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자동차 산업은 ‘운명의 한 주’가 다가왔다. 수입 자동차와 부품에 고율 관세 부과를 추진하는 미국 정부 공청회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정부와 업계는 이미 서면으로 관세 부과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미국 현지에 민관합동 사절단을 파견해 협상 테이블에서 결전을 치를 전망이다.

국내 완성차업계는 무역전쟁을 피해 인도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신흥국 가운데 인도 자동차시장은 상반기에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6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민관합동 사절단은 오는 19~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관련 상무부 공청회 참석을 위해 출국을 준비하고 있다. 사절단은 이르면 이날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관합동 사절단은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필두로 강성천 통상차관보,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한진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등으로 구성됐다. 김용근 회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신임 상근부회장으로 선임됐지만 사안이 중대한 만큼 미국 출장을 다녀온 후 경총에 합류하기로 했다.

사절단은 이번 공청회에서 우리 기업들의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기여 등을 강조하며 협상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경제 창출과 관련해서는 현대차 현지 공장 직원과 전장 부품을 공급하는 LG전자 현지 직원이 공청회에서 발언을 신청해둔 상태다.

국내 자동차협회 고위 관계자는 “사절단은 이미 서면으로 낸 내용보다, 현지에서 우리의 자동차 산업의 역할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미국 현지 여론을 움직일 수 있을 접근 방식을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사절단은 공청회 참석 외에도 현지 여론을 끌어들일 대미(對美) 아웃리치도 전개할 방침이다. 사절단은 미국 정부 관계자와 현대기아차 공장이 있는 앨라배마와 조지아주 의원, 통상담당 연방의원, 자동차 관련 단체 등을 만날 계획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오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1차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에서 “미국 측 의사 결정 관련 핵심인사를 만나 한국에 232조 조치가 적용되지 않도록 설득할 것”이라면서 “철저히 실리에 바탕을 두고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미·중 무역분쟁은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  “글로벌 자유무역의 퇴조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개방형 경제로 성장해 온 국가들에게는 구조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동차 업계는 이번 공청회가 미국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고 내다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무역확장법 232조 관련 조사는 3~4주 이내에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나 다음 주 내로 트럼프 정부의 결론을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자동차와 부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자동차와 관련 부품은 한국의 대미 수출품 중 1위 품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1.4%와 8.3%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는 84만5000여대로, 전 세계에 수출한 자동차(253만대)의 3분의 1에 이른다. 지난해 완성차 업체별 대미 수출 물량은 현대차 30만6935대, 기아차 28만4070대, 한국GM 13만1112대, 르노삼성 12만3202대 등이다. 지난해 미국의 승용차 판매 중 멕시코에서 수입된 차가 11%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독일과 한국이 그 뒤를 이었다.

▲ 대미 자동차 수출량. 자료=한국자동차산업협회. (단위: 대)

국내 완성차, 美 관세 피해 인도 시장 개척나서

무역전쟁으로 큰 피해를 전망하는 국내 완성차 업계는 신흥시장인 인도를 적극 개척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1998년부터 인도 남부 첸나이에 공장을 짓고 현지생산을 시작했다. 현대차는 202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현재 2위인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순방에도 동행한 현대차는 북미와 유럽에 이어 인도에 권역본부를 세웠고 생산규모도 현재 70만대에서 75만대까지 늘린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지난해 인도에서 52만7320대를 판매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27만5136대를 팔아 새로운 판매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특히 6월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8%가 늘었다.

기아차는 현재 인도 현지에 공장을 짓는 등 인도 시장 점유에 본격 나섰다. 인도 아난타푸르에 짓고 있는 기아차 공장은 내년 하반기 완공할 예정이다. 이 공장은 연간 30만 대의 차량을 생산한다. 기아차는 지난 2월, 델리 모터쇼에서 소형 SUV인 ‘SP’ 콘셉트카를 세계최초로 공개하고 현지생산 계획을 밝혔다.

인도 마힌드라 그룹이 최대주주인 쌍용자동차도 주력 모델인 G4렉스턴을 지난달 인도에 처음 선적했다. CKD방식(현지 조립생산)으로 생산되는 G4렉스턴은 올 하반기 출시된다. 소형 SUV 티볼리도 인도형 티볼리로 재탄생할 전망이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인도 시장은 높은 성장세에도 생산능력 한계 탓에 시장 점유율이 정체된 상황”이라면서 “현지 생산공장 건설과 물량 투입으로 높은 성장세가 기대되다”고 진단했다. 올해 상반기 인도 자동차 판매는 173만500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3%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