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하우스 푸어, 웨딩 푸어, 에듀 푸어 등 우리 사회에는 ‘푸어(Poor)’라는 말이 넘친다. 일에 쫓겨 시간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타임 푸어(Time-Poor)’도 생겨났다.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뜻의 ‘워라밸’ 요구도 많아졌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2일부터 300인 이상 기업에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워라밸’이 단순히 이른 퇴근이 아니라 근로자의 자기 시간에 대한 ‘시간주권’을 되찾고 싶은 욕구라는 점에서 수많은 근로자들이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학수고대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2030세대 직장인 1162명에게 타임 푸어를 주제로 설문을 해보니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자기가 타임 푸어라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벌써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간주권을 되찾아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회의론이 높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 2주가 지났는데 “과거와 다를 게 없다”는 현장의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업무강도는 세지고 소득은 줄었다는 불만도 나온다.

우선 대기업에서는 주 52시간 근무가 도입된 후 퇴근을 알리는 노래가 나오면서 6시가 되면 컴퓨터 전원이 꺼진다. 야근이 필요해 미리 신청을 하면 주당 12시간까지 인정을 해주지만 그 안에 일이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초과시간에 대해서는 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데 근로자들은 불만을 표시한다.

게다가 퇴근시간은 앞당겨졌는데 업무 강도가 세진 점을 하소연한다. 업무량은 정해져 있는데 짧은 시간 안에 끝내려고 하니 회사 측은 출입 횟수 제한을 하고 있다. 한 엔지니어링 대기업은 업무시간에 사무실 밖을 나갈 수 있는 횟수를 1일 1.5회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커피 한 잔, 담배 한 대, 은행에 다녀올 시간조차 없다고 한다. 퇴근 시간은 앞당겨졌지만 또 다른 시간의 통제를 받게 된 것이다. 결국 일에 치여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란 뜻의 타임 푸어는 주 52시간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라는 용어부터 바뀌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주 40시간 근무제다. 40시간 근무하되 연장근무를 주 12시간으로 제한해 그간 주 68시간으로 오남용된 제도를 바로잡자는 취지다. 취지는 좋은데 이것이 새로운 타임 푸어를 양산하고 있으니 씁쓸하다.

그렇다 보니 타임 푸어를 위한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치를 비롯해 720시간 숙성한 커피 열매로 만든 커피, 17시간 저온 숙성 냉동피자 등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만드는 음식을 이용하는 대신 빨리, 인스턴트 음식을 소비하고 남는 시간에 일을 더 많이 하자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런 상품뿐이 아니다. 이런 상품을 24시간 판매하는 편의점들이 계속 늘면서 직장인들은 시간에 쫓기는 삶에 점점 더 갇힌다. 사람들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노동에 속박시키면서 새로운 형태의 타임 푸어를 생산하는 사회 구조로 한국이 바뀌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워라밸, 주 52시간 근무제의 취지를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좋은 취지에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니 이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근로자 삶의 질을 개선하려고 한다면 근로자를 존중하는 좀 더 정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방 한 칸만 수리한다고 멋진 집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