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국블록체인협회가 11일 가상통화 거래소 회원사를 대상으로 자율규제 심사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협회가 해킹에 시달리고 있는 빗썸을 두고 ‘문제없다’고 규정한 대목을 두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더 냉정한 가치판단이 필요해 보입니다.

 

협회에 따르면 이번 심사는 지난 5월1일 회원사가 제출한 서면 심사자료를 검토하며 시작됐습니다. 미흡한 부분에 한 보완요청을 거친 후 제출된 심사자료를 근거로 5월30일 자율규제위원들이 각 회원사 실무 책임자과 임원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추가 자료보완 작업이 진행됐고 최종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보안성 심사는 5월8일까지 제출된 심사자료를 바탕으로 인터뷰 심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회원사의 책임있는 보안담당자를 대상으로 6월2일, 13일, 27일, 7월 7일까지 총 4차례의 인터뷰 심사가 이어졌습니다. 협회의 심사 결과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등 12개 가상통화 거래소 모두 적격판정을 받았습니다.

협회는 이번 발표로 한 숨 돌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논란은 지금부터입니다. 먼저 현장실사가 없었습니다. 제출된 자료를 검토하고 담당자를 불러 인터뷰 하는 방식으로 가상통화 거래소의 보안 인프라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까요?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12개 가상통화 거래소가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추상적인 설명’에만 그친 것이 걸립니다. 최소한의 등급을 매겨 세밀한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협회의 발표가 나온 후 많은 사람들은 빗썸이 협회의 적격판정을 받은 대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빗썸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불완전한 운영으로 툭하면 거래소 시스템이 멈춰버리는 바람에 많은 이용자들이 분통을 터트리게 만들었으며, 직원이 노트북을 사무실로 들고 들어가는 어이없는 행동으로 거래소 전체가 악성코드에 감염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해킹에 자주 노출되는 바람에 IT업계 일각에서는 “북한 해커들이 가장 좋아하는 거래소”라는 비웃음까지 사고 있습니다.

최근 팝체인이라는 기상천외한 가상통화 ICO를 무리하게 추진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났던, ‘수상쩍은 면모’도 가감없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빗썸은 생활밀착형 플랫폼 서비스와 연동하는 한편 시스템 보안을 새롭게 구성하며, 가상통화 캐스터 선발까지 고민하는 등 발랄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으나 핵심인 가상통화 거래소 인프라에는 많은 의문부호가 달립니다.

▲ 한국블록체인협회의 자율규제 심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DB

업계에서는 빗썸의 문제가 여전한 상태에서, 협회가 명목상의 적합판정을 통해 일종의 면죄부를 줬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신생단체며, 아직 기초체력이 부족합니다. 협회원들의 ‘십시일반’으로 운영되는 가운데 빗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이번 협회의 결정에 업계의 시선이 싸늘한 이유입니다.

빗썸에 대한 불만이 많은 상태에서 적격판정을 내린 협회에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기 전, 냉정한 상황판단도 필요합니다.

협회의 이번 조치는 말 그대로 회원사들을 ‘잡겠다’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자정활동을 통해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불확실성을 걷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이제야 첫 발을 떼는 중입니다. 첫 술에 배가 부를 수 없습니다. 협회가 자정활동에 나서며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으니,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지켜볼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협회의 지분을 대부분의 대형 가상통화 거래소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인정하고 가상통화에서 블록체인으로 논의의 핵심을 이동시키려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탈 중앙화의 화신인 가상통화가 거래소라는 극단적인 중앙 집중형 플랫폼에서 작동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가상통화를 토큰 이코노미 전략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가상통화=한 탕 크게 벌 수 있는 자산’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상통화 거래소들은 가상통화를 중앙 집중형 플랫폼으로 중개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블록체인 전반의 가치로 풀어내며 토큰 이코노미 전략을 구사하고, 협회는 가상통화 시장 자정을 위해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며 온전히 블록체인 플랫폼 기술 고도화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군소 블록체인 기술회사들을 품어내는 일도 이뤄져야 합니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접근하려면 조급함을 버려야 합니다. 빗썸도 부족하고 협회도 아직 힘이 없지만, 조금씩 나아지려고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빗썸을 마치 ‘문제아’처럼 표현했으나 대단한 저력을 가진 가상통화 거래소라는 점은 변함이 없고, 협회는 이들을 모아 활발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조력자가 될 역량이 충분합니다. 가상통화에서 블록체인으로 핵심이 이동하면 협회의 할 일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비판을 멈추라는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약간의 인내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