지능 동맹도 눈길을 끈다. 인공지능 알렉사와 코타나를 통합해 알렉사에서는 코타나를, 코타나에서는 알렉사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협력했다. 아마존이 알렉사 에브리웨어를 통해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을 묶은 상태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반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구글과 세일즈포스도 손을 잡았다. 클라우드 분야에서 함께 힘을 키워 서비스 인프라를 키우겠다는 의도다.

글로벌 모빌리티에서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일종의 공식처럼 작동한다. 소프트뱅크가 우버와 만났고, 소프트뱅크의 손을 잡은 미국의 리프트는 알파벳 웨이모와 협력하고 있다. 리프트는 공유자전거 업계에도 손을 뻗고 있다. 모티베이트 인수가 눈길을 끈다. 모티베이트는 미국 최대 공유 자전거 업체이며 뉴욕 등 6개 도시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모티베이트는 리프트에 인수한 후에도 독립경영 체제를 유지할 전망이며 리프트는 모빌리티 전 영역에 공유 플랫폼을 녹여낸다는 각오다. 자율주행차 부분에서는 ICT 기업과 완성차 업체의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부품과 소재 분야의 강자인 일본은 최근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전략을 세우며 통섭과 화학적 시너지를 화두로 세웠다. 소프트뱅크가 주관하는 소프트뱅크 월드 2018처럼 다양한 기업들이 모여 각자의 경쟁력을 공유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최근 일본의 스타트업들은 내수시장을 넘어 동남아시아 시장을 타깃으로 삼아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다양한 스타트업들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독려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IT와 상호보완 관계

오픈 이노베이션은 IT 기술의 발전으로 시공간의 한계가 사라지고, IT 기업의 플랫폼 전략이 시대를 관통했기에 가능하다. 앞으로 비슷한 전략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도전자’인 중소기업도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일반 방식으로는 기존 시장의 질서를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연구원 김희선 연구위원은 “2016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 5만7000개 중 자체 단독 개발 비중은 87%, 외부로의 기술도입 비중은 13% 수준에 그쳤다”면서 “중소기업의 역량강화를 위해 내외부 자원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