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진종식 기자] 퇴직연금제도에 기금형 지배구조를 도입해 퇴직연금 적립금의 장기수익률 제고로 온전히 귀결되기 위해서는 자산운용사들의 선제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10일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의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의 의의와 시사점’ 제하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의 도입은 가입자의 선택 가능성을 확대한다는 측면 외에도, 가입자의 적극 참여를 유도하고 연금 자산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투자 기조를 확립함으로써 현행 계약형 지배구조에서 제기되는 많은 문제점을 완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평가됐다.

보고서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퇴직연금 적립금의 장기수익률 제고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자산운용기관의 선제적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자산운용 측면에서는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체계와 같은 통합 자산관리 역량이 요구되고, 상품 단위에서는 타깃데이트펀드(TDF)와 같은 생애주기형 펀드의 활성화를 강조했다. 그 외에도 가입자 교육을 포함해  연금 계리 및 자산배분 등에 대한 포괄적 자문서비스의 중요성이 확대돼 효율성 높은 퇴직연금제도로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 (자료: 금융감독원)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의 필요성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제도는 2005년에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노후소득보장 강화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그동안 퇴직연금 제도가 적립금 규모 측면에서는 170조원 규모로 빠르게 성장했으나 운용 효율성 측면에서는 1~2%대의 낮은 수익률로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또한 퇴직연금의 제도적 특성과 기업의 자금 조달 환경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전체 적립금의 89% 이상이 단기로 갱신되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됐다.

이에 따라 장기투자 기조에 부합하지 않는 퇴직연금 운용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대안으로 퇴직연금 지배구조의 다변화 필요성이 제기돼 고용노동부는 기금형 지배구조 도입을 위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일부 개정안을 정부입법으로 발의한 후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현재 마지막 단계인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계약형 지배구조는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적극적인 주체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 방안으로 정책당국은 새로운 지배구조 유형인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의 도입을 모색하고 있다.

지배구조의 개편만으로 제반 퇴직연금 운용상의 비효율성이 해소되지는 않지만 퇴직연금 시장에 자극제가 돼 실질적인 경쟁구도가 형성돼 연금 운용 효율성이 강화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새로운 지배구조는 퇴직연금을 둘러싸고 공고하게 형성돼 잇는 기존의 시장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 특히 민감한 부분은 포괄적 기금형 퇴직연금에서 허용하고 있는 수탁법인의 성격과 설립 주체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수탁법인의 성격을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한정하고 설립 가능한 기금의 유형으로 단일형과 연합형만 제시하고 있다. 이는 기존 퇴직연금사업자인 영리법인인 금융기관이 수탁법인의 주체가 되는 소매형 기금의 설립에 참여할 수 없음을 뜻한다.

대표적 기금형 지배구조의 퇴직연금제도를 운영하는 국가인 호주의 경우 대부분의 연금펀드가 금융기관 주도로 설립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자산운용사들의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제도 시행 초기에는 영리법인의 진입을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할 수 있으나,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의 도입 목적이 당초 가입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한 점을 감안하면 민간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소매형 기금의 참여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이유는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민간이 주도하는 소매형 기금의 역할 및 효용성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 점에서 성공적인 퇴직연금 제도로 평가받는 호주의 연금펀드의 성공 요인이 기금 간 경쟁 구도의 활성화에 기인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 (출처: pixabay)

기금형 도입 목적, 장기 수익률 제고와 운용 효율성 강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퇴직연금의 장기 수익률 제고와 제도의 운용효율성 제고이다. 지배구조의 개편이 수익률 제고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기금형 지배구조를 통해 장기투자 자산인 퇴직연금의 속성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운용체제가 도입되면 장기수익률 관점에서는 점진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이 6년이 채 안되고 개인형퇴직연금(IRP,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가입자들의 중도인출이 빈번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퇴직연금은 장기 투자자산임을 전제해야 한다.

장기 투자자산을 현재와 같이 자산운용사들이 1년마다 단기 정기예금을 갱신(rollover)하는 방식으로 계속 운용할 경우 노후소득 보장자산 강화라는 퇴직연금 본연의 목적은 결코 달성할 수 없다.

이처럼 계약형 퇴직연금은 단기 상품으로 운용하지만 기금형 퇴직연금제를 도입하고 전문가가 포함된 기금운용위원회의 활성화가 이뤄지면 위험자산 비중을 일정 부분 확대하고 적절한 자산 배분에 의한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구축하여 장기수익률 측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 연구위원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기금형 지배구조가 발달한 호주나 미국 등의 운용 사례와 실제 수익률 등에 의해 확인 가능하다. 또 현행 계약형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기업 중에서도 명문화된 투자지침서(IPS)를 작성하고 별도의 자산운용 전략을 수립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높은 운용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점 역시 수탁법인의 장기운용계획에 의한 수익률 제고 가능성을 높여줄 간접적인 근거가 된다고 피력했다.

▲ (출처: pixabay)

자산운용사의 역량 강화 필수, 디폴트옵션제 활성화

앞서 제시된 여러 가능성에도 기금형 지배구조의 도입이 퇴직연금 적립금의 장기수익률 제고로 온전히 연결되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의 기초 상품을 제공하는 자산운용사들의 선제적 역량 강화가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산운용의 전문성이 부족한 비영리 수탁법인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자산운용 전반을 포괄적으로 위탁하는 OCIO체계와 같은 통합 자산관리 역량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한 퇴직연금 상품 단위에서는 TDF와 같은 생애주기형 펀드에 대한 개발 및 운용 역량의 축적이 중요하다. 적립금 운용의 효율성 제고를 위하여 기금형 지배구조와 함께 논의되고 있는 디폴트옵션 제도의 핵심 상품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기금형 지배구조와 함께 확정기여형(DC) 가입자에 대한 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되고 이 제도의 활성화가 이루어지면 상품정보와 교육등의 부족으로 투자상품을 결정하지 못한 가입자들의 퇴직자산도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인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행 계약형 지배구조 하에서 퇴직연금사업자의 역할 및 의무로 규정되어 있는 가입자 교육을 포함한 연금 계리 및 자산배분 등에 대한 포괄적 자문에 중점을 둔 서비스가 폭넓게 실시되면 더욱 효율성있는 퇴직연금 제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