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고영훈 기자] 한국은행이 현재 연 1.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고용쇼크 등 불안한 경제지표를 감안해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2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이주열 총재 주재로 전체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1.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30일 6년 5개월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당분간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을 밝혔다. 부진한 경제상황이 이번 동결 결정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실물경제지표 추이./출처=한국은행

금통위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국제금융시장은 글로벌 무역분쟁 우려, 미 달러화 강세 등으로 변동성이 확대됐다"며 "앞으로 세계경제의 성장세는 보호무역주의 확산 움직임,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 미국 정부 정책방향 등에 영향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통화정책방향 전문을 통해 금통위는 국내경제는 설비와 건설 투자의 조정이 지속됐으나 소비와 수출이 양호한 흐름을 보이면서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고용 상황은 취업자수 증가폭이 낮은 수준을 지속하며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 국내경제의 성장 흐름은 지난 4월 전망치를 소폭 하회하고,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소비는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가고 수출도 세계경제의 호조에 힘입어 양호한 흐름을 지속하지만 투자는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소비자물가는 석유류가격이 큰 폭 상승했지만 농축산물가격의 상승세 둔화 등으로 1%대 중반의 오름세를 이어갔다. 근원인플레이션율(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은 1%대 초반으로 하락했으며 일반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대 중반을 유지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1%대 중반 수준을 보이다가 오름세가 확대되면서 목표수준에 점차 근접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상승률 추이./출처=한국은행

금융시장에서는 국제금융시장의 움직임을 반영해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세계적인 달러화 강세의 영향으로 큰 폭으로 상승 중이다.

주가와 장기시장금리는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불확실성 증대로 하락했으며, 가계대출은 증가규모가 다소 축소됐으나 예년보다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주택가격은 보합권에 머물고 있다.

금통위는 "앞으로 성장세 회복이 이어지고 중기적 관점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며 "국내경제가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당분간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압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통위는 "당분간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향후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조정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 나갈 것"이라며 "주요국과의 교역여건,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 가계부채 증가세, 지정학적 리스크 등도 주의깊게 살피겠다"고 덧붙였다.

올해 금통위 회의는 오는 8월, 10월, 11월 등 총 세 차례 일정이 남아있다.

한은의 금리 동결은 대체적으로 시장의 예상치에 부합했다. 앞서 금융투자협회는 7월 채권시장지표를 발표하며 대외 금리 역전폭 확대 부담이 금리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대내 경제지표 부진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시장의 경계감이 감소하고 있다"며 이달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금리인상 동기요인 적다" 판단…일단 무역전쟁 등 국제경제 상황 관망

현재 G2(미국과 중국)의 통상분쟁 이후 불거진 세계 경제 위축 우려와 신흥국 금융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무역전쟁은 미국이 2000억 달러 추가 관세부과에 나서며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하반기 코스피 전망과 수출 전망치 역시 녹록치 않다. 두 나라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치명적인 상황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인상 가속화로 금리역전 현상 지속은 부담이지만 국제 경제 흐름을 더 지켜봐야 한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10만6000명 늘어나는 데 그쳐 고용 부진 역시 심각하다. 2월부터 이어진 10만명대 행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 같은 부진한 흐름은 지난달과 유사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는 36만5000명 증가한데 반해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수가 각각 13만명, 11만7000명 감소했다. 비임금근로자 중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8만9000명 감소하며 전체적으로 고용부진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5월 소매판매는 두달 연속 감소세이며 설비투자 역시 3년만에 처음으로 석달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5월 수출증가율은 양호하게 나왔지만 6월 수출증가율은 부진했다. 무역갈등의 영향이 아닌 일시적인 요인이라고 하더라도 대외여건이 불안한 상황에서 수출지표의 부진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결정에 영향을 미칠만한 요소로 볼 수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연체율 데이터는 최근 2개월간 기업대출을 중심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가계부채의 연체율도 더 이상 낮아지지 못하는 상태로 조금씩 대출금리 상승 영향 등에 힘입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달러 기조 역시 지속될 전망이다 원/달러환율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기준 전날보다 6.60원 오른 1128.70원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도 미국의 관세부과 조치에 보복 대응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위험자산 회피성향이 높아지고 있어 달러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환율 관련 채권시장 심리 역시 전월대비 악화된 상황이다.

김유미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무역전쟁 이슈가 격화되며 글로벌증시 하락 및 위험회피 성향이 높아진만큼 원달러 환율 상승압력은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 금리인상 시기는 언제?…美 중간선거 끝나는 11월 유력

증권사 등 금융 전문가들은 기존 7월 인상 전망을 수정하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이날 "올해 연초 이후 7월 1회 기준금리 인상 전망을 유지해 왔으나 4분기 중 1차례 금리 인상으로 전망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전병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한미 금리 역전에 대한 반응으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게 된다면 그 가능성 자체는 높게 보고 있지는 않지만 불가피하게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다"며 "그에 대한 소수의견 가능성도 차후에 제기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른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대신증권도 당장 기준금리를 변경해야 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재 통화당국은 가계부채 문제로 대표되는 지나친 금융완화 여건을 축소하겠다는 취지의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 중"이라며 "기조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나, 최근 대외 요인을 둘러싼 글로벌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 우려로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 연구원은 "향후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는 오는 11월로 예상한다"며 "당초 예상했던 7월 소수의견, 8월 기준금리 인상보다 1분기 더 늦어진 것으로, 글로벌 통상전쟁이 미국의 11월 중간선거 이후에나 진정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반영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