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 계양구에 위치한 서울 강서 서브터미널. 출처 = 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이코노믹리뷰=김승현기자, 김진후 기자, 박자연 기자] 12일 인천시 계양구의 CJ대한통운 서울 강서 서브터미널. 찜통처럼 더운 오전 10시였다. 가만히 있어도 짜증날만한 날씨인데, 택배물품을 트럭에 싣는 기사들의 표정은 밝았다. 흔히 예상하는 그 숨 가쁜 노동환경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왜일까?

▲ 강서 서브터미널에 방문한 업체들. 출처 = 이코노믹리뷰 김승현 기자

‘휠소터’로 자동 분류, 오전 배송도 가능해

강서 서브터미널은 전국 270여개의 CJ대한통운 서브터미널 중 강서구 화곡동, 마곡동, 내발산동 등 5개 권역의 배송을 담당하는 터미널이다. 기자가 방문한 때도 작업은 쉴틈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서른 대 가까이 되는 소형 트럭이 운송할 화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었다.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었다. 기사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휠소터’(Wheel Sorter, 분류기)였다.

강서 서브터미널은 ‘휠소터’가 처음 도입된 곳이다. 15t 짜리 대형 트럭이  허브터미널에서 싣고온 화물을 부리면, 약 60m 길이의 컨베이어 벨트를 타게 된다. 그냥 컨베이어 벨트가 아니다. 택배 상자는 6면에서 자동으로 바코드를 인식하는 기계를 통과한다. 관리 시스템은 상자의 바코드를 읽어 어디로 보내는 물품인지 인식한다. 택배상자는 관리 시스템이 정해준 트랙을 달린다. 워낙 순식간에 이뤄지는 일이라, 여러 갈래로 나뉜 트랙을 상자가 스스로 달려 자기 정처로 알아서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휠소터가 도입되기 전 택배 업무 중 가장 힘든 작업이 바로 이 분류작업이었다고 한다. 오전 7시 이전에 택배 업체의 모든 팀원이 모여야 했다. 하루 평균 2만 5000 상자가 이곳에 모인다. 잘못하면 다른 권역으로 흘러들어가 배달 실수가 날 수 있는 방대한 양이다. 모든 기사들은 눈을 부릅뜨고 담당하는 물품을 찾아야 했다.

아침부터 내리 작업하더라도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 오후 2시가 금방이다. 그때서야 기사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부랴부랴 배송을 떠나기 시작한다. 당시엔 밤 늦게까지 배송하는 일이 허다했다고 한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땐 하차와 분류작업 단계가 지연되고, 자연히 배송은 더 늦어졌다. 기사들이 피로를 토로하는 건 당연했다.

비효율이 엄청났다. 비효율은 곧 비용이다. 작업의 강도도, 시간도 줄여야 한다는 니즈가 생겼다. CJ대한통운은 2013년 컨베이어 벨트 제조사 ㈜우양정공과 협약개발에 본격 돌입했다. 1227억원이 투입됐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의도한 것처럼 작업의 강도, 시간의 효율이 높아졌다. 즉 비효율을 잡았다. 이제는 ‘분류’보다는 ‘인수’라는 표현이 더 알맞다. 택배기사들의 피로를 덜은 것은 물론이고 배송 시간도 혁신에 가깝게 줄었다. 휠소트는 3년 동안 강서지점을 비롯한 여타 터미널에서 시험 운영을 거친 뒤 2018년 현재 130여개 서브터미널에 적용됐다. CJ대한통운은 올해 180개 서브터미널 설치를 목표로 잡고 있다.

▲ 휠소터의 '휠' 부분. 출처 = 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 휠소터 바코드 인식기. 출처 = 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빅데이터 접목해 보다 정확하게

이 성공엔 CJ대한통운의 풍부한 빅데이터 정보도 한 몫 했다. 주소체계가 도로명으로 바뀌면서 건물 하나하나의 정보가 필요했다. 상자가 제대로 분류되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었다. CJ대한통운은 자사가 보유한 1만 7000여명의 택배기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1000만개에 이르는 도로명 신주소 정보를 수집했다. 이 데이터로 말미암아 오차율 1% 미만의 정확한 분류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오차마저도 CJ대한통운의 정보에 따르면 바코드 훼손 때문이라고 한다.) 또 각 터미널의 휠소트 현황은 사무실로, 또 본사의 종합상황판으로 전송된다. 현황 정보는 다시 축적되어 높은 데이터 정확성에 기여한다. 빅데이터와 휠소터 시스템이 연계된, 그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예시다.

더 자주, 더 많이 배송할 수 있게 되니 배송밀집도도 가장 높다. 다른 업체 1명이 담당하는 권역을 CJ대한통운 기사 4명이 관장한다. 우리 주변에서 평균 7분 거리에 CJ대한통운 기사이 있다는 의미다.

올해 하반기에 가동 예정인 경기도 ‘광주 메가허브터미널’이 들어서면 혁신은 한 층 심화될 예정이다. CJ대한통운이 4000억을 투입해 30만㎡(축구장 40개 넓이) 부지에 지상 4층, 지하 2층 2개 동을 건설 중이다. 43km에 이르는 컨베이어 벨트에도 서브터미널과 마찬가지의 휠소터와 빅데이터 시스템이 적용된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일일 최대 528만 박스, 운송차량만도 1만 8000개가 오갈 것으로 예상했다.

▲ 이곳의 물류는 휠소터로 분류된 후 각 지역 담당 기사에게 알아서 찾아온다. 출처 = 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가족도 일도, 두 마리 토끼

휠소터 도입은 일의 형태뿐 아니라 근로자의 삶도 바꾸었다. 개선된 수익구조 덕에 가족 단위로 함께 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터미널 직원들에게 ‘부부택배단’으로 불리는 최수진(48), 김선학(53) 부부의 이야기다.

부인 최 씨는 “함께 일하다보니 외롭고 힘든 게 다른 일보다 덜 하다. 여성이다 보니 어려운 면도 있지만, 남편과 함께여서 든든하다”면서 “같은 일을 하는 만큼 가사도 함께 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근무하는 부부가 많은지 묻자, “부부의 날을 맞아 CJ 부부택배기사 행사에 초대되기도 했다. 경기도만 100쌍 정도, 전국은 1000쌍 정도 있다”고 답했다.

남편 김선학 씨는 지난해 겨울 배송 길에 화재를 진압한 경험도 있다. 탄내가 나는 층을 찾아 올라가보니 꽤 큰 불이었다. 김 씨는 “매일 가는 아파트라 소화기 위치 등이 익숙했던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택배 기사는 지역전문가의 역량도 갖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업계 점유율 47%를 달리는 만큼, 권역 분할도 다른 업체에 비해 매우 세밀하다. 도로사정, 아파트 관리사무소와의 관계 등에서 동종업계 종사자보다 전문성을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CJ대한통운은 2013년 보건복지부와 ‘시니어 일자리 창출 양해각서(MOU)’를 맺고, 해당 지역에 익숙한 노인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했다. 현재 전국 160여개 거점에서 1300여개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휠소터를 일종의 복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김지환(40) 소장이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강서서브터미널에 입점한 배송업체 대표다. 그는 “소소한 변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혁신이다”면서 “과거 업무량이 100이라면 현재는 20~30 정도로, 기사들에겐 복지혜택이나 다름없다”고 힘줘 말했다. 김 소장은  “일종의 유연근무제가 가능해, 기사들의 업무 부담이 현저히 줄었다. 업계 이직률이 1% 미만”이라고 말했다.

소득에도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기사 개개인이 역량과 능력에 맞춰 실을 짐의 양을 ‘선택’하고, 또 그만큼 벌 수 있다. 업무 효율이 1.5배 이상 늘은 것처럼 소득도 많이 올랐다”고 답했다.

'택배기사 생활에서 가장 변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퇴근이 일러졌다. 아무리 늦어도 7~8시에 퇴근할 수 있게 됐다. 단순계산으로 예전에 비해 4~5시간이 빨라진 것”이라 답했다. 김 소장은 “군소업체 중엔 여전히 수동 분류기를 쓰는 곳도 있다. 그런 곳에 비하면 훨씬 편한 환경에서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소득을 늘리기 위해 일을 더 할 수도 있고 맘껏 쉴 수도 있다.  ‘선택지’가 넓어진 게 휠소터의 선물인 셈이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다. 김 소장은 “허브터미널에서 물량이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면서 "그러면  물류량도 높이고 시간도 더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가허브터미널이 들어서면 양상이 또 바뀔 것”이라며 메가터미널에 관심과 기대도 보냈다.

▲ 15t트럭이 택배 물량을 하역하고 있다. 출처 = 이코노믹리뷰 김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