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매년 무역 적자와 동일한 액수의 페이퍼 어셋(paper asset, 현금 또는 증권류와 같은 자산)을 외국인에게 판매하고 있다(즉, 자본 수지 흑자를 낸다).    출처= Financial Connection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스티븐 므누신 美 재무장관은 지난 5월 20일 “무역 전쟁은 잠복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잠복 상태’가 터지고 말았다. 미국은 현재 중국, 유럽연합(EU), 멕시코, 캐나다와 전방위 전쟁을 벌이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경제 및 공공 문제를 가르치고 있고, 연준의 부의장을 지낸 바 있는 앨런 블라인더 교수가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국제 무역에 관한 세 가지 진실이 있다는 글을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했다.

첫 번째 진실은 사람이든 기업이든 국가 간이든, 다자 간 교역에서는 어느 양자가 흑자를 내거나 적자를 내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장관은 어느 특정 국가와의 양자 간 무역 적자를 미국이 그 나라에 “손해를 보고 있다” 또는 “이용당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넌센스다. 개인 간의 거래 패턴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회사에게서 지속적으로 흑자를 보고 있다. 회사는 우리가 일한 대가로 급여를 지불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회사로부터 물건을 거의 사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회사로부터 번 돈을 가지고 집세, 동네 슈퍼마켓, 레스토랑 등 여러 다른 장소에서 지출하며 그들에게는 적자 관계를 유지한다. 우리가 완전히 균형을 이루는 거래 상대방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관계는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양자 간 무역 흐름을 살펴보면 모든 곳에서 흑자와 적자가 교차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역의 작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국가들을 망라할 때, 미국처럼 어느 한 국가가 나머지 모든 나라들과 다자 간에 큰 무역 적자를 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가?

두 번째 진실은 첫 번째 진실만큼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시민들이 저축을 많이 하지 않는 나라, 정부가 지속적으로 적자 재정을 운영함으로써 마이너스 재정을 메우는 나라(그런 나라가 누구일까?). 그 나라가 여전히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싶다면, 그 나라는 어디서 자금을 조달해야 할까? 그 나라의 신용이 튼튼하고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이라면, 그 나라는 다른 나라의 투자자들로부터 필요한 것을 빌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 하는 일이다.

▲ 미국은 상대적 우위를 갖고 있는 상품에 전념하고, 원하는 물건을 직접 생산하는 대신 중국과 무역을 통해 얻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출처= 구글

다르게 말하자면 미국은 매년 무역 적자와 동일한 액수의 페이퍼 어셋(Paper Asset, 현금 또는 증권 자산)을 외국인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즉 자본 수지 흑자를 낸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18세기의 중상주의자들처럼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연산의 문제다.

외국 차입에 대한 대안을 생각해 보자. 미국 정부는 미국인들이 더 많은 돈을 저축하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미국인들의 저축은 좀처럼 늘지 않고 소비하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 정부는 예산 적자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오히려 그 반대로 몇 가지 엄청난 도박을 했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 미국은 미래에 투자가 줄어들고 형편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국내 헤픈 씀씀이를 감안하면, 미국의 해외 차입 능력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에서 돈을 빌리면 무역 적자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다시 세 번째 진실, 즉 상대적 이익의 원칙을 더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이유다. 한 비판적인 수학자가 진실이지만 확실하지 않은 경제적 명제를 놓고 위대한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1970년 미국인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에게 도전한 적이 있지만, 그의 이론은 여전히 건재하다. 사무엘슨은 한 국가가 모든 제품의 생산에서 상대 국가보다 나은 경우라 하더라도, 무역에는 상호 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상대적 이익론을 주장했다.

▲ 폴 새뮤얼슨은 한 국가가 모든 제품의 생산에서 상대 국가보다 나은 경우라 하더라도, 무역에는 상호 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상대적 이익론을 주장했다.    출처= 구글

한 외과 의사가 집안 페인트 칠에 소질이 있어서 웬만한 화가들보다 그 일을 더 잘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고 해서 그 의사가 진료를 마다하고 자신의 집에 페인트 칠을 해야 할까? 물론 아니다. 벽을 칠하는 데 웬만한 화가들보다 더 잘할 수 있겠지만 그 의사는 외과 수술을 할 때 훨씬 더 본인의 진면모를 드러낼 수 있다. 수술은 그 의사가 남들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의사는 수술에 전념해야 하고 수술실에서 발휘할 재능이 없는 다른 사람들(페인트 칠에 상대적 우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페인트 칠에 전념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체 경제가 더욱 효율적이 되는 것이다.

국가들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중국이 미국보다 더 효율적으로 모든 것을 제조할 수 있다 하더라도(사실은 그럴 수 없지만), 미국은 상대적 우위를 갖고 있는 상품에 전념하고 원하는 물건을 직접 생산하는 대신 중국과 무역을 통해 얻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두 나라 모두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 세 가지 진실을 한데 합쳐 보자.

첫째, 국제 무역은 모든 국가에게 이롭기 때문에(비록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에게는 아닐지라도) 무역이 붕괴되면 모든 국가가 손해다.

둘째, 다자 간 무역에서 적자는 정상적인 현상이며 적자가 양자 간 무역이 경고 수준에 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한 나라가 저축보다 투자를 더 많이 하면 그 국가는 다자 간 무역에서 적자가 나게 되어 있고, 따라서 많은 국가들과 양자 간 관계에서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실이 이렇다고 해서 이것이 중국의 모든 불공정 거래 행위를 면해 주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문제는 양자 간 무역 적자 문제가 아니라 지적 재산권 보호의 문제임은 주지의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