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내년 5G 상용화를 앞두고 국내 통신장비 시장에서 본격적인 신경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주력인 3.5GHz 대역 주파수 장비 시장에서 깜짝 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각 통신사들의 장비 발주를 비롯해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통신3사 최고경영자(CEO)와의 회동도 계획된 가운데, 국내 5G 통신장비 시장 쟁탈전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 삼성전자가 5G 3.5GHz 대역 장비를 공개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삼성 3.5GHz 대역 장비 전격 공개
삼성전자는 지난 13일 3GPP 국제 표준 기반의 3.5GHz 대역 5G 기지국 장비를 전격 공개했다. 삼성전자가 28GHz 대역 장비 시장에서 경쟁자를 앞지르는 행보를 보이였으나 3.5GHz 대역 장비에서는 지금까지 별다른 포트폴리오를 내놓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종의 깜짝 이벤트로 평가된다. 삼성이 공개한 장비는 국제 표준 기반 제품 중 가장 작은 크기를 자랑하며 소프트웨어 개발과 최적화가 완료되면 즉각 양산에 돌입한다.

5G 장비 시장의 재편이 불가피하다.

현재 5G 장비 시장에서는 중국의 화웨이가 글로벌 시장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지난해 기준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화웨이가 점유율 29.3%로 1위, 스웨덴의 에릭슨이 점유율 23.5%로 2위, 핀란드의 노키아가 점유율 20.6%를 기록해 3위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CDMA 2G 시대부터 글로벌 통신시장을 호령했던 한국은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 통신장비부터 단말기 칩셋을 모두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을 꼽자면 삼성전자도 이름을 올리지만, 삼성전자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4.1%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은 사정이 다르다. 삼성전자가 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화웨이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SK텔레콤과 KT는 LTE 시절 노키아와 에릭슨, 삼성전자의 장비를 활용했으며 LG유플러스만 여기에 화웨이 장비를 일부 도입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강력한 기술 인프라가 있기에 가능한 점유율이지만,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가 통신 3사와 장기간 협업을 하며 구축한 노하우가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5G 주파수 경매가 종료된 후 중국에서 열린 MWC 2018 상하이에서 화웨이가 3.5GHz 대역 주파수 장비를 전격 공개했을 당시, 삼성전자는 28GHz 대역 주파수 장비 포트폴리오는 공개했으나 3.5GHz 대역 장비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화웨이의 5G 공습에 대한 우려가 번지던 당시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경쟁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말까지 나왔으나, 이번 장비 공개로 우려는 순식간에 불식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올해 1월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과 협력해 28GHz 대역 주파수 장비 시장에도 진출했다. 삼성전자는 버라이즌 자체 통신규격인 5GTF(5G Technology Forum) 기반의 통신장비, 가정용 단말기(Customer Premises Equipment), 네트워크 설계 서비스를 공급한다. 두 회사 협력의 핵심인 5G 고정형 무선 엑세스 서비스는 초고속 이동통신서비스를 각 가정까지 무선으로 직접 제공하는 기술이다. 광케이블 매설 공사나 이를 위한 인허가 절차 등이 필요 없으며 수개월까지 걸리던 서비스 준비 시간을 몇 시간으로 단축시키면서도 기가비트(Gigabit) 수준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은 국토가 넓고 주로 주택에 거주해 광케이블을 사용하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전체의 10% 내외에 불과하다. 5G 고정형 무선 엑세스 서비스를 통한 초고속 인터넷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버라이즌 에드 챈(Ed Chan) 최고 기술 설계 담당(Chief Technology Architect)은 “삼성전자와 같은 파트너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마침내 소비자들에게도 5G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미국법인 마크 루이슨(Mark Louison) 네트워크사업담당도 “삼성전자는 버라이즌과 실제 통신 환경에서의 테스트를 미국 전역에서 진행함으로써 5G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5G를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5G 장비 경쟁...변수는?
5G 시대를 맞아 통신사들은 장비 선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특히 화웨이 장비 도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LG유플러스는 노키아 등 다른 제조사는 물론 화웨이와도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최근 "화웨이 장비가 제일 빠르고 성능이 좋다"면서 "이변이 없으면 도입한다"고 말했다. 4G 시절부터 형성된 화웨이와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다. SK텔레콤과 KT는 별다른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5G 주파수를 3.5GHz 대역과 28GHz 대역으로 나눈다면, 국내에서 핵심은 3.5GHz 대역이 꼽힌다. 황금 주파수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전파 속성이 우수한데다 이용기간도 10년이기 때문에 장기 플랜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3.5GHz 대역 장비를 전격 공개하며 통신사들의 고민은 크게 덜어질 전망이다. 화웨이 장비를 사용할 경우 보안 리스크를 이유로 엄청난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지만,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3.5GHz 대역 주파수에서 뚜렷한 포트폴리오를 제공하지 않아 애만 태웠기 때문이다.

통신3사는 이번 삼성전자 장비 공개로 큰 이견이 없다면 삼성전자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LG유플러스는 5G에서 화웨이와 손을 잡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권영수 부회장이 그룹 내 인사이동을 통해 LG유플러스를 떠날 수 있다는 변수도 생겼다. 그러나 권 부회장이 LG유플러스를 떠나도 사업의 연속성을 고려할 경우 LG유플러스가 화웨이의 손을 뿌리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업계에서는 LTE 시절부터 삼성전자 중심의 통신장비 인프라가 구축된 상태에서, 28GHz 대역은 물론 3.5GHz 대역에서도 포트폴리오가 공개됐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다면 4G와 5G 통신장비 점유율은 비슷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화웨이가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LG유플러스와 협력해 반격에 나서고 있으나 보안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큰 상태에서 삼성전자의 벽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통신3사는 장비 발주서를 통해 5G 통신장비 구축에 나서는 중이다. 삼성전자가 5G 장비를 공개한 상태에서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오는 17일 통신3사 CEO와 회동을 가지고 5G 장비도입에 대한 의견을 나눌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