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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철학 찾기 ③] 그날 나는
이준형 토톨로지 대표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8.07.13  07:21:23
   

그날 나는 미생물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왕 하나 선택해야 하는 이중전공, 멋지게 이과로 가보자는 게 화근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전공이 환경생태공학. 뭔가 이과스럽지 않은 이름이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도전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실과 이상은 다른 법. 고등학교 때 제대로 배워 보지도 못한 생물이며 화학 공식이 칠판 가득 적힐 때면 ‘난 누구, 여긴 어디’하는 소위 ‘현타’가 늘상 오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자리는 칠판을 기준으로 늘 왼쪽 맨 끝자리였다. 어떻게라도 교수님의 질문은 피하고, 몰래 숨어 딴짓이나 해보자는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노트북을 켜놓고 하염없이 웹서핑을 하고 있을 때였다. 포털사이트 메인에 ’속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배가 한 척 침몰했는데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도 많이 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속보와 오보의 반복.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종인 무너진 가슴 쓸어 안고, 다시 무너지고를 반복했다. 4월 16일, 그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아는 그대로다.

원고를 쓰기 위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다시 뒤적였다. 그동안 표지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져서 좀체 다시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 책이었다. 내 아이에 대한 추억, 사고 당시의 아픔, 이후 수습과정에서 생긴 이야기까지. 책 속에는 기록에 참여한 사람의 수만큼, 아니 그 사람들의 수와 희생된 사람들의 수가 더해진 만큼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아픔은 다양하나, 기록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있다. 바로 권력의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부당한 개입이 그것이다. 2학년 1반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 씨는 참사 당시 대통령과 통화를 했던 인물이다. 그는 팽목항을 찾아온 대통령 앞에서 최정예 요원들을 투입해 단 한 사람이라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직 떠있는 선수 위에 올라 작업하는 모습이라도 보여달라고 애원했다. 제발 지성이를 찾아달라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꾹 참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돌아간 뒤, 굳게 믿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학년 4반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 씨는 사고 후 진행된 국정조사를 지켜보며 “결국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을 뿐”이라고 돌이켰다. ‘검토해보겠습니다’라는 상투적인 표현만 반복하는 책임자들, 사고의 원인 규명보다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사람들까지. 그는 그해 7월 결국 일을 그만두고 원인 규명을 위한 일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 주자인 사르트르는 누구보다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철학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으며 자유를 억누르는 존재가 있는 한, 인간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1년 여의 포로생활을 마친 뒤, 이들에게 대항하기로 결심하고 독일군을 겨냥한 비밀 레지스탕스에 참여했다. 독립 이후에도 그는 프랑스 보호령이었던 알제리의 독립을 지지하는 투쟁에 가담했고, 미국의 베트남 참전 반대 활동과 드골의 독재 정권 저항운동인 68혁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심지어는 김지하 시인이 독재 정권에 저항하던 중 구속되어 사형 선고를 받자 그를 석방하기 위한 운동에도 참여했을 정도다. 그가 만약 2014년 4월 그날의 사태를 목격했다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얼마 전 기무사가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인들을 조직적으로 사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탐색구조 종결을 설득하고,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원회 대표 인물들을 성향별로 분류해 대응 방안을 고민했다고 한다. 팽목항뿐 아니라 안산 단원고에도 기무 활동관이 배치돼 매일 동향이 보고됐다. 새삼 놀랍지 않아 더 슬픈 소식이었다.

세월호 사태가 일어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훌훌 털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던 몇몇 ‘소위’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날의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던 책임자들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 그들이 나아가고자 했던 그 ‘앞’은 도대체 어디였을까? 나조차 기억나는 그날의 일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뻔한 거짓말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걸까. 지식과 실천은 다른 말이 아니라던, 사르트르의 이야기를 다시금 되새기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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