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본격적인 신남방정책에 시동을 걸며 인도와 싱가포르 국빈방문을 위해 8일 출국한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당일 전세기를 타고 인도로 출국한 사실이 확인됐다. 문 대통령은 인도에 도착한 후 현지의 악사르담 사원을 방문하고 다음날인 9일 한국-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을 마친 후 삼성전자의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현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재용 부회장이 올해 중국 선전 출장에서 샤오미 기기를 살펴보고 있다. 출처=웨이보

인도는 넥스트 차이나...정경 합동작전?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재판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일체의 외부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유럽과 북미, 중국, 일본을 누비며 신성장 동력 확보에 매진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 부회장은 3월 말 유럽과 북미 출장을 통해 인공지능 전략을 수립하는데 집중했다. 손영권 최고전략책임자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을 예방해 인공지능 거점 수립을 위한 포석을 마련한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부회장은 캐나다 토론토의 삼성전자 인공지능 연구센터에 들러 현지 인프라를 점검하기도 했다.

5월 초 중국과 일본 출장은 부품 사업이 핵심이다. 이 부회장은  김기남, 진교영, 강인엽 사장 등 반도체 부문 주요 경영진,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과 출장을 떠나 중국 선전의 전자매장에 들러 삼성전자와 샤오미 부스를 찾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전기차 부품 업체인 BYD는 물론 화웨이와 샤오미, BBK 등 중국 거대 전자 업체와 연이어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5월 말에는 홍콩과 일본을 다녀왔다. 이 부회장은 출장 기간 일본 우시오 전기와 야자키 경영진과 차례로 만났다. 우시오 전기는 반도체와 LCD용 노광 램프 분야 전문기업이며 야자키는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다. 우시오의 창업주인 우시로 지로 회장은 지난 2007년 방한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만난 인연도 있다. 3번째 출장의 핵심은 전장사업인 셈이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를 주도했던 이 부회장이 일본의 혁신적인 전장사업 기업들과 만나 새로운 플랫폼 전략에 나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의 다음 행보가 인도로 결정난 가운데, 이 부회장과 문 대통령과의 첫 공식만남이라는 상징성이 눈길을 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매개로 공식만남을 가진 후 추가로 비공식 면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논란에 휘말렸고,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당시 정부의 비선실세 논란을 계기로 국민의 지지를 받아 탄생했다. 두 사람이 인도에서 공식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은 단순한 정치와 경제의 만남을 넘어 일종의 합동작전을 의미한다는 평가다.

인도 시장의 중요성이라는 키워드도 있다.

문 대통령은 신남방정책을 통해 아세안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안보 차원에서는 북한과 관계를 맺고 있는 현지 국가들과의 대북공조와 협력을 끌어내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인도 시장이다. 약 13억명의 인구를 보유한 인도를 품는다면 신남방정책을 넘어 그 이상의 경제적 과실도 기대할 수 있다. 이 부회장과 9일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서 만나는 행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자 인도 시장에도 진출해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삼성과 함께한다면 현지에 확실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평가다. 노이다 공장 준공식을 기점으로 현지에서 삼성전자의 휴대폰 생산이 늘어나 인도 수출호조에 순기능을 발휘한다면, 신남방정책을 외교적으로 풀어갈 한국 정부는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삼성..."1등 탈환하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행보에 더 집중하면, 심상치않은 인도 시장의 '이반'을 조기에 추스리고 연쇄효과를 차단하는 한편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도는 글로벌 ICT 전자 업계에게 '약속의 땅'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글로벌 경제가 휘청이고 있으나 인도는 올해 1분기 7.7%의 경이적인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순항중이다. 지난해 11월 무디스는 인도의 신용등급을 13년만에 상향조정 했으며, 무엇보다 13억억명의 인구로 창출되는 거대한 내수시장은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코트라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여는 ICT 응용 신산업: 경쟁력 진단과 인도 활용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는 최첨단 ICT 기술력을 빠르게 체화하고 있으나 아직 성장의 여백이 넓은 편이다. 7% 넘나드는 파괴적인 경제 성장률과 평균 연령 26.7세에 불과한 젊은 시장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메이크 어 인디아 정책도 눈길을 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메이크 어 인디아 정책은 핵심인 제조업 사업 육성과 더불어 ICT 발전을 목표로 한다. 인도는 메이크 어 인디아를 중심으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창업자 등과 함께 스타트업 부흥을 위한 대대적인 행사를 치르는 한편 인도를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어 제조업 강국으로 육성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해 모디 총리가 미국에 방문했을 때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앞다투어 그에게 달려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은행의 기업환경평가에 따르면 인도는 2017년 100위를 기록하는 등 급성장하고 있으며 선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처럼 글로벌 ICT 업계를 호령하는 두뇌집단의 고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인도의 잠재력과 시장 매력도가 인상적이지만, 현지에 진출한 삼성전자의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1995년 처음 인도에 진출한 삼성전자는 현지 서남아 총괄법인을 설치한 후 판매법인은 물론 첸나이와 노이다에서 스마트폰과 생활가전을 생산하는 전진지기를 구축하고 연구개발, 디자인센터까지 만들어 20년 동안 활동했으나 최근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크게 두 가지다. 인도는 외국인 사업자에게 문호를 개방해 의욕적으로 메이크 어 인디아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최근 약간의 조정기에 돌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해외에서 수입되는 휴대폰 관세를 지난해 15% 인상한 대목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내수시장 관리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애플과 샤오미 등 외국 경쟁자의 대두다. 애플은 최근 인도에 위탁생산공장을 통해 아이폰6S 양산에 돌입했고, 샤오미는 2곳의 휴대폰 공장을 만들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으나, 지난해 4분기부터 샤오미에 덜미를 잡혀 2위로 밀려난 상태다.

삼성전자가 노이다 공장 준공에 돌입해 현지 생산량을 늘리는 이유는 결국 인도 스마트폰 시장 1위 재탈환에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다. 준공식에 고동진 삼성전자 IM(IT&모바일) 부문장(사장)도 참석이 참석하는 이유다. 이 부회장은 2016년 추석연휴 기간 인도를 방문해 모디 총리를 만났고, 6억5000만달러를 투입해 신공장을 중심으로 1000만대 휴대폰 생산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 이재용 부회장과 인도의 모디 총리가 2016년 만남을 가지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최근 또 다른 남방거점인 베트남 시장에서 현지 제조사들이 삼성전자의 지배력에 대항하는 분위기를 보이는 장면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니케이아시안리뷰는 2일(현지시각) 베트남 현지 제작사들이 삼성제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빈그룹은 올해부터 스마트폰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며, 최근 1억3100만달러의 자본을 들여 별도의 스마트폰 자회사를 설립했다. 가전제품업체 아산소는 올해 분기별로 60만대의 스마트폰 출하 계획을 세웠고, 전체 매출 중 1%에 불과한 스마트폰 비중을 2020년 30%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인도에서 샤오미에 덜미를 잡힌 후 베트남과 같은 아세안 지역에서 비슷한 연쇄효과가 벌어지면 삼성전자가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이 부회장의 전격적인 인도 방문과 현지 인프라 강화는 아세안 지역의 핵심인 인도부터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그 외 지역으로 번지는 '탈 삼성전자' 분위기에 제동을 걸 목적도 있다.

인도 스마트폰 시장을 넘어 인공지능, 생활가전, 연구개발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도 엿보인다. 삼성전자는 타이젠 운영체제를 탑재한 Z 시리즈를 인도에만 출시하며 운영체제 독립 실험에 나선 경험이 있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초연결 인공지능 생태계의 부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는 노이다 공장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이상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