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넷플릭스는 1997년 리드 헤이팅스의 손에서 탄생할 당시 DVD 대여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미국 DVD 시장에는 블록버스터가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 누구도 넷플릭스의 생존을 장담하지 못했으나, 넷플릭스는 연체료를 과감하게 폐지하고 구독료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로 큰 호평을 받았다. 블록버스터는 마치 운석을 맞은 공룡처럼 2013년 파산하고 말았다.

넷플릭스가 걸어온 길은 역발상에서 시작된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이 보여준 승리의 역사다. 큰 그림을 그리고 기존 시장에 뛰어들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경쟁자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점은 아마존의 행보와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넷플릭스의 역발상, 즉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장면이다. 넷플릭스는 기존 시장 플레이어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명제를 과감히 비틀어 스스로가 표준이 되려고 하는 독특한 기업이다.

▲ 넷플릭스 나비효과가 매섭다. 출처=넷플릭스

스트리밍과 구독형

넷플릭스는 탄생부터 인터넷으로 영화를 서비스하겠다는 DNA를 잉태했다. 넷플릭스(NETFLIX)라는 사명 자체가 인터넷(Net)과 영화(Flicks)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설명이다. 비즈니스 모델은 시작부터 스트리밍을 향해 있었고, 이는 과거 동영상 플랫폼의 가치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과감한 역발상이다.

시간을 돌려 1980년대로 가보자. 당시 비디오테이프 업계에서는 VHS와 베타 방식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지만 업계에서는 기술적 완성도를 고려할 때 베타 방식이 시장을 석권하리라 짐작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소니는 VHS 생태계를 키우며 독점적인 지위를 고집한 반면 JVC는 마쓰시타와 손을 잡고 대량생산 시스템을 일찌감치 구축해 저변 확대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술의 비전이 온전히 시장의 장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이런 현상은 블루레이와 HD-DVD가 합을 겨룬 2000년대 DVD 표준 경쟁에서도 재연됐다.

넷플릭스는 수십년을 이어오던 동영상 플랫폼 시장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VHS냐 베타냐, 블루레이냐 HD-DVD냐를 두고 많은 기업들이 싸우며 지켜온 게임의 법칙을 인터넷을 활용한 스트리밍을 무기로 삼아 순식간에 과거의 방식으로 돌려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통신 네트워크 업계의 인프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을 예견하지 않았으면 이루지 못할 업적이다. 넷플릭스가 판을 바꿀 수 있는 동력에는 이러한 통찰력, 그리고 역발상과 과감한 행동력이 배어 있다. 블록버스터를 물리친 것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DVD 대역부터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한 것은, 스트리밍 방식의 비전을 믿고 시장의 판을 새롭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다. 월정액만 내면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구독형 비즈니스는 생태계 확보에 매력적인 전략이지만 리스크도 큰 편이다. 국내 굴지의 플랫폼 회사들은 지금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플랫폼의 볼륨을 키우고 광고와 건별 결제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스트리밍을 중심으로 구독 비즈니스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 케이틀린 스몰우드 넷플릭스 사이언스 및 애널리틱스 담당 부사장이 넷플릭스의 IT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콘텐츠 온리, 시청환경 패턴 변화

넷플릭스는 스트리밍과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로 판을 바꾼 후, 화려한 연속기를 통해 시장에 안착했다. 바로 콘텐츠 온리 전략과 ‘폭식시청’으로 대표되는 시청환경 패턴 변화다.

넷플릭스는 플랫폼에 매몰되지 않고 콘텐츠 전략에도 집중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로 대표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플랫폼 생태계를 극대화하는 마법을 보여줬다. 플랫폼의 왕이 콘텐츠의 손을 잡고 함께 왕위에 오르는 장면이다. 올해에만 약 80억달러를 투자해 콘텐츠 역량을 키운다는 방침이다.

오리지널 콘텐츠는 물론, 다양한 콘텐츠 사업자와 힘을 합쳐 규모의 경제까지 구축한다는 야심이 보인다. 국내에서는 3위 IPTV 사업자인 LG유플러스와 손을 잡고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각 지역의 콘텐츠 사업자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넷플릭스 플랫폼에 태워 플랫폼 볼륨을 키우고, 해당 콘텐츠를 세계로 소개한다는 당근도 흔들고 있다.

시청환경 패턴의 변화도 넷플릭스 전략의 핵심이다. 콘텐츠 소비를 드라마 기준 하나의 ‘시즌’으로 오픈해 시청자들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강력한 IT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케이틀린 스몰우드 넷플릭스 사이언스 및 애널리틱스 담당 부사장은 올해 초 기자회견에서 콘텐츠 큐레이션과 넷플릭스의 IT 기술이 보여주는 시너지를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콘텐츠 큐레이션 기능의 가장 중요한 강점은 새로운 콘텐츠 발굴 가능성에 있다”면서 “구독자의 콘텐츠 감상시간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취향을 설정한 후 인공지능 기술에 사용되는 머신러닝, 트리 기반의 다양한 알고리즘을 더해 콘텐츠 큐레이션에 나선다”고 강조했다.

▲ 넷플릭스가 스마트 저장 기능을 발표했다. 출처=넷플릭스

넷플릭스는 이미 '적응 중'

넷플릭스는 11일 스마트 저장 기능을 발표했다. 회원이 저장한 에피소드 시청 완료 시 넷플릭스 앱이 해당 에피소드를 삭제하고 자동으로 다음 에피소드를 저장해주는 기능이다. 2016년 저장 기능을 처음 선보였으며 이동 중에도 넷플릭스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와이파이 환경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별도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바일 앱이 자동으로 시청 완료한 에피소드를 삭제하고 다음 에피소드를 저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음 시즌 시청에 나설 수 있다. 하나의 시즌을 모두 시청한 후 자동으로 다음 시즌이 저장되는 구조라 이용자는 편리한 시청 환경을 즐길 수 있다.

시리즈의 시즌 전체를 저장한 경우, 넷플릭스 회원이 첫 번째 에피소드 시청을 완료하면 해당 에피소드 삭제 후 두 번째 시즌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저장한다. 스마트 저장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수동으로 저장된 콘텐츠를 관리하려면 넷플릭스 앱 내 다운로드 탭 편집 옵션에서 해당 기능을 비활성화하면 된다.

두 가지 포석이 있다. 새로운 시청환경과 망 중립성 대비다. 넷플릭스는 스마트 저장을 통해 기존 저장의 사용자 경험을 뛰어넘는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한편, 와이파이에서 무료로 콘텐츠를 받도록 만들어 통신사의 권력이 강해지는 망 중립성 시대를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있다는 평가다.

▲ 디즈니도 넷플릭스와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쉬운 길은 아니다… 넷플릭스의 미래

거침없는 넷플릭스지만 아직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에 일격을 당한 사업자들의 합종연횡이 불거지며 ‘타도 넷플릭스’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콘텐츠 왕자 디즈니는 지난해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종료하는 한편 713억달러를 투입해 21세기폭스 일부 사업부를 인수했으며 통신사 AT&T도 타임워너 케이블 인수에 합의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중이다.

2011년 NBC유니버셜을 인수하는 한편 막판까지 21세기폭스를 노린 컴캐스트와, 최근 콘텐츠 매출 비중을 높이고 있는 애플을 비롯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서비스하고 있는 아마존도 큰 틀에서는 경쟁자다. 미국 방송사들의 연합체인 훌루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막강한 콘텐츠 전략으로 넷플릭스와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다. 디즈니가 21세기폭스 사업부 일부를 인수하며 훌루 지분을 크게 늘린 대목이 중요한 이유다. 이외에도 글로벌 OTT 시장 곳곳에는 현지 토종 기업들의 존재감이 여전한 상태다. 넷플릭스가 공략할 여백이 생각보다 크다는 뜻이다.

넷플릭스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자기의 길을 걷는 중이다. 넷플릭스는 2016년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한 후 구독료를 올리는 등의 리스크가 있었으나 거침없는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는 크게 발견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유료방송 코드커팅을 주도하며 시장의 판을 바꾸는 중이다. 참신함과 역발상으로 DVD부터 스트리밍 시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논란과 경쟁, 비즈니스 방식을 완전히 바꾸고 자기에게 유리한 그림을 그린다. 망 중립성 같은 전혀 다른 사업군에서의 반격에는 선제적 대응으로 리스크를 줄인다. 넷플릭스는 시장을 제패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표준이 되어 단 하나의 플랫폼으로 가는 길을 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