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해자는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더 이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

서양에서 전해지는 오랜 법언(法諺) 가운데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채권자로서의 권리는 보호하되, 그 행사기간까지 무한정으로 늘려서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건데요. 이번에 소개할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제때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않아 권리 구제를 받지 못하게 된 피해자의 이야기입니다.

# 갑(甲) 외국은행 직원인 A씨와 을(乙) 증권회사 직원인 B씨는 갑 은행과 을 증권사로 하여금 코스피 200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이득을 보는 옵션거래 포지션을 구축했습니다. 이후 A씨와 B씨는 장 마감 동시호가 시간대에 보유 중이던 코스피 200 구성종목 주식을 낮은 가격에 대량으로 팔거나 팔겠다는 매도 주문을 제출하도록 해 코스피 200 주가 지수를 하락시켰고, 이를 통해 갑 은행과 을 증권사는 큰 이득을 보게 되었답니다. 이에 관해 금융감독원은 ‘갑 은행과 을 증권사가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 코스피 200지수가 크게 떨어졌고 이에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착수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1차적으로 내보냈고, 그 후에는 ‘갑 은행 직원들이 시세조종행위를 한 사실을 확인해 관련자에 대한 검찰 고발, 징계 요구 등을 하고 을 증권사에 대해서는 일부 영업정지 등 제재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는 조사결과도 언론을 통해 발표했습니다. 한편 이번 코스피 200 주가지수 하락으로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된 C씨는 A씨와 B씨의 행위가 구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6조가 금지하는 시세조종행위에 해당해 같은 법 제177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므로, 자신이 입은 손해에 대해 A씨와 B씨는 물론, 갑 은행과 을 증권사도 사용자로서의 불법행위책임(민법 제756조)을 배상해야 한다며 소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C씨는 결국 패소했는데요. 그 이유는 A씨와 B씨에 대한 징계요구, 영업정지 등 금융감독원의 제재조치가 이루어질 무렵 C씨는 이미 이들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에야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므로, 그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했다는 것입니다(민법 제766조 제1항 참조). 즉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는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만 행사할 수 있는데, C씨는 그 기간을 넘겼기 때문에 더 이상 권리자로서 보호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소멸시효는 점유권이나 유치권, 소유권에 수반하는 권리, 담보물권 등 이른바 물권을 제외한 재산권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제도입니다. 특히 임금채권, 물품대금채권, 공사대금채권 등 일부 채권의 경우는 3년 만에 시효가 소멸하기도 하므로 채권관리의 측면에서 꼭 챙겨야 할 부분입니다.

 

2. 자녀의 성본 변경은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인정된다

이번에는 부산가정법원 판결입니다.

친모인 A는 자신의 자녀인 B의 성과 본을 자신의 성과 본으로 변경해 줄 것을 소송으로 구했습니다. 우리 민법상 자녀의 성과 본은 아버지를 따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부모가 혼인신고를 할 때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게 할 수 있고, 사후 자녀의 복리를 위해 자녀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모 또는 자녀의 청구에 의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민법 제781조 제6항 참조). 이에 대해 법원은 B가 아직 만 1세에 불과해 성과 본의 변경에 관해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부족하고, 어머니의 성본과 자녀의 성본이 다른 경우가 오히려 일반적이어서 B가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특별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 등에 비추어 현 시점에서 B의 성과 본은 변경하는 것은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성급하게 변경하는 것은 B의 복리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A 또는 B는 B가 어느 정도 성장한 상황에서는 성본변경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때는 법원이 이를 허가해 줄까요? 성본변경에 대한 우리 법원의 대체적인 경향은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관대하게, 성년자의 경우에는 엄격하게 판단하는 편인데요. 만약 B가 미성년자로서 성본을 변경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고, 아직 미성년자라 성본을 변경하더라도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을 경우라면 법원이 이를 허가해 주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적어도 법원은 만 1세 아이에 대한 성본변경, 그것도 아버지의 성본을 어머니의 성본으로 변경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3. 혐오시설 건축허가신청 반려처분에 대한 법원의 판단기준은?

마지막으로 수원지방법원 판결입니다. 출소자를 포함한 갱생보호대상자들의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법무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 보호대상자 지원업무를 실시하기 위한 교육연구시설의 건축허가를 신청했는데, 관할 시장은 건축허가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려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에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건축허가신청 반려처분에 대한 취소를 청구했는데요. 관할 시장의 판단과 달리 법원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네요.

건축허가 중에는 법적 성질상 ‘재량행위’로 평가받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번 사건의 건축허가역시 일종의 ‘재량행위’였고요. ‘재량행위’란 행정행위를 행하거나 또는 행정행위의 내용을 결정함에 있어서 행정기관에 자유로운 재량을 인정하는 처분을 말하는데, 행정기관의 재량권 행사가 위법한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법원은 원칙적으로 행정청의 재량을 존중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는지 여부만을 판단하게 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사실오인, 비례평등의 원칙 위배 등은 재량권 일탈, 남용을 판단하는 주요한 판단기준이 됩니다(대법원 2005. 7. 14. 선고 2004두6181판결 등 참조).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출소자를 포함한 갱생보호대상자들의 사회복귀 지원업무를 실시하기 위한 교육연구시설은 해당 지역 주민들로서는 혐오시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라, 당초 관할 시장은 주민들의 입장을 고려해 건축허가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내용의 반려처분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시설 때문에 마을의 교통이나 주차공간을 혼잡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인근 주민들이 위 건물을 ‘구금시설 보호대상자(출소) 교육시설’로서 혐오시설 등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는 점 등은 건축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적법한 기준이라 할 수 없고, 위 시설의 설치로 인근 주민이나 주변 환경에 어떠한 구체적인 위해를 미칠지 알 수 있는 증거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주민들이 주장하는 공익보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 입게 될 불이익이 훨씬 크므로, ‘비례의 원칙’을 위반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취소되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관할 시장이 건축허가를 내주고 내주지 않고는 재량권 행사로서 존중하지만, ‘비례의 원칙’이라는 측면에 비추어 볼 때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으로서 위법하므로 취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네요. 이러한 법리는 행정기관이 내리는 다른 재량행위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므로 한 번쯤 눈여겨볼만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