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야지.” “언제까지?” “원하는 것이 올 때까지.”

-<횡단보도에 선 다섯 사람>의 마지막 대사

▲연극 <횡단보도에 선 다섯 사람> 포스터. 출처=프로젝트 신

[이코노믹리뷰=최혜빈 기자] 주말은 한 주 동안 팽팽한 긴장의 끈이 풀어지고 그 풀어진 틈을 휴식과 사색의 결과물을 넣기에 안성맞춤의 시간이다. 삶이란 무엇인지 묻고 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창작부조리극 <횡단보도에 선 다섯 사람>은 주말 삶을 돌이켜보기에 좋은 연극이다. 이 극은 횡단보도 앞에 서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다섯 사람의 이야기다. 죄수, 철학자, 입소자, 택배원, 샐러리맨 등 딱히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섯 사람은 둘 혹은 셋, 때때로 다 함께 모여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들은 각자 다른 대상을 기다리고 있다. 입소자가 기다리는 건 그의 엄마다. 딱딱한 횡단보도에 계속해서 꽃을 심으며 “꽃을 다 심으면 엄마가 온다고 했다”고 엄마라는 희망을 기다린다.

반면 죄수는 입소자가 포기하기를 기다린다. 엄마는 오지 않을 것이며 입소자에게 “그만 기다리고 이제 가자”라고 권한다. 입소자를 기다리다 지친 그는 자기 몸에 묶인 사슬을 풀어내려 노력하다가, 새로운 사슬을 몸에 걸기도 한다.

▲연극 <횡단보도에 선 다섯 사람> 중 입소자와 죄수. 출처=프로젝트 신

철학자는 죽음을, 택배원은 잃어버린 택배 상자를, 샐러리맨은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찾는 것들의 공통점이라면, 극이 끝날 때까지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오지 않을 것’을 전제로 이 연극을 바라본다면, 이들이 기다리는 행위 자체가 의미 없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행동 하나하나에 나름의 절실함과 처절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관객은 어떤 측면에서, 다섯 명의 주인공은 자기의 인생과도 닮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횡단보도에 선 다섯 사람>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전 <고도를 기다리며>를 모티브로 한다. 인간의 삶은 단순하게 ‘기다림’이며, 그 기다림의 과정에서 인간의 부조리함이 드러난다는 주제의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연극 <횡단보도에 선 다섯 사람> 등장인물들. 출처=프로젝트 신

다섯 사람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장소는 횡단보도 앞이다. 이들은 횡단보도의 불이 빨간색, 즉 정지해야 하는 상태일 때 치열하게 대화를 나누며 기다림의 의미를 찾기도 하고 때로는 싸우며 다시 화해한다. 그러다 횡단보도의 불이 파란색으로 바뀌면, 이들은 일제히 일어나 자기가 기다리는 것이 행여 오지나 않을지 희망을 품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낮과 밤이 바뀌고, 다섯 사람이 기다리는 것들의 의미는 점차 바뀌어간다.

인간의 성장 과정과도 같아 보이는 이 연극의 극본을 쓴 김태현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우리는 무언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우리는 기다림에, 기다리는 상태에, 지치고 힘들어 한다. 하지만 동시에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얻는 설렘과 고됨이라는 두 가지의 반대되는 감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고, 그 점에서 다섯 주인공에게 우리는 각자 자기의 모습을 투영해볼 수 있다.

연극 <횡단보도에 선 다섯 사람>은 8일까지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한다. 러닝타임은 65분이며 만 7세 이상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