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승현 기자, 김진후 기자, 박자연 기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사상 처음으로 4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외환위기 시절 외환보유액은 39억달러로 100배 이상 늘었으며, 세계 9위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의 기준에 비춰본다면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적정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외 교역규모와 대외부채 등을 감안하면 더 쌓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 경제학자는 무려 7000억달러는 돼야 안심할 수 있다고 한다.  

 

21년 만에 100배 이상 늘어난 외환보유액

한국은행이 지난 4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6월 외환보유액’은 4003억달러다. 2011년 4월 3000억달러를 돌파한지 7년 2개월 만에 1000억달러가 늘어나 40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이는 세계 9위를 차지하는 규모다. 중국이 3조1106억달러로 1위고 이어 일본(1조2,45억달러), 스위스(8004억달러), 사우디아라비아(5066억달러), 대만(4573억달러) 등의 순이다. 1997년 12월 외환위기 시절에 39억4000달러로 줄어든 것에 비하면 21년 만에 10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가부도 위기를 겪으면서 외화보유의 중요성을 깨닫고, 늘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풀이된다.

 ▲기획재저정부가 발표한 주요국의 외환보유액 현황에서 한국이 9위다.

외환위기 트라우마로 꾸준히 늘린 외환보유액

21년 전 우리나라는 보유외환이 부족한 국가부도사태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39억4000달러까지 졸아들었다. 1997년 3월 태국 최대 금융회사가 부동산 부문 대출로 파산하면서, 같은 해 7월 태국의 금융외환위기가 시작됐다. 곧 닥쳐올 위기가 예고됐으나 한국 정부는 '펀더멘털'이 건실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국민소득 1만달러’를 유지하는데 큰 의미를 두고,  ‘환율방어’에 귀중한 달러를 소진했다. 외환관리의 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겹치면서 우리나라는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다.

1997년 11월 20일 우리나라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IMF는 긴축통화정책을 요구했다.  20%의 고금리를 유지하도록 요구해 높은 이자에 허덕인 수많은 회사가 쓰러졌다. 실업자 수가 급증했고, 자살률, 이혼율이 늘어났다. IMF의 처방에 따라 산업 전반에 혹독한 구조조정을 했다. 금 모으기 운동 등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피나는 노력을 해, 어두운 시기를 벗어나는데 힘을 보탰다. 2001년 8월 구제금융자금을 조기 상환하며 IMF 관리 체제에서 벗어났다.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1998년부터 꾸준히 오르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한국 정부는 경상흑자,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등을 활용해 외환보유액을 꾸준히 늘렸다. 2001년 9월 1000억달러, 2005년 2월 2000억달러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이후 2008년 3월 2642억달러까지 꾸준히 증가한 외환보유액은 글로벌금융위기로 2005억달러까지 감소했다. 한 해에 600억달러 이상 줄어든 것이다. 이후 다시 꾸준히 늘어나 2011년 04월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외환보유액 4003억달러 적정 수준?

4000억달러를 넘은 외환보유액은 적절할까?  경제학자들마다 의견이 달라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과 교수는 지난해 9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연구한 결과,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4679억달러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IMF는 올해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이 3814억~5721억달러라고 발표했다. BIS는 4679억달러가 적정하다고 추정했다. BIS와 IMF의 기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적정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도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의 안정성이 향상됐다고 평가한다. 기재부는 "적정하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대신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와 ‘경상 지급액 대비 외환보유액’ 등의 건전성 지표가 과거에 비해 개선됐다며 양호한 수준이라는 말로 평가를 대신한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은 1997년 말 286.1%이었다.  즉 1년 안에 갚아야 할 외채가 3배 가까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 비율은 2008년 말 74%, 2018년 3월 30.4%로 계속 감소했다.

 

외채 4339억달러가 불안요인?

외환보유액의 적정 수준을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산정기준은 없다. 각 나라의 환율 제도, 자본자유화와 경제발전 정도, 외채구조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금융위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대외 지급 수요와 외환 보유비용이 여건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여건에 따라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게 상책이다. 

무역의존도가 63.9%로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는 미·중 무역 분쟁 증폭,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악화에 따른 실적 둔화 등에 따라 언제든 외국 자금이 대량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따라서 400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했다고 하더라도 안심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있음을 정부 당국은 감안해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4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기준금리 역전에 따른 자금의 유출 가능성 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의 수익성 자체가 떨어져 외국 자금이 유출되는 현상에 상당히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2007년과 2008년의 외환보유액이 610억달러 차이가 난다. 사진=한국은행

올해 3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총외채는 4339억달러다. 이 중 단기외채는 1205억달러, 장기외채는 3134억달러다. 외환보유액으로 단기부채를 갚기에는 넉넉하다. 그렇더라도 외환보유액규모를 넘어서는 외채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에 외환보유액이 1년 안에 약 600억달러가 감소한 전례도 있다. 과거보다 커진 경제규모를 감안했을 때, 다시 위기가 찾아온다면 훨씬 더 빨리, 더 큰 규모로 보유액이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과 교수는 이코노믹리뷰와 통화에서 “7000억달러 정도의 외환보유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정근 교수는 “유동외채와 원유 수입대금, 경상수지 등을 고려하고, 추가로 원화 가치가 하락할 경우 달러 투자가 급증할 것과, 해외 진출 국내기업이 현지에서 차입한 돈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3000억달러라면 현재 외환보유액의 75%를 더 쌓아야 한다는 계산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한국은행이 채권을 발행해 달러를 사들여야 한다. 채권발행 비용은 결국 국민혈세다. 보유액을 더 쌓을 필요는 있을지 몰라도 국민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결국 그동안 해온대로 꾸준히 보유액을 늘리면서 정책 당국자들이 글로벌 경제상황을 면밀히 예의 주시하면서 정밀한 대비책을 세우는 길이 위기 대응능력을 키우면서도 국민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현명한 길이다.