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개방형 혁신)이 다시 전 산업계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제약과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R&D)에서부터 자동차산업 제조분야에 이르기까지 업종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오픈 이노베이션은 광범위하게 추진되고 있다.

2003년 미국 버클리 대학의 헨리 체스브로 교수(Henry Chesbrough)가 제안한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 내외부로 흐르는 지식의 흐름을 적절히 활용해 기업 내부 혁신을 가속화하는 한편 내부 보유 역량을 활용해 시장 확대를 추진하는 혁신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신제품을 기획, 개발하고 생산하기 위한 기술 혁신 과정에서 외부 기술을 획득해 이를 내재화하고 신규 제품과 서비스를 가속화며,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외부로 떼어내 신규 사업화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 빛을 본 지 15년 지난 시점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비즈니스 환경 변화다.

▲ 오픈 이노베이션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DB

다시 말해 고객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신제품과 서비스 출시 주기가 점점 빨라지면서 전통 프로세스로는 아이디어의 발굴과 기획을 신속하게 할 수 없는 데다, 연구개발과 핵심기술 간의 융복합, 온프라인 연계,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와 같은 신기술이 쓰이는 시대의 변화다. 변화무쌍한 고객의 수요, 기술발전과 제품개발을 단일 기업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때 글로벌 전자업계를 지배했던 IBM은 폐쇄형 혁신(Closed Innovation)을 추구했다가 2000년대 초 이노베이션 잼(Innovation Jam)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내외부의 집단지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선회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강력한 시장 장악력을 바탕으로 IBM 내부에서 끌어낼 수 있는 혁신에 집중해 성과를 냈지만 인터넷의 발전과 초연결 인프라의 등장으로 내부의 성과에 집중해 경쟁력을 배가시키는 전략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기업은 보안 등 다양한 이유로 폐쇄형 혁신에 집중하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수용한 셈이다. 하나의 조직이 추구할 수 있는 경쟁력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으며, 이제 하나의 업종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시대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처음에는 아웃소싱(Outsourcing)으로 눈을 돌렸다. 업무의 일부를 제3자에게 위탁해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조직이 창출할 수 있는 경쟁력은 간신히 ‘플러스 알파’로 나아가게 됐다. 제조기업은 제조기술에 집중하면서 제품의 포장을 아웃소싱으로 처리해 선택과 집중을 단행했다. 초연결 시대는 기업의 선택과 집중의 범위 자체를 넓혀버렸다. 아웃소싱은 원청과 하청의 구조, 즉 ‘갑을관계’에 가깝다. 아웃소싱을 통해 원청의 경쟁력은 선택과 집중을 선택할 수 있었으나 모든 산업이 하나로 연결해 돌아가는 최근의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렵게 됐다.

아웃소싱이 주로 비용의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활용된 것도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다. 하청업체는 상품의 포장만 신경 쓸 뿐, 제품이 어떻게 팔리고 어떤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시대가 도래한 이유다. 이제 원청과 하청, 갑과 을이 아닌 동등한 파트너들이 모여 복잡하게 연결된 산업구조를 이해하고 돌파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단기 만남이 아니라 장기 관점에서 서로의 생태계를 연결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국의 간판기업 현대·기아자동차가 국내외 ICT기업과 손을 맞잡고 제약회사 광동제약이 바이오벤처 비트로시스와 공동연구를 하는 것은 좋은 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형마트의 경쟁자는 동물원과 공연장이 되고 PC방의 경쟁자는 노트북을 콘센트에 연결해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스타벅스가 됐다. 경쟁의 고차 방정식이 복잡해지며 대응하고 준비해야 할 인프라도 변화무쌍해졌다. 이제 세상은 오픈 이노베이션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